함께 걷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백수린 외 지음, 이승희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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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을 테마로 한 7편의 단편소설

독자들의 좋은 친구인 작가 7인이 우정과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청소년기의 추억, 인종 차별적인 환경 속 연대와 성장, 한 친구를 향한 수 십년의 그리움, 함께 일하는 사람들 간의 동료애 등 다양한 모습의 우정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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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사건-백수린

만약 전학 간 학교에 해지가 없었다면, 나의 새로운 삶은 더욱 더 암울했을 것이다. 그러나 외지에서 온 나를 경계하는 눈빛으로만 바라보던 아이들 틈에 해지가 있었고, 덕분에 나는 조금씩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갈 수 있었다.

 

해지는 그렇게 떠났다. 우리는 자주 통화했고 어쩌다가 만났지만 점차 거의 만나지 않게 될 거였다. 무호와 단둘이 만난 적은 그 후로 없었다. 눈이 귀한 지방에서 나고 자란 나는 눈을 매일 기다렸지만 그 해 겨울은 정말 눈이 오지 않았다.

 

치즈 달과 비스코티-이유리

내가 이 치료 코스에 들어가기로 결정했을 때 어머니는 울면서 기뻐했다. 사실 이건 어머니의 환갑 선물을 겸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 순간 내가 차로 달려가려던 발걸음을 멈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비록 녹아내린 아이스크림 같은 꼴을 한 정신병자였지만, 생전 처음으로 나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쿠커가 거기서 조금이라도 움직일까 봐 겁이 났던 걸까?

정말 미안해요, 난 이해해요, 다 이해한다고요.”

 

우따-강석희

우따는 우따였다. 제임스T. 우드를 왜 우따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방과후 운동장에서 캐치볼을 하다가 문득, 저 아이를 우따라고 불러야겠다 생각했던 것까지 내 기억의 전부다.

 

더 나은 무엇이 되자. 그때 만나자. 편지를 읽고 나면 그 위로 우따의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그 얼굴은 우는 얼굴이기도, 찌푸린 얼굴이기도, 잠든 얼굴이기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내 기억에서 가장 선명한 우따의 얼굴은 웃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기억해 냈다. 내가 우따를 왜 우따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말이다.

 

굴 드라이브-김지연

마지막으로 그녀는 집게손가락을 들어 트럭 뒤쪽을 가리켰다. 우리가 배달 중인 굴 상자가 있는 곳이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미셸도 덩달아 웃어서 우리는 같이 한참 웃었다.

 

용서는 안해줘도 되니까 그냥 와.

그건 또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반장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잘 모를 것이다. 나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커튼으로 차량의 습기를 닦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작은 눈발이 날리고 있어 한참이나 창에 코를 박고 있었다. 붕붕거리며 바닷 속을 떠돈다는 굴 유생들도 저런 모야일까.

 

그림자놀이-천선란

죽음에 가까워지는 순간의 감각을 알고 있다. 그건 모든 것들이 나와 멀어지는 기분이다. 모든 공간에 일어나는 일들이 전부 나와 관련 없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커튼을 뚫고 들어와 벽에 새겨진 햇빛의 줄기마저도 나와 전혀 상관없이 굴러가는 지구의 일인 듯한 기분.

 

네가 죽었다는 것을 오래도록 곱씹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탕이 쪼개지듯이 통증이 밀려오겠지. 그게 무슨 느낌일지는, 아직 모르겠다.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김사과

이수영의 관심은, 그녀의 유일한 관심은 한비였다. 그녀의 모든 시는 사실상 한비를 향한 것이었다. 그녀는 한비를 사랑하게 된 것인가? 아니면 집착인가, 질투인가, 그저 오해인가? 이수영의 열렬한 애정에 대해 한비는 언제나 거리감을 유지했다.

 

한비가 그녀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은 누구보다 이수영 본인이 인정하는 바였다. 하지만 그 영향이 과연 사악한 것일까? 물론 그녀는 처음부터, 혹은 최근 들어 더욱, 이따금, 하지만 강력하게 한비와 그녀의 인생 사이에는 거대한 강이 가로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축복을 비는 마음-김혜진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웠다. 한동안 인선은 그런 감정과 싸웠다. 싸움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졌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돌아서면 다시 싸움이 시작됐고, 또 새로운 싸움이, 그 보다 더한 싸움이 인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요? 진심으로요? 축복을요?

진짜라니. 축복을 비는 마음이라니. 인선은 대답 대신 소리를 내어 웃었다.

 

창문 틈으로 신선한 바람이 새어 들었다. 더는 한기가 느껴지지 않고, 이가 덜덜 떨리지도 않는, 정말 봄이라고 할 만한 공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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