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안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문실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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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테마로 한 단편 소설 7편을 엮은 소설

우리 시대가 사랑하는 작가 정지아, 손보미, 황정은, 김유담, 윤성희, 김강, 김애란 작가는 끌어안은 소설을 통해 각자의 시선으로 다양한 가족의 삶을 그려내며 인간을, 나아가 세계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오늘날의 가족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를 돌아보고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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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온도 - 정지아

식음을 전패한 끝에 기어이 서울 교대로 진학했다. 나는 그런 딸이었다. 불평 한 번 없었다니, 어머니는 나이 들면서 좋지 않은 기억을 모두 지워가는 듯했다. 참으로 편리한 기억력이었다. 덕분에 불만 많고 까칠해서 걸핏하면 부모에게 대들던 나는 세상에서 다시 업는 효녀가 되었다.

 

박사 학위를 받던 날, 어머니는 내 박사모와 가운을 입은 채 기쁨에 차오르는 눈물을 꾹 삼키며 내 손을 힘주어 잡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따뜻한 손으로 자꾸만 내 등을 쓰다듬었다. 고생했다는, 장하다는, 무언의 칭찬이었을 것이다.

 

담요 - 손보미

장은 경찰대학에서 훈련을 받았고, 진짜 총을 수도 없이 만져 봤고, 삶을 쏘아 본 적도 있지만, 그 순간에는 그저 힘없는 가장일 뿐이었다. 장은 아들이 무대 위로 달려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대신 장은 아들의 어깨 위에서 담요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도심의 공연장에서 총기 난사 사건 발생이것이 사건 당시, 신문에 실렸던 헤드라인이다.

 

장은 겨울을 싫어했다. 장은 결국 인정하게 되었는데, 그건 아들이 죽은 계절이 겨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좀 더 실질적인 이유도 있었다. 차 유리에 끼는 성에 때문이다. 순찰차는 너무 낡았다.

 

모자 - 황정은

세 남매의 아버지는 자주 모자가 되었다. 이사를 하면 첫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장도리를 들고 다니며 벽에 박힌 못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못이 있으면 아버지가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거기 걸리고, 틀림없이 모자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애들 아버지인 자기가 고발을 하겠다는데 왜 안 되느냐고 고집을 피우다가, 아무도 대꾸를 해 주지 않으니까 잠잠해졌고, 조금 뒤에 보니 의자 위에서 모자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 또 이사 가야 할까. 둘째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버지다.

 

멀고도 가벼운 - 김유담

어린 시절 이모는 내게 뉴질랜드 이야기를 다채롭게 들려주면서도 빈말로라도 나중에 크면 놀러 오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심 서운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모와 나는 딱 그 정도의 거리가 적당했다.

 

이모는 내게 소읍의 집성촌을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도 존재한다는 걸 알려 준 사람이었고, 스스로 더 멀리 날아가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 사람이었다. 이모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비전도 보람도 없는 직장에 매달리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 때에도 이모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뀌었다.

 

유턴 지점에 보물 지도를 묻다 - 윤성희

아버지는 기차간에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주머니에 발견된 것은 부산 행 새마을호 기차표와 만 원짜리 네 장이 전부였다. 나는 다니던 여행사를 그만두었다. 오 년을 일하는 동안 나는 한 번도 여행을 가지 않았다. 오년 동안 나는 등받이가 삐뚤어진 의자에 앉아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설렌 얼굴을 마주보고 같이 웃어 주었다. 여행사를 그만두고 나는 부산 행 새마을 호 기차표를 끊었다. 5호 차량 좌석번호 25, 아버지가 눈을 감은 자리였다.

 

우리 아빠 - 김강

편의점 앞 인도였다. 건장한 덩치 세명이 나를 둘러싸고 아래를 내려보고 있었고. ‘김철수는 어딘가로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행인을 불러 모으듯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나는 아빠니까. ‘우리 아빠’.

 

플라이데이터리코더 - 김애란

조종자도 사라지고 국정도 불분명한 비행기의 추락 사고는 몇 가지 의문점만 남친 채 사람들 기억에서 잊혔다. 다만 그들은 블랙박스 안에서 들릴 듯 말 듯 녹음된 조종자의 마지막 메시지 하나를 간신히 건질 수 있었는데, 그것은 단 한 마디, ‘안녕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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