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쓸모 있는 철학 강의
고스다 겐 지음, 오정화 옮김, 김선희 감수 / 더숲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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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두 가지로 구별했다. 시간 자체, 그리고 나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시간이다. 끊임없이 지나가는 시간 자체에는 현재 밖에 없다. 지금 먹고 있는 케이크가 조금 전에 산 것이라고 기억하는 내가 있을 때, 비로소 과거와 미래가 성립하는 셈이다.

 

사르트르는, 자신이 무엇인가(본질)에 대한 규정이 결여된 실존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자아를 실현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우리는 무의 상태에서 스스로 창조해 나가야 하며, 심지어 그 창조에는 선행하는 본보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상태를 두고 이간은 자유라는 형벌에 처해 있다라고 표현했다.

 

데카르트는 학문이란 확실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확실한 지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을까. 데카르트는 의심할 수 있는 것을 철저하게 배제한 뒤에 남은, 절대로 의심 할 수 없는 것이 확실한 지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라는 존재에 대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는 누구보다도 내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내가 자각하는 는 나의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 배후에는 스스로도 파악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자신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키르케르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진리 따위는 상관없다. 그를 위해 살고, 그를 위해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 할 수 있는, 자기 자신에게 유일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말은 자신만을 위한 철학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알랭의 (행복론)은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을 다루는 책이 아니다. 하지만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다. 웃으니까 행복한 것이다.”라는 문장에서 볼 수 있듯, 관념적인 정신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일상의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의지는 원래 어떠한 즐거움이나 기쁨과도 관계가 없다. 우리는 의지의 충동을 신체 활동으로 나타내고, 이해 또는 제어하려고 한다. 이런 표상 활동 속에서도 의지를 위로하고 잠깐의 살아가는 기쁨을 주는 행위로 쇼펜하우어는 예술을 높게 평가했다. 예술이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쾌락이며 자그마한 평온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이 물음엔 고전적인 정의를 내린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는 정의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옳음을 인정받아야 할 완전한 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꽃병에 아름다운 꽃이 꽂혀있다. 일주일이 지나면 꽃은 시들어 버린다. 하지만 누구도 꽃의 아름다움이 시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꽃이 구현하는 아름다움 자체라는 진리가 이데아다. 플라톤은 이데아야말로 각 사물의 진리성을 담당하는 지주이며, 그것에 의하여 우리의 진리 인식이 보장된다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사물을 바라보는 자신의 방법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게 한편으로 치우친 시야를 그대로 확장하여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재해석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를 니체는 관점주의(원근법주의)’라고 불렀다. 니체는 우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관점주의에서 탄생한 가치게 불과하며, 결코 보편적 진리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동을 한다. 예술에서 아름다움의 의미를 추구한이가 칸트인데, 에술에 대한 견해는 저서(판단력 비판)에서 볼 수 있다. 칸트는 아름다움을 어떤 종류의 조화가 생겨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조화란 여러 대상 사이에 성립되는 관계다. 칸트는 인간의 마음의 작용인 감성과 상상력 사이에 조화가 생길 때,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다고 보았다.

 

베이컨은 실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한 자연에 대한 연구와 해명이야말로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이를 표명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유명한 슬로건은 오늘날에도 회자되고 있다.

 

세상의 속도와 무게에 나를 맞출 수 없을 때, 누군가는 최신 기술 서 대신 철학책을 찾을지 모릅니다. 세상의 속도와 무게를 뚫을 변신의 기술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철학이 그 속도와 무게의 본질을 바라보는 각도와 우리가 부딪친 문제에 대면하는 태도를 일러주기 때문이겠지요. 그 각도와 태도로 인해 우리는 인공지능이 예술을 창작하고 자율 주행 기능이 인간의 운전 능력을 대처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철학을 공부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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