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스피드
김봉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13page
나는 이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완전히 그만두었으며
성적 긴장감은 망상이 아니라면 없다.
인간때문에 기쁠 일은 점점 줄어가고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지도 이미 오래.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쇼와를 환기하는 물건과 건물, 식물,
때때로 강렬하게 사로잡히는 이형 동질을 발견하는 일이 거의 다다.

*48page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어느 때보다 성실해졌다.
그것은 하나도 섹시하지 않았지만, 내가 가장 멋질 때라는
건 잘 알았다.

나를 절하하는 건 얼마든 좋았지만, 내 삶을 할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85page
또 너한테 말리는구나.
헷갈리게 흘리는 거 여전하네.
그렇지만 밤의 맥박으로 뚜벅뚜벅.

영우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그건 오직 한 사람이 날 거부한 것이었지만
나는 세상 모든 사람으로부터 거절당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건 잘 구별이 되지 않을까.

*133page
내가 사랑만 하지 않으면 얻을 것은 너무 많다.
비약적으로 내 삶은 윤택해질 것이다

*163page
우린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과거에 와 있어.
우린 같은 곳에 있고, 같은 것을 보고 있고, 같이 있어.
쭉 그리워해왔잖아? 이것인지 이곳인지를. 뭔지도 모르면서.

*186page
사랑만큼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살피고, 정의하기 곤란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무한대의 크기를 가진 그릇, 사랑.
그 어떤 말로 정의하려 해도 사랑은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도 사랑이지 않을까?'하며 스르륵 들어와서는
사랑의 뜻 역시 무한으로 넓어진다.

*187page
어쩌면 사랑은 영원히 정의되지 못한 채 부유하며 말할 수 없음,
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것을 느꼈다, 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소설가는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책 한 권을 써내며,
음악가는 선문답처럼 음악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추며
투박해지는 것에 저항한다.

*202page
일방적인 통보는 예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여전한
단답형의 대답은 나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사랑에 문맹이 있다면 그였고, 배우지 못한 게 있으면
내가 가르쳐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203page
그와의 사랑은 끝났고, 끝나버렸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담담하게 찾아와버리는 것에 맥이 풀렸다.

*218page
글쓰기와 사랑은 용기를 필요로 했고,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와의 사랑이 끝난 지금, 끝나가는 지금,
나는 반쯤 용기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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