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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류 속의 섬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동훈 옮김 / 고유명사 / 2022년 10월
평점 :
국내 최초 완결판 53년만의 출간! 독자들이 번역을 기다려온 그 소설!
으스러지는 인간성에 대한 헤밍웨이의 뜨거운 질문들!
해류속의 섬들은 헤밍웨이의 마지막 말년의 창작욕을 불태운 소설로 평가받으며 작가 자신의 삶과 죽음에 관한 자전적 소설이다. 아마존과 해외 평론가들 사이에서 상실의 세대를 표방하는 헤밍웨이판 인간 실격으로 회자되곤 한다. 삶에 대한 실패와 극복에 관한 헤밍웨이의 뜨거운 통찰력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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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바닥에 누웠을 때 그는 자신이 바람 아래에 있다고 느꼈지만, 실제로는 바람이 집의 아래쪽 모서리와 섬이 가장 낮은 풀밭 그리고 바다풀 뿌리와 꼬막들이 숨어 있는 모래 속으로 불어드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바닥에 누운 그는 자신이 어렸을 적 포대 근처에 누워 있을 때 무거운 총이 발사되는 것을 느꼈던 것처럼 파도의 두근거리는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네 마리의 바다 동물이라는 환상은 곧 사라졌다. 그들은 처음엔 미끈하고 멋있게 나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두 아이들이 바람과 바다에 맞서 고난을 겪고 있었다. 아주 어려운 고난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그 모습은 그들이 헤엄쳐 나갈 때 보여 주었던, 마치 안방에 있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던 그런 환상을 빼앗아 가기에는 족한 것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난생 처음 보는 커다란 귀상어가 자신의 하얀 배를 물 밖으로 내보인 채 수상 스키가 물을 헤치듯 등으로 미친 듯이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녀석의 배는 눈비시게 새하얀 색이었고, 폭이 1야드는 족히 되어 보였으며, 일은 마치 웃는 것처럼 보였다.
참을 수 없는 외로움 같은 감정들을 느끼지 않고 일하며 살아가는 생활의 지혜를 그는 오랫동안 익혀 오고 있었다. 따라서 아이들이 그의 곁으로 오면서부터 이미 익숙해져 버린 그의 소극적이고도 단조로운 일상생활은 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고기와 싸움이 시작된 지도 이제 네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배는 여전히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고, 데이비드는 물고기를 꾸준히 당기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한 시간 전보다 더 강해 보였지만 토마스 허드슨은 그의 발뒤꿈치에 묻은 피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햇볕에 광택제를 칠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제 그를 놓친 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아.” 데이비드가 말했다. “기록 같은 것도 상관 안 해. 그냥 물고기는 괜찮을 거고, 나도 괜찮다는 걸로 됐어. 우린 적이 아니니까.”
언제가 기대감을 안고 항해해 왔던 나라로 실어다 주는 평안하고 유쾌하고 호화로운 여객선도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런 생각에 잠긴 채 일찌감치 배에 올랐다. 그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냐고 물어볼 것이 틀림없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두려워 도시를 도망쳐 나온 도피자였다.
바다 자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 밑에 무엇이 있고, 그 위에 무엇이 있으며, 그것과 관련된 것에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는 것조차 그만두자. 무엇을 생각하지 말자는 생각조차 아예 하지 말자. 그냥 모든 것을 생각하지 말자. 바다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자. 그리고 그 외의 다른 것들도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마치가 바다가 우리는 서로 친구이고 다시는 어떠한 고통도, 어떠한 난폭도 부리지 않겠다고 말해 주는 것 같다고 토머스 허드슨은 생각했다. 왜 바다는 그렇게 변덕스러운가? 강은 믿을 수 없고 잔인하다가도 어떨 땐 친절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시냇물은 그야말로 친구 같이 다정하다. 우리가 배반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믿을 수 있다. 그러나 바다는 항상 우리를 속인다.
헨리가 물고기를 끌어당겼고 그들은 선미 쪽에 끌려오는 녀석을 보았다. 그 물고기는 길이가 길고 괴상한 모양으로 뾰족하게 생겼다. 물고기의 줄무늬가 심해의 푸른 빛깔을 뚫고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물고기가 작살을 던져도 될 만한 범위 안으로 들어오자 갑자기 녀석이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한 번 물속 깊이 빠르게 달아나 눈 깜짝할 사아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녀석들은 항상 저렇게 도망가지.”
그는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돌려 어깨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자신이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이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산호초에서 날아오르는 새들의 수는 너무 많았다. 섬에 다른 사람이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긴 한가? 그들이 거기 처음 들어갔다고 볼 많나 이유는 무엇 인가? 갑판 위에 엎드린 그는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았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될 날을 생각해 보다. 그럴 만한 좋은 것들은 정말 많이 있을 거야. 전력을 다해 그림을 그리고, 또 그 외에 다른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면 분명 잘 그릴 수 있을 거야. 그렇다면 바다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그릴 자신이 있어. 이제부터라도 진정으로 하고픈 일에 굳게 매달리자. 그러려면 반드시 살아야 해. 한 인간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업적에 비하면 생명조차도 하찮은 것 아니던가. 그래, 놓치지 말자. 지금이야 말로 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진짜 기회가 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