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시끄러운 정적에 관하여 반올림 58
사라 데센 지음, 박수현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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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애너벨은 어렸을 때부터 언니들을 따라 광고 모델 일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몇 년 동안 붙어 다니던 친구 소피와 틀어지면서 학교생활은 엉망이 된다. 둘째 언니 휘트니는 거식증으로 고통받고, 집안 분위기는 뒤숭숭하니 애너벨은 의지할 곳은 없다.

음악을 좋아하는 오언과 친해지면서 자신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면서 벌어지는 성장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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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는 나를 미워했다. 클라크도 나를 미워했다. 모두 나를 미워했다. 아니, 어쩌면 모두는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신경질적이고 까다로운 성격이란 건 알았다. 하지만 결국 최대한 예쁜 표정을 짓고 약속 장소에 가게 될 것을 알았는데, 아무리 신경질적이고 까다로워도 엄마를 속상하게 할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착한 아이였으니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처음 우리 모델 일은 아빠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둔 엄마에게 그저 재밌어 보이는 취미생활이었다.

 

그렇지만 휘트니 언니가 무너지는 시점이어서 커스틴 언니의 발언이 더 무겁게 다가온 거였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내 부담은 더욱더 커졌다.

 

한때 나랑 가장 친했던 두 사람보다 오언이 더 안전하게 여겨지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건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더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는데 그건 그 사람들이 하는 말과 생각이 더 날카로울 뿐 아니라 진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난 거짓말 안 해, 라고 오언은 말했다. 고기는 안 먹는다든가, 운전을 할 줄 안다는 따위의 얘기를 하듯이 덤덤하게. 그 말이 지닌 깊이는 헤아릴 수조차 없지만, 아무튼 안으로 움츠러들지 않고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오언의 능력과 거침없는 솔직함이 나는 부러웠다. 특히, 엄마가 기다리는 집 안으로 들어서는 그 순간에는 더.

 

무샤카 일은 따내지 못했다. 적어도 나한테는 화날 일도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엄마는 실망한 기색이었다. 나로서는 모든 게 다 끝나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했다. 하지만 이틑날, 점심 도시가을 꺼내는데 쪽지 한 장이 딸려 나왔다.

 

내 마음은 거북함과 창피함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는데 조금은 편안해 지는 것도 같았다. “제가 모델 활동을 하는 게 엄마한테 아주 중요하다는 건 알아요. 엄마가 아주 좋아하신다는 것도요.”

 

그렇지만 흙 속에 깊이 묻힌 씨앗들이 적어도 싹을 틔울 기회를 가진다는 생각을 하니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흙 표면 아래를 볼 수는 없지만 조그만 입자들이 결합하고 느릿느릿 기운이 솟아오르면, 싹을 틔우기 위해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는 일들이 벌어질 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엄마에게 모델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이 밀려왔다.

 

마음으로는 내가 잘못한 게 하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고, 완벽한 세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하기 힘들었다.

 

울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엉엉 울었다. 억제할 수 없는 흐느낌이 파도처럼 터져 나와서 나를 끌어내렸다.

 

엄마가 다시 웃어 보이는 순간, 내가 곧 하려는 이야기를 생각하니 슬픔과 두려움의 물결이 일렁였다. 준비됐니? 라고 엄마가 물었지만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안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가족들 앞에서 내 얘기를 털어놓는 일은 오언에게 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하지만 해 냈다. 아무리 꺼내기 힘든 부분이라도, 엄마가 숨을 멈추는 기색을 보이더라도, 아빠가 눈살을 찌푸리는 느낌이 들어도, 옆에 앉은 커스틴 언니가 몸을 떨어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저기 있습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서 윌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저 사람입니다.”

마침내 증언을 마치고 다 함께 어두컴컴한 법원 로비를 지나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정오의 환한 햇살이 쏟아졌다.

 

나는 마침내 엄마에게 얘기해서 모델 일을 완전히 그만두었고 엄마는 나의 일부이자 엄마의 일부이기도 했던 모델 일을 떠나보내는 걸 못내 아쉬워하긴 했지만, 아직도 직원을 구하지 못해서 애를 태우던 린다 아줌마 일을 시간제도 맡는 것으로 보상을 삼았다.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나는 더 가까이 다가가 오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음악을 들었다. 창문을 통해 햇빛이 비쳐 들어왔다. 밝고 따뜻한 햇살이 내 엄지손가락에 낀 반지를 비추자 오언이 천천히, 천천히 그 반지를 돌렸고 그 위로 음악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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