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듬지
김현중 지음 / 아키텍스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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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떠안아 온 고통을 기리는 당신만의 방식이 있는지. 손상과 회복을 넘나들며 기어코 성장하고 마는 우리의 정신은 우듬지를 닮아있다.

 

저자의 목적은 자기 고백이다. 도피하고, 모면하고, 회피하려는 성향이 더 이상 책임을 덜고 안위를 보장하는 수단이 될 수 없음을 문득 깨닫고는 자기를 돌아볼 필요를 느낀 것이다.

높이 솟는 우듬지를 지향하기 위해 새로운 사유를 바탕으로 한 해석이 전제되어야 하며, 아픔과 고독, 외로움 등의 감정까지도 마주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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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엔 나와 당신과모든 이가 가시감의 되풀이 속에 설 살아간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인간사를 관통하는 생로병사 또한 그 구간마다 가시감의 눈금을 그어 놓을 수 있다고. 일상의 영역에선, 물론 유형의 자잘한 변형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제로섬이다. 당사자들 혹은 집단의 구성원이 어느 행동의 결과로 얻은 득실의 총량은 제로 또는 다른 일정한 상수에 머문다는 개념, 승객 한 명에게 허용된 운신의 폭과 공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제 몫의 정서적 평온과 육체적 휴식이라는 파이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눈치 사움의 연속이다.

 

누군가에겐 넉넉한 범위일 수도 있겠다만 나는 항상 줄이고 덜어내야 했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호흡의 정리가 요구됐고, 용이한 설득을 위해 문장을 최대한 압축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르게 되는 자기반성은, 저절로 일상의 표현에까지 분량의 걱정 한도를 매겼다는 것.

 

바람이 나를 떠밀어 날리듯 소속을 옮기고 무대를 이동한다는 건 한갓 낭만주의에 그칠 따름이라, 오늘의 나는 온몸으로 처절하게 굴러온 결과라는 믿음이었다.

 

여행을 마치면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부담과 온갖 의미를 짊어지고 다시 직면한 형편에 부딪혀야 했으니, 차라리, 질주하던 그때만큼은 깍여 날리는 모래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단 며칠이었지만 돌도, 바퀴도 아닌 채로 이동하는데 울컥 솟았던 감정은 자유로이 내 일부를 허송하고 있다는 홀가분함이었을 거이다.

 

지금의 나는 무엇으로 살고 있나.

 

군더더기를 걸러내는 단순함과 명료의 지향에 효능이 있음은 자명하다. 효율과 실용을 강조할 수 있고, 언어적 분쟁과 갈등의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며, 지나친 편집중적 이성 작용에서 벗어날 처방이라는 쓸모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쾌한 몰상식이 부력처럼, 잠에 빠지려던 의식을 현실로 띄워 올렸다. 그들의 무례로 부패해버린 밤은 나를 깊은 수면에 빠뜨리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두 눈을 뜬 채 한낮의 수면위로 떠밀려 바싹 말라버리리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활면에 제약을 두거나 스스로 족쇄를 거는 식으로 맨눈의 결함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건 불안의 근원을 해소할 수 없는 미봉책과 속절없는 발버둥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관계에도 분명 치사량이 존재한다는 믿음이었다. 한 인간이 비울 수 있는 자신의 곁, 마음의 방은 크기와 수가 정해져 있고 그 자리를 채우는 관계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수용은 에너지의 낭비는 물론이거니와 이상의 대가를 요구할 거라고. 이런 생각은 경중을 따져 인연을 선별하는 행위를 부추겼다.

 

실속은 없으나 겉으로는 상당해 보이는 기세 내지는 기개, 이른바 허세가 아예 없다고 는 말할 수 없겠다. 특히 이런 미덥지 못한 기백이 주로 발휘되는 건 익스트림 액티비티, 곧 엄두를 내기엔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한 행동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다.

콤플렉스란 단순한 열등감의 대체어라는,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이는 용례와 해석이 그치는 개념이 아니다. 억압된 욕망 또는 해소되지 않은 채로 응어리진 관념의 복합체라고 여기는 게 마땅하다.

 

임계점이 다다르면 나약한 유리 껍데기를 부수어 넘쳐흐를 줄로만 알았던 시절로.

 

내가 떠안고 짊어진 고통을 공유할 수 있는 마지막 한 사람의 좌표, 그가 서 있는 유대와 공감의 한계선이 희극과 비극을 나누는 기준점으로 성림된다.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관계. 그가 자리한 심리상의 마지노선이 희극 내지는 비극의 여부를 규정한다.

 

누군가의 삶에 호응하고 장단을 맞추기엔 그 무렵 둘러쓴 보호막은 너무나도 얇았다. 애정과 공감의 결핍이 역렬한 죽은 대화만으로도 손쉽게 깨져 버릴 껍데기가 내 좁은 평화마저 위협한다-는 기우에 잠겼던 시기가 있었다.

 

일찍이 진실로 굽힐 줄 알았다면, 모두와 함께 겨워할 수 있었을까요. 고단한 출퇴근길에 짧은 시간이나마 만끽하는 창 너머의 경치 같은, 작은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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