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굿모닝 - 어쩌면 당신이 꿈꾸었던 여행의 순간들
신미정 지음 / BOOKERS(북커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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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신이 꿈꾸었던 여행의 순간들

정규직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자발적 방황 중인 어쩌다 여행 작가 심미정.

여행을 하며 꿈같은 시간의 찰나들을 담아냈다. 여행이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기에 때로는 엉망이지만 그마저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빛나는 여행의 순간들, 사소하지만 어쩌면 누군가의 오랜 꿈이었지도 모르는 여행의 순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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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더 없이 새파란 하늘 아래 야자수는 형형색색의 전구를 걸치고 있었다. 오아후 타운 호놀룰루 할레 주변의 크리스마스 조형물들이 나를 반긴다. 검은 부츠도 벗고 가슴팍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앞섶을 열었다. 루돌프는 눈썰매 대신 서핑보드를 끈다.

 

귀가 따갑도록 울어대는 매미 소리도 좋고 땀으로 끈적해진 피부를 차갑게 식히는 에어컨 바람도 좋다. 여름을 예찬하는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인중에 맺힌 땀방울을 쓰윽 훔치며 나를 축복한다. 메리크리스마스!

 

뜬다. 어둠 사이로 붉은 태양이 고개를 들고 세상을 밝힌다. 떠오르는 태양을 응시하며 밝아오는 아침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순간, 피곤과 올라올 때의 힘듦 따위는 이내 잊혀진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아궁산과 아방산, 린자니산의 풍경에 한 번, 분화구에서 신기루처럼 피어오르는 열기와 용암류들에 또 한번 놀라고, 기적처럼 오늘도 내게 와준 이 하루에 주책없이 눈물이 난다.

 

그러고 보면, 나 제법 열심히 살았다. 눈떠보니 다시 스무 살이 되어있다 할지라도 나는 아마 변하지 않을 것 같아. 적당히 재미없고 지루하고 애쓰는 하루하루, 그러니까 더 소중하고 놀라웠는지도 모르지. 여행지에 맞는 일탈 같은 밤 말이야.

 

여기는 그리스의 작은 섬 로도스. 나는 떠나온 사람, 여행지의 시간은 더디게 흘러간다. 지중해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게을러지기로 했다. ‘올리브처럼 작고 동그랗게 살 거야라는 마음

 

남은 여행에서도, 아니 서울에 돌아가서도 종종 이런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불펜과 종이만 있으면 안보이던 게 보이고 새로운 걸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란비아의 교차로, 솔 광광장, 알무테나 대성당은 여전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사막과 하늘, 그리고 그곳에 떠 있는 달과 별의 찬란함과 위대함을 칭송하다가, 오늘 인공의 도시에 돌아오니 도시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졌다. 그 편리함이, 그 안락이, 그 휘황함이 사막과 하늘과 달과 별보다 달고 달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좋은 공기란 뜻이란다. 이 공기엔 미량의 이산화질소라도 들어있는 게 아닐까. 웃음 가스를 들이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던데,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내내 너그럽고 단순하다.

 

세상의 끝에 슬픔을 버리고 올 수 있다면,

세상의 끝이라는 수식어는 꽤 문학적이다. 지구의 끝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을 텐데 세상의 끝이라니. 모든 게 소멸해 버릴 듯 한 기분, 세상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곳은 없는 데 끝은 존재한다는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뭐랄까 그곳에 가면 뭐라도 이해받을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마음.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곳, 아르헨티나의 티에라델푸에고의 주도 우수아이아.

 

희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세상. 가뜩이나 흰 세상위로 강렬한 햇살이 내린다. 눈이 부셔. 콧등에 걸쳐진 선글라스를 다시금 고쳐 쓴다. 온통 하얀 세상 위로 을 방해는 하는 건 우리뿐.

 

계획이 딱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 바다처럼 드넓은 호수가 에메랄드 빛으로 펼쳐진 작은 마을, 바칼라르. 어쩌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곳이라는 문구에 혹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가볼 테다 하는 마음이었던 게지.

이 조용한 마을은 상상이상으로 아름답다.

 

넘실거림,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생경함, 취기, 말똥냄새, 부서지는 것들, 고양이, 자전거, 반짝거림.

 

이상 길리에서 내가 기록한 것들. 부유하는 것이 하는 것이 좋아서 자꾸만 여행을 택하는 사람이 되었나보다. 지금 이 장면, 여름을 담은 1월의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겠구나. 가끔 그리워 할 순간이 되겠구나. 눈으로 찍어 어딘가에 박제해두었다가 팍팍하고 지겨운 일상의 어느 틈에 꺼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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