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완두콩의 비밀
오가와 이토 지음, 이지수 옮김 / 더블북 / 2023년 2월
평점 :
전세계 100만 독자를 사로잡은 <달팽이 식당> 작가 오가와 이토 신작!
쉰 가까운 나이에 남편 ‘펭귄’과 떨어져 독일 베를린에서 반려견 유리네와 단둘이 생활하게 된 오가와 이토, 지구 반대편 낯선 땅에서도 어학원에 다니며 부지런히 독일어를 배우고, 동네를 오가며 새 이웃을 사귀고, 시장에 갖가지 신선한 재료를 사다가 건강한 집밥을 만들어 먹는다.
주변 사람들을 격려하며 불행을 잊고 행복을 더 크게 만들어 주는 작가 오가와 이토의 1년 사계절을 꽉 채운 베를린 일기이다.
---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식초도 마침 일본 것이 다 떨어져 발사믹 식초로 대체했다. 현재까지는 순조롭다.
20년 전 혼자 여행할 때도 노선버스를 갈아타며 작은 마을을 더 좋아했다. 마을 자체의 분위기가 몹시 아름답다는 데 일단 놀랐고, 그 마을의 아름다움에 긍지를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감동했다. 그리고 일상생활 자체의 여유롭게 꾸려나가려 하는 프랑스인들의 자세에 자극 받았다.
여전히 겨울 풍경은 그대로지만 봄이 지척에 느껴지는 저녁.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한 걸음 한걸음 확실히 나아간 느낌이 든다.
타박타박 걷기만 해도 어쩐지 행복하다. 거리에는 토끼와 달걀이 등장하고 있다.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어서 모두의 설렘이 전해진다.
다음 주부터 나는 다시 한 달 동안 독일어 학원을 다니며 공부할 예정이다. 봄이 되니 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도 왠지 온화하다. 추운 겨울에는 미간을 찌푸렸던 사람도 상냥한 미소를 띠게 된다. 다들 마음이 들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완두콩이 맛있다고 느낀 건 어른이 되고 부터다. 어째서일까 생각하다가 ‘내가 어릴 때 먹었던 건 냉동 완두콩이 아니었을까?’하고 깨달았다.
완두콩을 삶고 나서 곧바로 건져내면 얼마 뒤에 쪼글쪼글해지지만, 딱 알맞게 부드러워졌을 때 불을 끄고 그대로 식히면 탱탱함이 유지된다고 한다.
몰랐다.
실제로 불을 끄고 그대로 뒀더니 확실히 탱탱했다. 내가 바라던 건 바로 이런 완두콩이다.
그렇게 파리 중심부라고는 할 수 없는 작은 동네의 서점이었다. 하지만 상점가에 있고, 동네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들를 수 있는 그 서점이 나는 무척 좋았다.
결코 넓지 않은 가게 한구석에 책상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어서 나는 거기 앉아 독자를 기다렸다.
내 작품 중 프랑스어로 번역된 것은 <달팽이식당>과 <바나나행복> <무지갯빛 정원>이고 올여름 <츠바키 문구점>이 네 번째로 출간된다.
와 주신 독자분이 자신의 가방에서 손때 뭍은 나의 책을 꺼내고, 그 책에 내가 일본어로 사인을 한다.
이국땅에서도 내 작품이 읽히고 있다니, 평소에는 좀처럼 상상이 안 되지만 이렇게 실제로 외국 독자 분을 만나면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든다.
제대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1년에 스웨터 한 장을 뜨는 것이 자신의 즐거움이라는 할머니는 헤어스타일과 조그만 귀고리까지 전부 세련되어서,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하지만 가끔은 좀 엉성하게 내린, 그리 맛있지 않은 커피가 그리워진다. 오늘 아침 마신 밀크 커피는 바로 그 의도에 꼭 맞는 맛이었다. 맛없는데, 맛있다.
동네에서 훌쩍 마시는 커피는 이 정도가 좋을지도 모른다. 누가 떨어뜨린 빵 조각을 수많은 참새가 떼를 지어 쪼아 먹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홀짝홀짝 밀크커피를 마셨다. 일상은 좋구나. 생각하며.
나는 완벽하게 맑은 하늘보다 오늘처럼 쓸쓸함이 살짝 감도는 하늘을 좋아하기 때문에, 실은 여름이 끝난 것에 안도하고 있다. 날씨가 선선해서 유리네도 오랜만에 충분히 산책할 수 있었다. 이런 날씨라면 언제까지라도, 어디까지라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놀랍게도 펭귄도 같은 생각으로 김초밥을 사 온 것이다. 게다가 거의 같은 시간에 샀다. 따로 쇼핑을 갔다가 같은 채소를 사 오는 식의 일도 꽤 자주 있다.
오래 함께 살다보면 취향이 닮는 것인지도 모른다.
베를린에서도 눈이 나를 맞이해줬다. 두 번 연속으로 보는 환영의 눈이었다. 거의 두 달 만에 유리네와 붙어 잤다. 역시 가족은 이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