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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줄 알았다 - 삶의 모퉁이에는 볼록거울이 있다
김경순 지음 / 바른북스 / 2023년 1월
평점 :
절판
코로나19는 우리 모든 생활을 바꿔 놓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대신 혼자서 먹고 즐기는 법을 알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묘하게 사람의 움직임이 줄어들자 자연은 다시 살아났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멀어지고 자연이 다시 살아 숨 쉬는 그 순간을 눈으로 마음으로 체험한 작가의 메시지가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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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피는 꽃은 유독 경이롭다. 며칠째 강추위가 이어졌다. 땅도 꽁꽁 얼었다. 그런데도 땅속에서는 어느새 봄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선 소나무의 구별법’이라고 치니 자세히 나온다. 답을 찾았다. 바로 ‘해송’이라 불리는 곰솔이었다. 모래사장이나 바닷가에서 보던 해송이 우리 집에서 자란다니, 영광이라고 해야 할까. 어쩐지 강하다 했다.
코로나로 두려운 건 사람뿐이다. 자연은 조용하고 묵묵하게 자리를 지켜왔다. 북적이고, 요란한 건 사람이었다. 그리고 바이러스를 만들고 불러온 것도 사람의 욕망과 욕심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고통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작고 힘없는 동물들을 원망한다. 바이러스를 옮길까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19세기 프랑스 소설가인 오노레 드 발자크는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며 한 권의 책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는 사람의 일생이 얼굴에 모두 나타난다는 이야기일 터이다. 그렇다면 하루하루가 들어가 있는 책, 내 얼굴은 먼 훗날 누군가 읽고 싶은 명작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라고 했다. 우리의 생각은 집이 되어 각자 가슴속에 한 채씩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집을 이루는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집이 될 수도 있고 모래 위의 성이 되기도 한다.
하기야 우리 세대는 하늘은 파란색, 나무는 초록색, 땅은 황토색이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렇게 틀을 만들어 놓고 가르치고 배웠으니 그 틀은 깨기가 어디 쉬운가. 그래도 포기는 하지 않겠다. 이제부터라도 그림을 처음 배운다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을 해보고 싶다.
바람을 타고 씨앗이 날아왔으리라. 군락지를 벗어나 혼자 떨어졌으니 몇 배는 더 강해져야 했을까. 그렇게 몇 년을 극소에서 조용히 힘을 키웠을 테다. 그리고 드디어 저렇게 아름답고 고고한 꽃을 피워 올렸다.
사람의 세월은 기억을 잊어 가는 시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기억의 저 먼 밑바닥을 흝어보면 잡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작은 개미의 생존법이 실로 놀랍기만 하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부지런해야 한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존법을 교육받는다. 그런데 무조건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놀기도 해야 그 집단의 존속이 가능하다니, 무언에 머리를 세게 얻은 맞은 기분이다.
겨울은 이렇게 모든 생명들의 활동을 정지시켜 놓았다. 하지만 봄을 기다리는 소망까지 감추진 못하나 보다. 목련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나무들은 움도 보이지 않거나 가까이 가야 겨우 겨울눈을 확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목련은 눈보라에도 끄떡없이 솜털로 무장한 채 겨울눈을 통통하게 키워 멀리서도 눈에 띈다.
지난겨울은 지독하게도 추었다. 들풀은 땅속에 씨앗 하나 묻어 놓고 봄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 바람을 알기라도 한 듯 봄볕에 저리도 우르르 키우고 있으니 흐믓하다 하겠다.
보폭의 조절, 춘설은 어쩌면 모든 자연의 걸음을 제어해 주는 기능이라고 보아도 될 듯 싶다. 우린 인생에서 보폭의 조절은 중요하다. 너무 빨리 달리다 보면 언젠가 탈이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너무 느적느적 걷다 보면 흐르는 세상사에 뒤치게 된다.
키가 작으니 꽃대를 하나 밖에 올리지 못한 건 당연하다. 상처를 이겨 내고 피어 올리느라 애를 썼을 텐데 보아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쉽고 미안했다. 아침에 나가 보니 입을 오므린 커다란 꽃송이가 힘없이 매달렸다. 긴 세월 상처를 이겨 낸 것도 대견한데 이렇게 또 꽃을 피워 내다니 정말 고맙고 또 고마웠다.
작가들은 자신의 삶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한다. 시인은 은유로, 소설가는 스토리로, 수필가는 경험이 바탕이 된 깨달음으로 독자들에게 펼쳐 놓는다. 하지만 어떤 작품은 독자들에게 쉬이 읽히지 못하기도 한다. 독자들은 알 수 없는 작가만의 심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작가들은 실망하지 않는다. 자신의 온전한 사람이 들어간 작품이니 누군가는 공감을 해줄 것이고 반대로 비판을 하는 이도 있기 마련이다.
잎은 떨어져도 씨앗은 남아 더욱 옹골지게 몸을 달구고, 결국에는 무르녹는 가을과 함께 떨어져 새로운 삶을 위해 땅으로 꽂힌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새봄이 되면 처음 보았던 모습으로 우리 앞에 화력하게 나타나 달뜨게 만드는 것이 씨앗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