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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살아 볼게 - 그림 그리는 여자, 노래하는 남자의 생활공감 동거 이야기
이만수.감명진 지음 / 고유명사 / 2023년 1월
평점 :
소소하고 소박하지만 삶에 대한 따듯한 성찰이 있는 동시대 청춘들의 이야기.
작은 방을 하나 얻어 살면서 두 사람은 주변의 작고 소소하지만 가까운 행복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일상의 이야기를 직접 그리고 글을 쓰면서 두 사람만의 낯선 도시 서울 적응기를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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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적인 이야기를 드러내기가 민망하고 어색한, 소심한 성격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지나가는 순간들을 붙잡아 두고 싶어 하루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변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어쩌면 내가 변한 게 아니라 나조차도 모르던 나의 취향을 오빠 덕분에 찾은 게 아닐까. 정답은 잘 모르겠지만 하루 한 번 우리는 서로를 산책시켜 준다.
파란 트럭을 타고 탁 트인 촌길을 달려 눈처럼 하얀 파밭으로 들어설 때만큼은, 방학 동안 놀지도 못하고 끌려 나와 뿔이 난 어린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나만 알고 있는 오빠의 모습을 볼 때마다 오빠한테 내가 세상 편한 사람인 것 같아서 고맙고 행복하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한 잔에 오천원이나 하는 커피를 쉽게 사 마시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같은 돈이면 밥을 사먹지 무슨 커피냐며 사람들을 흉본 적도 있다.
지금은 진이와 산책할 때마다 꼭 커피를 마신다. 게다가 하릴없이 집에서 쉬는 날에도 혼자 커피를 마시러 나간다. 사람은 조금씩 바뀐다. 남을 흉보거나 비판할 때는 좀 더 신중해져야겠다.
함께 지나온 시간이 서로 모든 것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눈빛만 봐도, 입만 떼도 상대방이 할 말을 알아채는 초능력이 생겼다. 우리는 가끔 서로의 말을 쌈 싸 먹는다.
몇 년째 잘 되지도 않는 가난한 밴드를 하느라 벌이도 변변찮은 나는 진이에게 많이 모자란 사람이다. 내가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부족한 대로 진이 곁에 있어 주는 일만큼은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다.
뉘엿 뉘엿 해가 저물어 가는 넓은 모래사장에 홀로 앉아 모래성을 쌓고 있는 꿈을 꿨다. 밀려오는 파도에 금방 사라질지도 모를 모래성을 묵묵히 쌓으면서 무너지면 어쩌나 하면서 꿈속에서도 불안해했다. 요즘 들어 내가 부쩍 수박 겉핥기식으로 사는 것 같아 오빠에게 자주 넉두리를 하곤 했는데 그것 때문이었을까?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야무지게 살아야지 다짐한 후 우리는 당분간 해변에 가지 않기로 했다.
처음 진이를 만났을 때 놀랐던 건 밥을 화난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는 것이었다. 늘 대화가 가득한 식사시간을 동경해왔던 나로서는 섭섭하고도 답답한 장면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지만 오늘도 나는 진이와 맛있게 밥을 먹는다. 말은 내가 걸면 되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얼토당토않는 강박증이라 어디 가서 말하기도 부끄러웠는데, 오빠에게도 그런 습관이 있다니까 왠지 위로가 된다. 나만 이상한게 아니었어...
꽃이 주는 에너지를 좋아한다. 보고만 있어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스윽 올라가고 저절로 집중하게 된다. 꽃 하나하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못난 구석이 없다. 저마다 제 모습 그대로 이쁨을 뿜어내고 있다. 뿜뿜이들 같으니라고.
나는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일한다.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작한 곳에서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고 배우며 꿈을 꾸고 있다.
진이를 만난 곳도 바로 이곳이다.
프리랜서의 삶은 스스로 엄격해야 망가지지 않는 다는 것!! 느낌표 팍팍 찍을 만큼 깊이 공감하는 말이다. ‘혼자서도 잘해요’와는 아주 먼 삶을 살아왔던 내가 어쩌다 혼자서 모든 걸 관리해야 하는 삶을 살게 되었는지,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
앞으로 우리가 해나가야 할 무수히 많은 일 가운데 먼저 떠나는 이를 보내주는 일은 오로지 나만의 역할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