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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감상도 공부가 필요합니다 - 명화, 어떻게 읽고 이해할까
이명옥 지음 / BOOKERS(북커스) / 2023년 2월
평점 :
전시 기획자이자 사비나미술관의 관장 이명옥 관장은 아직도 그림이 어렵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그림 감상 공부가 필요한 이유와 방법’을 작품을 통해 이야기 한다.
‘고유한 스타일’과 ‘새로운 미술 언어’로 전 세계 불멸의 화가가 된 30인의 그림을 살펴본다. 화가가 살아온 시대적 배경, 창작 동기 등 주변의 영향에 따라 표현기법을 고안하여 독창적 화풍을 통해, 독자들이 알지 못했던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경험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훌륭한 작품을 이해하는 안목을’ 길래 내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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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를 병들게 하고 절망에 빠뜨리는 불행도 병에서 회보되는 내일이면 삶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에너지가 된다.
반고흐의 걸작 <불꽃-아이리스>는 그가 절망의 순간에도 자기암시를 통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용기를 얻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란색 화병에 담긴 보라색 붓꽃을 그린 이 정물화는 -------- 생레미 마을 인근 생폴 드 모졸 정신요양원에 입원한 기간에 제작한 그림 중 한 점이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의 연구원들은 세계 최고의 품질에 도달한 아프가니스탄산 라피스 라줄리로 마든 파란색 안료가 소녀의 터번에 사영되었다고 밝혔다. 신비한 빛을 발하는 파란색 터번과 노란 색조의 스카프, 흰색 옷깃으로 포인트를 준 황갈색 겉옷의 보색 대비 조합이 서양미와 동양미가 혼합된 복합적 아름다움을 이끌어 냈다.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고리 소녀>
비평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마리 테레즈에 대한 피카소의 사랑이 너무 강력해서 그 자신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녀는 피카소의 열정을 자극해 창작 활동으로 이끄는 에로틱한 뮤즈였다. 그 증거는 그림에 있다.
절규는 왜 불멸의 명작으로 평가받을까.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두렵거나 불길한 감정, 느낄 순 있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공포와 불안, 절망감을 회화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뭉크는 인간의 실존적 불안과 삶의 두려움을 그림에 최초로 표현한 화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티첼리는 아름다움이 절대적 가치를 지녔으며 예술의 유일한 목적인 미와 조화, 균형감을 모두 갖춘 이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고 이는 오직 예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예술관을 가졌다.
바다의 물거품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태어난 비너스가 조개껍데기를 타고 키프로스 해안에 상륙하는 순간을 묘사했다.
미술 역사에서 최고의 컬러리스트이자 색채시리학자로 평가받는 마티스에 색은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닌 창작 도구였다. 이는 다음과 같은 마티스의 말에도 나타난다.
내 손에 물감 상자를 받은 순간, 나는 천국을 발견했다, 색은 단순할수록 내면의 감정을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내가 쓰는 모든 색은 한데 어우러져 노래한다. 마치 합창단처럼.
혁신은 엄청난 근면과 인내심, 책임감을 요구하는 아주 힘든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노력은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초점도 놓치면 안 된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지킬 천재성, 지식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인상주의 대가 클로드 모네의 걸작 <정원의 여인들>은 위대한 혁신이 번뜩이는 천재성의 결과물이 아니라 힘든 노력의 결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유럽과는 완전히 다른 낯선 문화권인 타히티에서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화풍을 창안해 무명화가라는 꼬리표를 떼고 성공하겠다는 야망이었다. 원시문화에 동경과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 새로운 화풍 창안이 타히티에 체류하게 된 동기였다는 것은 고갱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즉, 교활하고, 비열하고, 우둔하고, 허영심 강하고, 중상모략하는 인간군상을 가면에 비유해 풍자한 것이다. 그는 거짓으로 꾸민 가면을 쓴 군중 속에서 가면을 쓰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해 오직 자신만이 진짜 얼굴을 가진 참된 존재라는 것을 보여줬다. 그런 한편 가면은 앙소르가 느꼈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 환상, 내면의 상처, 정신적 붕괴를 상징하기도 한다. 앙소르는 ‘가면의 화가’ 불릴 만큼 가면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수차례 사별의 슬픔을 경함한 뵈클린은 망자들이 세상의 소음이 사라진 고요한 침묵의 세계에서 영혼의 안식을 누리기를 바랐다. 즉, 상처받은 기억이나 감정을 놓아 보내야만 했던 예술가와 후원자의 욕구가 그름에 반영돼 치유 그림이 태어나게 됐다.
샤르댕은 다른 화가들과 정반대 길을 걸었다. 그는 1728년 아카데미 미술분과 회원이 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화가였지만 소외 장르인 정물화를 선택하고 50여년이 넘도록 정물화를 그렸다. 더욱 놀랍게도 그는 역사화 훈련을 받으며 터득한 표현 기법을 정물화에 적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