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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 인종차별을 넘어 행진 - 흑인 인권을 드높인 소년 이야기 ㅣ 빛을 든 아이들 4
프란치 루진코트 지음, 권가비 옮김 / 다른 / 2022년 12월
평점 :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거리로 나선 소년
뉴욕시 브루클린에세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태어난 프란치는 자라면서 여러 종류의 인종차별과 인종 프로파일링(인종이나 민족을 범죄의 근거로 판단하는 편파적 수사)을 경험했다.이후 고등학교 때 백인 특권층이 대다수인 공립 영재학교에서 흑인 학생회를 만들고, 학생회장이 되었다. 흑인 차별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 실천 운동가로 리더십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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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는 자메이카, 아이티, 트리니다드 토바고, 가이아나, 그레나다, 바베이도스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이 미국의 남쪽 끝과 남아메리카 북쪽에 위치한 국가들로서 아름다운 카리브해에서 온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독서에 할애했던 그 많은 시간이 내 목소리를 찾은 방법이었다.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연설을 하거나 연설문을 쓰는 게 어렵지 않았고, 결국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가서 우승할 수 있었다. 내게 그런 재능이 없었더라면 리더로 활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독서는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훔친 거 없어요. 이건 태권도 띠라고요.” 나는 억울해서 설명했다. 엄마 얼굴에 번쩍 분노의 불길이 일었다. 내가 주머니에서 띠를 꺼내 보이려 하지 엄마가 말렸다. “주머니 보이지 마라. 안 그래도 돼”
델리 주인은 내가 50센트짜리 조그만 봉지 과자를 훔쳤다고 의심했다. 어처구니없었다. 우리는 곧장 가게에서 나왔다. 엄마는 분노로 이글거렸다.
같은 거리에서 우리 형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럼 의심을 받으며 인종 프로파일링을 당했다. 형도 평소처럼 도장을 나서는데, 경찰에게 붙잡혀 갔다. 경찰들이 형을 체포한 이유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범죄를 저지를 사람처럼 생겼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전까지는 학교 밖에서만 미묘한 차별을 느꼈는데, 이제는 학교 안에서도 경험해야 했다. 백인 아이들이 말하곤 했다. “너는 왜 말하는 게 백인 같아.” 그런 놀림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 무시했더니 점점 더 심한 말을 듣게 되었다.
예상대로, 흑인 학생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하는 백인 학생들이 많았다. 조회 시간에 회장으로 내 이름이 발표되자 교실에 있던 아이들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어떤 아이들은 킬킬댔고 어떤 아이들은 불쾌한 기색이었다.
백인 학생들이 지지하든 말든 우리 흑인 학생회는 변화를 위해 싸워 나갔다. 시간이 흐르자 그들도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서 활동하는 지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패트릭과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각종 행진과 시위 현장에 참여했다. 처음 참여한 시위는 에릭 가너의 죽음으로 촉발된 행사였다. 그때 우리는 열다섯이었다. 나는 화가 났다.
고등학생이던 내가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항해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시위를 했다.
인터넷상으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은 뒤, 우리는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일곱 가지 요구 사항’을 담은 성명서를 완성했다. 그러고는 모든 미디어에 그 성명서를 보냈다.
우리가 시위운동에 참여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도덕적인 태도와 품성을 지키는 것이었다. 시위 현장에서 벌어지는 소란과 폭력이 주가 되면 안 되었다. 우리는 전략적일 필요가 있었다.
흑인 목숨 전략은 이제 뉴욕 시에서만 주도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전국 흑인 인권 운동 차원에서도 중요한 단체가 되었다.
3년 후인 2010년 4월, 그동안 해왔던 모든 일들이 마침내 커다란 원을 이루어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내가 만든 단체 흑인 목숨 전략이 전미 행동 네트워크가 주는 ‘존 루이스 유익한 소동 상’을 수상했다.
내 몫을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어 그들 또한 자기 몫을 해낼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공정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저마다의 몫을 해내다 보면, 어느덧 자신이 있어야 할 저마다의 자리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