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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배달합니다, 복배달
원율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3년 2월
평점 :
“내일을 배달합니다”
입학, 졸업, 취직, 승진. 쉬지 않고 달려온 우리들의 일상에 따스하고 배부른 휴식을 배달하는 힐링 소설.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며 힘들게 삶을 살아낸 독자들에게 따듯하게 위로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는다. 오늘도 힘들게 삶을 살아낸 독자들에게, 배달이 필요한 세상 모두에게 내일을 배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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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고욱은 개미였고, 재익은 베짱이였다. 달라질 줄 알았다. 열심히 공부하면, 재익보다 좋은 대학에 가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졸업장을 받으면, 자신이 훨씬 더 잘살게 될 거라 믿었다. 그리고 오늘 구재익을 만났다. 그 순간 확인 한 건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고욱은 개미 같은 배달원, 재익은 베짱이 같은 집주인, 꿈꿔왔던 미래와는 정반대의 결과였다.
다들 기분이 좋은지 서로 계산하겠다고 난리였다. 대기업에 붙은 내가, 은행에 들어간 내가 하고 싸우는 동안 고욱만 입을 다물었다. 결국 탕수육은 삼성전자가. 술값은 국민은행이 내고 자장면만 각자 내기로 했다. 다들 반짝반짝 빛나는 신용카드를 꺼내 들었다. 학생증 체크카드를 아직도 쓰는 사람은 고욱 하나뿐이었다.
호진은 무슨 일수 대출 홍보물처럼 생긴 핑크색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햄볶으라니, 정말... 어쩌라는 건지... 고욱은 당황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배달? 행복? 행복을 배달한다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처음이지만 긴장할 필요 없다. 음식을 받아서 가져다주기만 하면 된다. 요즘에 비대면으로 두고 가길 원하는 사람도 많고, 오히려 천천히 가져다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도 많다. 그냥 간단한 심부름 정도라고 생각하자!
“맛나게 드셔보...” “고욱?” 익숙한 목소리에 고욱은 고개를 들었다. 가늘지만 짙고 끝이 꼬부라진 눈썹에, 툭 튀어나온 입술, 무엇보다도 저 비열한 웃음. 맙소사, 구재익이었다!
메시지 알림이 거의 100개가 넘었다. 구재익이 친구들을 초대한 단체 메시지 방이었다. 그 방에는 고등학교 때 재익과 친하게 어울렸던 일진들이 모두 들어와 있었다.
“소장님, 사람들이 원래 이런가요? 무시하고, 욕하고, 겨우 만원, 이만 원짜리 밥 하나 시켜놓고 그렇게까지.... 제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세상이 왜 저한테만 이렇게 가혹한지 모르겠어요. 흐흑”
“내일도 오늘처럼 일하려고, 살려고,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라서 그래요. 그렇게 누군가는 가족을 먹여 살리고, 누군가는 부모님의 병원비를 벌겠죠. 자식에게 밥을 해 먹이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고욱씨는 사람들한테 내일을 배달하는 거예요.”
“사장님이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따님 애지중지 키우셨 듯 저한테는 다 자식 같은 직원들이에요. 말조심하세요!”
그 시간, 재익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야식으로 시킨 치킨 다리를 뜯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해온 작업의 효과가 가 슬슬 나타날 때가 되었다. 누군가를 괴롭힐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고립’이었다. 주변에 친구가 없거나, 무조건 지지해줄 가족이 없으면 사람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고욱은 항상 가속만 생각했다. 입학과 동시에 졸업만, 졸업과 동시에 취업만, 하는 생각에 주변에 좋은 것들을 제대로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살아온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엔 인생 후퇴라고 생각했던 배달 일을 하면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웠다.
이렇게 재익에게 당하는 게 분하고 억울했다. 무엇보다도 고욱 때문에 다른 식구들이 피해를 보는 게 가장 속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이 원망스러웠다.
“영상에 나온 사람은 제 친한 친구입니다. 절대 음식에 손을 댈 그런 친구가 아니고요. 학창시절에 괴롭힘을 당했던 이야기도 사실이에요. 부모님께 손 안 벌리고 취업 준비한다고 해서 제가 복배달 소개해줬어요. 그 제이크라는 사람, 제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콩밥 먹을 준비 하세요.” 역시 로펌! 고욱이 주먹을 꽉 쥐었다.
고욱의 마음이 아무리 급해도 전기 스쿠터는 천천히 달려갈 뿐이다. 어쩌면 스쿠터는 고욱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남들보다 빠르지도, 잘나지도 않은 게 영락없는 고욱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느릴지언정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