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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열여덟 어른 - 자립준비청년이 마주한 현실과 남겨진 과제
김성식 지음 / 파지트 / 2023년 1월
평점 :
자립준비청년이란 아동복지시설(보육원, 그룹홈, 가정위탁)에서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에 퇴소하여 홀로 살아가는 이들을 말한다.
보호대상아동은 아동양육시설에 맡겨진 후 만 18세까지 시설의 보호 아래에서 자란다. 만 18세를 기준으로 퇴소를 하는 이유는,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다는 의미 때문이다. 하지만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만 18세부터 성인이 되지만, 민법상으로는 만 19세 미만은 미성년자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결핍 속에서 살아간다. 자립준비청년들도 이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본인인 줄 알았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도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가장 불화, 이혼 등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개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정의 아픔을 얘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 덕에 비밀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처음 계획한대로 꾸준히 한길을 가는 경우도 있고, 산전수전을 겪으면서도 역량을 키우는 자립준비청년들도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혼자의 힘으로 이런 부침들을 견뎌내며 버터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생계를 해결해 주는 것보다 꿈을 꾸게 하는 것이 중요한지 이해하고, 꿈과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취업 교육의 한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직업은 꿈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사회는 알고 있을까.
자립준비청년에게 퇴소의 경험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문을 열고 이동하는 것과 같다. 퇴소 날, 시설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몸을 옮기는 순간은 짧고 간단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만 18세가 넘어서야 이런 경험을 처음 할 수 있기 때문에 자립준비 청년에게는 이 시간들이 특별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진 자기만의 공간은 바깥세상에서도 내가 쉴 수 있고, 몸을 뉘일 수 있고, ‘존재해도 된다고 말해준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립준비청년이 더 안락하고 안전한 주거 환경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예기치 못하게 비수를 꽂은 이들이 있었다.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용기를 내고 당당해지라고 요구할 수가 없었다. 보육원에서 살았다는 것은 덮기에는 너무나 큰 비밀이고, 펼쳐 보이기에는 이질적이었다.
우리 캠페인의 메시지는 첫 해부터 지금까지 동일하다. 열여덟에 어른이 될 수밖에 없는 자립준비청년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동정과 편견으로 보지 말고 ‘보통의 청춘’으로 봐달라는 메시지였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소중한 이유는 성공하거나 모범적으로 자랐기 때문이 아니다. 마침표를 찍지 못했더라도 그 시간을 견뎌내고 고통에 아파했던 모든 것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지원되는 교육과 프로그램들이 ‘자기다움’을 생각하고 ‘자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 일방적인 주입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경험하게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제는 자신의 삶을 꿈꾸는 자립준비청년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캠페이너들이 캠페인을 하겠다고 결심하며 똑같이 했던 말들이 있다. “평생 도움을 받았으니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평생 도움을 받았으니’에 담긴 수동적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능동적 상태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바꾸는 결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에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인생을 살기 때문에 우리는 아픈 것 아닐 까. 인생은 원래 고통과 기쁨과 희로애락이 섞여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삶의 기준을 바꿔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현재는 ‘열여덟 어른’이지만, 미래의 가능성을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 열여덟 어른을 벗어내고 자기다움을 갖추게 됐을 때, 또 다른 정체성으로 자신을 보여 줄 수 있을 때 이렇게 인사해 주길.
안녕 열여덟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