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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통의 편지 -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ㅣ 나무픽션 6
설흔 지음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23년 2월
평점 :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퇴계 이황에게 날아온 편지에서 시작된 공부 수업
시대의 큰 스승. 퇴계 이황의 공부법을 감동적인 소설로 읽다!
조선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퇴계 이황에게 공부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다면, 퇴계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네통의 편지>는 노년의 퇴계가 배움에 목말라하는 사람을 초대해 1일 수업 형식으로 각자에게 딱 맞는 공부법을 알려주는 네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고전 소설 시리즈로 연암의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붉은 까마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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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그 인물의 정체에 대해 말을 아꼈다. 공부에 목말라 하는 자라고 넌지시 밝히기는 했으나 사실 그런 정보는 있으나마나 한 것이었다. 선생을 찾는 사람들 중에 공부에 목말라하지 않는 이가 어디 단 한명이라도 있었던가.
무식한 놈 소리에 마음이 상했다는 이야기는 배순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돌석이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듣는 말 또한 바로 그것이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 무식한 놈 소리를 퍼부어 대는 자들이 돌석과 같은 처지에 있는 노비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돌석이 책을 들고 양반처럼 공부한다는 소식은 미처 손 쓸 새도 없이 빠르게 다른 노비들에게 퍼져 버렸다. 애쓴다며 격려하는 이들도 가뭄에 콩 나듯 한둘은 있었지만 대개는 드러내 놓고 비웃기 일쑤였다.
바로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일입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지 생각하며 무작정 남의 뒤꽁무니만 따라 하는 공부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왜 책을 들고 오랜 시간을 견뎌 내야 하는가. 왜 나는 농사나 고기 잡는 일이 아니라 공부를 하는가의 이유를 마음 깊은 곳에서 분명히 깨닫고 정리한 뒤에야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공부는 질문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학문이란 문학, 그러니까 궁금한 것을 잊지 마십시오. 궁금하지 않으면 공부는 결코 시작되지 않습니다.
공부란 우리가 이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 곡 익혀야 할 삶의 기술입니다. 재물을 모으거나 쟁기를 만드는데 만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삶을 올바로 살기 위한 기술이니 다른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훨씬 어렵겠지요.
“공부를 시작하기는 했으나 벽에 다다른 상태로 보는 게 좋겠습니다. 이 고비만 넘긴다면 공부에 큰 진전이 있을 것입니다.
온 힘을 다해 닦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비로소 원래의 밝음을 되찾을 수 있지요. 그러나 일단 닦아 놓기만 하면 이야기를 달라집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닦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드는 힘이 줄어들고, 거울은 이전보다 훨씬 빨리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꾸준히 공부하는 것으로써 고비를 넘겼다면 이제 공부를 즐길 차례입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분명 아는 것의 단계가 올 터이고, 그 단계를 넘어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에 이르는 단계가 오리라. 얼마나 오래 걸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잘 설명해 주었네. 공부란 결국 마음을 다잡는 일일세. 마음이 중심을 잡지 못하면 그 어떤 공부를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야; 어느 상황, 어느 때이건 이것 하나 만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니, 공부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의 괴로움은 마음을 한 뼘 더 키울 수 있는 값진 양식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괴로움은 힘들다며 투정 부리고 멀리 쫓아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두 손 들어 반갑게 맞이해야 할 진귀한 손님 같은 것은 아닐까.
결국 오늘날의 선생을 만든 것은 재능이 아니라 끝없이 공부에 매진하는 미련함과 끈기였다. 돌석은 붓을 들어 ‘미련함으로 장애를 돌파하라.’ 적었다 선생의 지난 시절에 대한 회고를 듣고 돌석의 가슴속에서 불현 듯 떠오른 구절이었다.
결국 공부를 한다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바동거리다가 마침내 그 의미를 깨닫고 무릎을 치며 기뻐하다, 나중에는 스스로 그 존재 자체에서 멀어져 영원으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