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봉태규 지음 / 더퀘스트 / 2023년 5월
평점 :
해야 할 일도 책임도 많은 치열한 삶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어른으로 살고 싶어서.
배우 봉태규가 세 번째 에세이를 출간한다. 남편이자 아빠, 배우이자 작가 그리고 아들까지, 다양한 책임을 수행하며 느낀 어른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다.
괜찮은 어른이 되려는 과정에서 생각해 본 것들, 시도해 본 것들, 의문들,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들을 진솔하게 털어 놓았다.
---
우선 안아줄 것 같아요. 스스로의 존재를 이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과 사회적 잣대로 휘두르고 쳐내는 동안 혼자서 얼마나 많이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그러니 다 괜찮다고,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어요.
잘못된 행동에 대해 아이를 엄하게 꾸짖고 나무라는 건 어른의 권위를 보여주는 태도라고 본다. 그렇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사회가, 어른이 진정으로 보여줘야 하는 태도는 권위가 아니라 포용과 수용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 간소화하거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예, 아니오’ 같은 간단한 선택지를 내놓은 건지는 모르게지만, 가끔 우리는 어떤 것도 선택하고 싶지 않거나 ‘난 도무지 모르겠는 걸..’하고 결정을 뒤로 미루고 싶을 때도 많다고 생각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강요라는 건 썩 내키지 않는다는 거지.
난 내가 그렇게 실지 않았다. 많이들 지적하는 입도 처음에는 눈에 거슬렸지만 계속 보니 개성이 도드라져 좋아 보였다. 키가 작거나 하는 문제도 연예인이라는 직업적인 특성 때문에 굳이 지적을 받는 거라 쉽게 무시하기 좋았다. 연예인이라 하여 모두들 키가 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 같은 범인도 존재해야 전체적인 밸런스가 맞는 거라 생각한다.
그저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게 무엇일까? 불현 듯 책이 떠올랐다. 내가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것, 연기를 하면서 시나리오나 대본은 수도 없이 읽었지만 정작 책은 멀리 했었다. ‘어차피 내가 읽는 것들이 소설과 비슷하지 않은가’라고 착각했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읽어대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책들은 밤을 새워가며 읽었고 조금씩 책에도 내 취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 아버지를 원망하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신기하게도 이날의 기억은 그 이유에 포함되지 않는다.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면 아버지의 행동이 정당했던 건가? 어느 무엇이어도 상관없다. 그때의 우리 아버지와 나는 그냥 그랬으니깐.
비록 내 아버지를 좋은 아버지로 여기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완벽한 이름과 향기를 지니고 있는 존재였다. 아버지가 된 지금, 다시 생각한다. 좋은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인가?
당시에 나는 큰 엄마를 엄마라 불렀는데 아마도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 같다. 막연하게 언젠가 만날 수 잇을 거라는 기대감이 아니라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나에게는 엄마가 두 명이 생겼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엄마,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엄마.
집 안의 살림살이가 없어질수록 내 안에는 낯선 평화가 구색을 맞춰 들어섰다. 이 모든 게 다 돈 덕분이었다. 거대한 빚은, 뿌연 먼지만 흩날리는 메마른 공간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져 고통 받았던 일곱 살 어린아이를 구해준 한 줄기 빛이 되었다.
최근에 내 인생에서 가장 근사한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밥을 먹던 둘째 아이가 불쑥 “난 집이 제일 좋아”라고 이야기를 하길래 아빠도 집이 제일 좋다는 대답을 해주고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제일 편해. 난 세상에서 집이 제일 편해. 그래서 제일 좋아.”
당연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 대답에 내 감정이 일렁거리는 건 아마도 다리 밑에서 눈물을 흘리던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이제야 들었기 때문 일거다.
거절은 내가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이다. 그것에 인색한 분위기가 명확하게 존재한다고 하여도. 둘째 아이에게 꼭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거질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빠로 만들어줘서.. 이런 걸 모르고 더 어른이 되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고.
누군가는 오늘도 혼자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을 테다. 어려운 시간도 홀로 꿋꿋하게, 다른 이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지혜롭게 해쳐가며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이도 분명 있을 법하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친구들의 마음 씀씀이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정작 부모인 저는 아낄 필요도 없는 마음을 아껴 쓸 때가 많은데 오히려 아이들이 어른인 저를 너그럽게 보살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 행복한 날이다. 가만히 눈을 떠본다. 당연하지만 변함없이 우리 집이다. 지금 무엇을 기대하고 상상해볼 수 있을까? 이전과 같은 오늘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변함없이 그래도 참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