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곁에 우리가 있다면 - 재난 트라우마의 현장에서 사회적 지지와 연결을 생각하다
채정호 지음 / 생각속의집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욕이나 차별을 당해서, 몸이 아프고 상처를 입어서, 불치병으로 죽어가서, 음식과 물을 제대로 먹고 마시지 못해서, 돈이 없어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서 등등 우리는 끊임없이 고통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이 집, 학교, 직장, 군대, 각종 관계 등에서 정서적 트라우마를 겪습니다. 정서적 황산을 여기저기 퍼붓는 사회에서 살면 트라우마에 노출되지 않을 방도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총기 사용이 완벽하게 제한된 안전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말로 총질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이런 언어폭력에 노출되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입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관성이 있습니다. 폭력도 다시 폭력으로, 트라우마도 다시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쓰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관성을 뒤집어 매치는 힘으로 작동합니다. 트라우마가 트라우마를 낳고, 폭력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지금 우리가 끊을 수는 없을까요.

 

울분 우리에게 낯선 정서가 아닙니다. 부당함이나 불공정함으로 인해 울분을 겪는 모습을 학교나 직장 등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울분에는 분노, 분개, 억울함, 실망, 복수심, 무력감, 슬픔 등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심리학 용어로 무효화라는 경험을 겪으면 울분이 더 강해집니다. 이는 내가 쌓은 업적이나 경험, 성과 등이 별것 아닌 취급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각해 보면 울분이 우리나라에 많은 것은 당연합니다. 갑질을 포함한 부당한 힘의 사용이 만연해 있기 때문입니다. 뒤집어서 이런 사회 문제가 울분이나 트라우마로 작동하지 않으려면, 노력과 과정을 알아주고 공감하며 받아줘야 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아픔과 고통은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픔을 다독여주며 곁에 있을 수는 있습니다.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통은 위로받고, 아픔은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알면 자신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고통을 겪지 않으려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합니다. 하지만 아프지 않으려는 태도가 결국은 고통을 끊임없이 이어가도록 만듭니다.

 

트라우마 앞에서 사람은 이렇듯 취약한 존재지만, 때로는 강인함을 드러낼 때도 있습니다. 끔직한 일을 당했다고 그것이 무조건 트라우마로 발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겪어온 수많은 사건. 사고를 통하여 적당히 면역력을 확보한 덕분도 있습니다.

 

삶에서 안전감은 매우 중요합니다. 안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바탕에 있어야 우리는 일상생활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단 하루도 온전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공정은 지금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이자 가치가 되었습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람답게 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권력을 가졌다고 재산이 많다고 공종을 깨는 사회는 병적인 사회입니다.

 

트라우마는 영웅도 혼자서 헤쳐 나갈 수 없습니다. 소방관이 우리 사회와 시민을 위해 구조의 손길을 뻗치듯 우리도 소방관들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소방관들이 우리를 살려주듯 우리가 소방관들을 살려야 합니다.

 

조금 만 더 안전에 유념한다면, 문제를 초기에 발견하고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구멍을 연이어 놓치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구멍이 뚫립니다. 재난은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도미노처럼 연쇄 반응을 거치며 일어납니다.

 

사회에서 누군가 나를 돕고 지지한다는 감각이 있다면, 어떤 끔찍한 사건을 경험하고도 견딜 수 있습니다. 사회적지지 유무에 따라 사람은 살거나 아니면 나락으로 바집니다. 따라서 이름 모를 누군가의 고통이 소외되지 않도록, 혼자만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도록 서로의 곁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심리학자 다이애나 포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복 탄력성의 바탕은 자신을 사랑해 주고 맞춰주는 듬직한 사람에게 이해받는 다는 느낌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 사람의 생각, 가슴속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얻을 수 있다.” 내가 아픈 때. 비슷한 아픔을 품은 사람에게 받는 격려와 지지는 어떤 의사도 해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사회적 지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어둠이 모든 것을 삼키지 않도록 작은 빛을 건네야 합니다. 그것은 서로의 곁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지금은 혼자가 아닌 우리가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