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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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손원평 작가의 신작
[서른의 반격]을 읽고.

나는 책을 고를 때 제목의 비중을 꽤 크게 두는 편이다.

제목 또한 그 책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원평 작가는 책의 제목을 기막히게도

잘 뽑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첫 장편소설

“아 몬 드”는 나의 최애책이다. “아 몬 드”하면 생각나는

이미지, 딱딱한 겉 껍데기 속의 고소한 풍미, 혀로 아몬

드를 굴릴 때의 꺼슬꺼슬 한 감촉이 떠올라서 읽는

재미는 물론, 왠지 맛보는 재미까지 선사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아 몬 드”를 읽기 시작했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감과 생생한 이미지를 그려내는 생동감 넘치는

문체가 너무 인상이 깊었다. 이번 신작 “서른의 반격”

을 읽은 리뷰를 쓰기에 앞서 [아몬드]와 [서른의 반격]

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각 사정은 결코 밝지 않고 오히려

절망적이고 암울하지만 소설 전체를 놓고 보면 어둡지

않고 유머감각이 있고, 이를 넘어서 유쾌함마저 가미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읽고 나면 뭔가 담백한 느낌이

랄까.

“서른의 반격”을 처음 받았을 때 제목이 주는 호기심에

정말 미치도록 읽고 싶었다. 이건 내 또래들의 이야기

가 아닐까 싶어서 어떤 연대기가 그려져 있을지, 나의

개인적인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섞여있지

않을까 너무 기대가 됐다. 첫 장의 “차례”를 쭉~

훑기 시작했다. “1챕터”가 “1988년생”이었고, 타 출판

사의 책이 떠오른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제목이 주는 느낌도 그렇고 요즘 유행하는 페미니즘

소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첫 챕터를 읽으면서

부터 마치 활자 안으로 미끄러지듯 쭉쭉 읽혀내려가

는 흡인력에 놀랐다. 나 역시 1980년대의 후반에

태어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김지혜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김지혜가 보고 자란 것들, 그리고

당시 뉴스에 나왔던 시대적 배경들을 읽어내려가며

고개를 연신 주억거리면서 “맞아~맞아~”를 중얼거렸

다.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마치 흑백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내가 자랐던 유년기의 시절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김지혜인 것도 재미있었다. 진짜 반에 김지혜

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꼭 한 명씩 있었고, 꼭 김지

혜는 아니라 해도 성만 각기 다른 “지혜”들은 왜 그리

도 많았는지^^* 그녀들은 각자가 가진 고유의 정체

성을 “작은”, “큰”,혹은 “A”,”B”로 구분지어서 표현했

다. 그때의 “지혜”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일상을

살고 있을지 몹시 궁금했다.

어른들은 종종 이야기를 한다. 아니, 사실 서른이라

는 나이도 이미 충분한 어른이지만 우리 서른 즈음의

사람들보다도 더 어른인 분들은 늘 우리에게 “참 좋은

시절에 태어났고, 좋은 시대에서 살고있다.”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그 “좋은 시절”

이란 대체 어떤 시절인지 그다지 실감을 하면서 살아

오진 못했다. 주인공 김지혜의 모습은 사실 대다수

1980년 후반에 태어난 청년들의 자화상과 지독히

닮아있다. 아니, 닮아있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우리의

일상이고 아직도 우리는 완전한 어른으로서 독립하

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김지혜를 알아갈

수록 참 눈물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곧 현실 속

나의 모습이었기에. 그리고 결혼 후에는 “유 팀장”

의 역할을 맡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읽으니

서글픈 실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사실 1988년생은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이다. 나 역시

1986년생이지만 사실 나 스스로가 진정한 어른의

삶을 살고 있다고 이야기를 할 자신은 없다. 우리는

중간에 “끼인 세대”이고,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유목민의 생을 살고있는 것 같다. 나의 이런 현실을

주인공 김지혜의 모습을 통해서 보자니 마치 유체이

탈을 해서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나의 지난 세월들,

또 지금의 삶을 반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답답한 내용만 있는 소설이냐, 그건

결코 아니다. 이 소설의 제목이 “서른의 반격” 아닌가.

우리는 이 “반격”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늘 찌그러져서 살아오기에 급급했던 주인공 김지혜

의 일상에 느닷없이 괴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은

미스테리한 남자 “이 규 옥”이 등장하면서 김지혜의

늘 똑같던 일상에도 조금씩 특별한 일들이 생겨난다.

규옥의 정체는 독자들에게도 영 수수께끼인데,

이 “규옥”이라는 인물이 소설의 톡톡한 감초 역할을

한다. 세상을 향해 늘 소심하게 혼자서만 중얼거리기만

했던 지혜는 규옥이라는 인물을 만나고 나서부터 조금

씩 대담하게 변해가고, 비록 아주 큰 “한 방”을 날리

지는 못하지만 소심하게나마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고, 또 부조리한 일들에 맞서는 부분에서는 내 속이

“뻥!!!”뚫리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이런 일들을 겪어본

적이 있었기에 주인공 김지혜가 느끼는 감정과

상황들에 큰 공감이 갔고 동질감을 느끼면서 읽었다.

비록 나 하나 참는다면 세상이 조용하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계속되는 부당함과 상처는 고스란히

내 몫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규옥은 비록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해도

이런 작은 몸부림들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이슈화 시킴으로써 소심한 변화라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82page -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기만 해도
세상이 조금쯤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약간 정의의 사도와 같은 캐릭터라고 해야 하나.

규옥, 무인, 남은 아저씨, 지혜의 다양한 복수 활극들은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이고, 어둡기만 한 소재를 아주

유쾌하게 흘러가게 하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어느새 나도 그들과 같이 작당 모의를 하며 사건을

벌이는 일에 동참하는 것 같았다.

이 [서른의 반격]은 모든 “N포 세대”의 이야기이자,

일상을 담은 소설이다. 나 역시 겪은 일들이고, 아직도

겪고 있는 ing형 이야기... 마냥 낙관하기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고 있는 일상을 살고 있는

N포 세대들을 대변해서 톡 하고 쏘는 사이다 같은

반격을 가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조금은 뻥 뚫

리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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