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셸비 반 펠트 지음, 신솔잎 옮김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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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모르는 비밀을 꿰뚫고 있는 문어와 야간 청소부 할머니가 만든 따뜻한 기적

인생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여기는 순간, 당신을 구할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어른들, 그리고 문어가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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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 1,299일 째.

내가 누구냐고? 내 이름은 마셀러스. 하지만 인간들은 다르게 부른다. 보통은 저 친구라고 한다. 이런 식이다. 저 친구 좀 봐, 저기 있네, 저 바위 뒤로 촉수가 보이잖아.

 

감금 1,301일째

이렇게 탈출한다. 나를 포위하고 있는 수조 위 쪽 유리에 펌프가 들어오는 구멍이 있다. 펌프 하우징과 유리상에 내 촉수 끝이 통과할 정도의 틈이 있어, 하우징 나사를 풀 수 있다. 그러면 펌프가 수조 안으로 떨어지며 구멍이 생긴다. 작은 틈이다.

 

토바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은 가족이죠. 이선이 나쁜 의미로 한말이 아니란 것은 알지만 어이가 없었다. 당연히 가족이 가족이지. 그럼 뭐겠는가? 라스는 살아 있는 유일한 혈육이었다. 연락 안하고 산 지 오래지만 그래도 가족이었다.

 

감금 1,307일째

저녁이 되어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주변이 어둑해지고, 내 수조 앞 유리벽에 굉장히 아름답고도 복잡한 그림들이 남는다. 한번 씩 이 그림들을 들여다보며 연구한다. 작은 타원형의 걸작들. 내 눈은 바깥에서 안으로, 그리도 다시 바깥으로 지문 골을 쫓는다.

 

토바는 자기도 모르게 문어에게 잡혀 있지 않은 팔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 걸레를 꺼내더니, 검은 색 고무로 된 수조 가장자리에 하얀 가루처럼 쌓인 석회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감금1,324일째

젊은 청년은 오늘 밤부터 일을 시작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렇게 지저분한 바닥을 또다시 지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전에 있던 청소부는 다시 이곳에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리울 것이다.

 

감금 1,341일째

인간은 재미를 위해 진실을 거짓으로 말하는 유일한 종이다. 그들은 이를 농담이라고 부른다. 말장난이라고도 하고, 저의가 다른 말 말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그들은 웃거나 예의상 웃는 척한다. 나는 웃지 못한다.

 

감금1,349일째

대체로 나는 구멍을 좋아한다. 내 수조 위에 있는 구멍이 내게 자유를 준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에 생긴 구멍은 싫다. 심장이 세 개인 나와 달리 그녀의 심장은 하나뿐이다.

토바의 심장. 그 구멍이 매워지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감금 1,352일째

수조로 되돌아오는 여정은 느리고 힘들었다. 시멘트로 된 복도를 따라 내 몸을 끌어당기며 몇 번이나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차가운 유리벽에 빨판이 달라붙을 때의 기분을 느낄 수 없고, 그녀의 팔목 안쪽에서 전해지는 인간의 온기를 경험할 수 없고,

 

토바에게 캐머런이 다프네 캐스모어의 아들이라고 알려줘야 한다. 친구에게서 들어야 하는 이야기다. 토바와 캐머런은 친한 사이가 되었다.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요. 토바가 마지막 출근까지 하루밖에 남지 않은 것도 중요하지만요.”

 

토바의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던 진실 조각들이 애타게 제자리를 찾아가며 하나로 연결되었다. 여자가 있었다. 에릭... 그리고 여자. 에릭에게 아이가 생겼다.

먼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자란아이. 캐머런의 수많은 버릇을 보고서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넌 알고 있었던 거지?” 양동이 안에 있는 마셀러스를 향해 물었다. “물론 넌 알고 있었겠지.” 토바는 몸을 숙여 마셀러스의 외투막을 다시금 쓰다듬었다.

 

자유 1일째

당신에게 헛된 희망을 주는 것은 아니다. 내 죽음은 임박해 있다. 하지만 아직 죽은 것은 아니다. 바다의 광활함을 누릴 정도의 시간은 허락되었다. 하루 어쩌면 이틀 정도, 해저 밑바닥 깊은 어둠을 한껏 즐길 시간이. 내겐 어둠이 걸맞다. 풀려난 뒤 돌무더기에서 멀어지려고 서둘러 헤엄쳤다.

인간들, 대체로 멍청하고 어리석다. 하지만 한 번씩 놀랍도록 똑똑한 생명체가 되기도 한다.

 

아쿠아리움 측은 토바가 건넨 엄청난 액수의 기부금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아쿠아리움에서 팸플릿을 나눠주고, 거대태평양 문어 수조 앞에서 관람객들에게 문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원봉사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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