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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의 가상현실 - 2055년, 보안마스크로 생명을 유지하는 세상 ㅣ 열림원어린이 창작동화 2
임어진 지음, 클로이 그림 / 열림원어린이 / 2023년 2월
평점 :
기후 위기 숲의 미래를 SF로 경험하다!
어느 날부터인가 자꾸만 나로에게 이상한 일들이 생깁니다. 이상한 꼬치구이 가게, 이상한 아저씨, 이상한 USB. 그리고 자꾸만 궁금해지는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라는 모임.
마침내 그 모임의 정체를 알게 된 주인공 나로는 생각합니다. 보안마스크 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먼지투성이지만 언제까지 똑같 않을 거라고 말이예요. 나무가 늘어나고 늘어나 숲을 이루면 먼지 층을 뚫고 햇빛을 쏟아져 내리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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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태풍이 그칠 줄 모르고 불어왔다. 주의보와 경보를 오가며 두 달째 계속이다. 이대로라면 올해도 1학기 수업을 모두 가상공간에서 채우게 될 것이다.
스크린이 학교로 바뀌며 교실 풍경이 나로를 둘러쌌다.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갖가지 소식들이 시야 양편에 줄지어 뜨기 시작했다. 이번 주 숙제 평가표와 다음 수업할 단원 안내, 친구들의 인사 쪽지와 교실에서 기다리시는 하늬 선생님의 모습. 가람이가 말한 체험 학습 소식은 스크린 아래에 영상 메시지로 계속 흐르고 있었다.
먼지 태풍 농도가 매우 나쁨이어서인지 거리에는 보호복을 입은 어른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런 날에는 꼭 필요한 외출이 아니면 바깥 활동 자제를 다들 꺼렸다.
보안마스크와 벙거지로 가려져 눈, 코, 입이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에서만큼은 나직한 울림이 느껴졌다. 나로는 그 목소리와 말투에서 어쩐지 친숙한 느낌을 받았다.
가람이가 툴툴거리는 동안 나로는 손바닥을 펴서 받은 것을 살펴 보았다. 자료를 담는 저장소인 유에스비 USB였다.
“으, 정말 이런 날 우리가 학교까지 제대로 온 게 기적이다. 기적, 저 하늘 좀 봐! 온통 누런 먼지 색이야. 저게 차라리 한번으로 한 번으로 끝날 체험 학습이면 좋겠다.”
“날짜로는 봄이 맞지만. ‘진짜 봄’이 사라졌다는 말이야. 원래 봄은 무척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해. 하지만 여러분도 나도 경험한 적이 없잖아.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걸 잃어버렸는지, 되찾을 수는 없는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으면 해.”
따스한 햇볕에 감싸인 마을은 몹시 정겨워 보였다. 가람이가 알아맞힌 복숭아나무며 살구나무, 매화나무 보얀 꽃들이 온 마을을 뒤덮고 있었다. 나로는 과거 모습인 이 마을 풍경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았다.
“선생님, 요즘은 이런 마을 아무 데도 없죠?”
나로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베기는 물건을 빼냈다. 아침에 벙거지 아저씨에게 받은 작은 USB였다. 나로는 그 중 한 개를 집어 ‘셀프’에 끼워 보았다.
나로는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살아 있는 나비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정말 살아 있다고 해도 되는 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쨌든 눈 앞에 이렇게 분명하게 날아다는 나비를 처음 본 것만은 확실했다.
나로는 보안 마스크의 보안경 렌즈를 통해 자동 조정 상태가 아닌 실제 상태로 놓고 자전거에 올랐다. 거리는 원래 모습 그대로 먼지 더미를 덮어 쓴 채 묘비처럼 줄지어 서 있는 회색 건물들이 드러났다. 햇빛이 부족해 제대로 광합성을 하지 못한 채 말라붙은 이파리들과 가지가 앙상하게 오그리고 있는 길가 나무들도 제 모습을 그대로 내보였다.
“나무는 사람이 바로 먹을 수 없지. 곡식이 아니니까. 하지만 나무에 붙어 사는 곤충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봐라. 또 그 곤충들이 하는 일은. 곤충을 먹고 사는 또 다른 생물들을... 자연의 질서가 무너지면 사람들도 살 수가 없지. 숲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어.” “산소?”
“그렇지만 산소야 지금처럼 공장에서 기계로 만들어도....” 나로 스스로 생각해도 억지였다. 괜히 인정하기 싫어서 해 본 말일 뿐이었다.
“같이 나무 심자고?” “응, 숲을 되살리자고, 다시 시작하는 거지.” 나로는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우리가 나무 몇 그루 심는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아저씨와 봄이가 싱긋 웃었다. 봄이의 얼굴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래도 해야지. 우리가 심는 건 몇 그루일 뿐이지만 많은 사람이 나서면 숲도 금방 되살아 날 수 있어.”
나로는 보안마스크 렌즈 밖으로 보이는 뿌연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대로 똑같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 그루 한 그루 나무가 늘고, 그곳에 새잎이 나고 꽃이 피면 나비와 벌이 돌아오고 새가 돌아오고 봄이 돌아올테니까.
나로 마음속에서 나무들이 한 그루 한 그루 땅을 뚫고 솟아나 우쑥우쑥 가지를 펼치기 시작했다. 숲이 우거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