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 토니오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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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큼이나 몽롱하고,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이 책을 덮은 후에도

내 머리와 마음을 꽉 채우고 있는 것 같다.


배경은 포르투갈의 마데이라 섬, 뜨거운 태양빛이 작렬하는 남미의 이미지와

함께 푸른 파도도 같이 떠오른다.

고래는 바다에 사는 생물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생물이다.

오키나와의 츄라우미 수족관에 갔을 때 거대한 수족관 안은 또다른 시공간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초대형 수족관 안을 고래상어 두 마리는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희고 넓다란 배를 드러내며 수족관 안을 미끄러져 헤엄치던 고래의 이미지가

[프롬 토니오]를 읽는 내내 생각났다.

 

 

 

 

어느 날 마데이라 해변가에 수많은 고래떼들의 죽은 사체들이 밀려온다.

'스트랜딩'이라는 용어를 이 소설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됐다.

궁금해서 네이버에 쳐보니 '해양 동물의 갑작스런 집단자살 현상' 이라고 한다.

이 스트랜딩에는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는 데, 환경 이상 징후라는 설,

고래가 바다의 길을 읽었다는 설, 혹은 어떤 중역대의 소음 전파로 인해

고래의 신경계에 혼란이 와서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랜딩 현상이 일어난다는 설 등

무엇하나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는 설들이 많은데, 이런 스트랜딩에 대한 호기심이

소설을 읽는 내내 촉매제로 느껴졌다.


 이 포르투갈의 섬 마데이라 해변가에서 수십 마리의 고래 떼가 집단으로

폐사 현상이 알어나고, 이 수많은 고래의 떼죽음으로 인해 마데이라 해변가는

갑작스럽게 해양생물 학자들의 연구 근거지가 된다.


시몬은 이날도 마데이라의 해변가를 '떠돌고' 있었다.

그 역시 연구원이기는 하나, 최근 들어 발생한 고래의 스트랜딩 현상을 연구하는 해양학자는 아니다.

시몬은 미국인 화산학자로서 마데이라 섬에서 수년째 일본인 지진학자 데쓰로, 해양학자 앨런과

함께 팀을 이뤄 지각 현상을 연구 중이었다. 물론 현재 그들의 연구 성과는 답보 상태다.

시몬은 현재에 살고 있으나, 과거에 얽매인 존재.

갑작스러운 예견치 못한 사고로 같은 팀원이자 시몬의 애인, 촉망받는 해양학자였던

연인 앨런을 잃게 되었다.

그는 거의 반미치광이 상태로 마데이라의 해변가에 보트를 띄우고,

그 위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헤매이며 앨런을 찾는 일에만 몰두한다.

그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 상태로 해변가를 서성이던 그가 수십 마리의 고래떼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그중 제일 거대하고 육중한 흰수염고래의 입에서 토해져 나온

한 생명체와 만나게 된다.



기이하지만 운명적인 생명체와의 첫 만남. 미끌미끌하고 얇은 막에 둘러싸인

그 생명체의 정체는 외계에서 온 괴생명체 같기도 했고,

혹은 방사능에 노출되어 유전자 변형을 일으킨

이물감이 느껴지는 물고기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시몬은 그 알 수 없는 생명체를 룸메이트인 일본인 지진학자 데쓰로의 동의도 없이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기이하고 이상하지만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읽는 내내 계속 나를 끌어들인다.


생명체는 하루가 다르게 외형을 바꾸어 거의 인간의 모습이 되어가고,

결국 시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데쓰로가 토니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시몬과는 다르게 데쓰로는 토니오를 경계하고, 시몬과 데쓰로는 알 수 없는

생명체로 인해 그동안 앨런의 죽음으로 각자에게 앙금처럼 남아있던 상처를

본의 아니게 서로 들추게 된다.

 

 

시몬이 토니오와 함께 고래의 사체가 있는 해변가로 갔을 때

토니오가 몸을 구부려 고래의 영혼과 나지막이 텔레파시를 주고받고,

그들의 언어가 어떤 빛을 내뿜는 오로라처럼 연무를 이루어 허공에

번짐과 동시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신비로운 주술의 힘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이밖에도 토니오는 앨런이 머물고 있는 바닷속 세계에 가서

앨런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그 징표로 은목걸이를 시몬에게

건네주기도 한다.


시몬도 이 알 수 없는 현상 앞에 자신의 정신이 피폐해져서

드디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인가 자문하지만,

그 징표인 앨런의 은목걸이를 보고선 토니오가 전해주는 앨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프롬 토니오] 속의 신비로운 세계 유토, 토니오의 영원한 친구 거대한 고래 룸,

또다른 세계인 우토, 토니오는 시공간을 넘어서 우리 곁에서 여러 존재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살았던 토니오의 현재에도

늙는다는 일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


*253page

"우린 약속했네. 곧 다시 만나자고. 더는 육체에 매인

존재가 아닌 자유로운 영혼의 형태로 못다 한 이야기를

하자고. 죽어가는 고래들은 슬퍼하거나 비장하지 않았네.

그들에겐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



*276page

"우리들에게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뭘까? 죽는 순간의 통증?

더 살 수 없다는 아쉬움? 아니야.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혼자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지. 떠나는 자도 남겨진 자도

같은 이유로 두려워하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죽음 저 너머로 떠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속에 데리고 간다네.

남겨진 자들은 반대로 죽은 자들을 떠나보내지 않고

기억 속에 담아 함께 살아가지."


그에게도 죽기 전에 현재로 돌아오게 된 이유이자

유일한 소망이 남아있고, 포르투갈에서 프랑스의 그라스로

가기 위한 여정 속에 시몬, 데쓰로, 마우루(포르투갈 마데이라 섬의 현지 의사)

의 츤데레 우정은 빛을 발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제일 짜릿하고 소름끼쳤던 부분은

사실 [어린 왕자]와의 연관성이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토니오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것이 생택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와 연결이 되고

그럼으로써 시공간의 넘나듦이 이해가 되고,

마지막으로 토니오가 시공간을 넘어서라도 현재로 돌아와서

그 먼 여행을 향해가는 그 개연성과 플롯에 감탄했다.

이렇게 설득력이 있을 수가.


최근 들어 단편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있던지라

장편소설을 읽는 일이 망설여졌는데,

이번 여름 휴가 책으로 [프롬 토니오]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방구석 휴가를 즐기는 나를 남미의 해변가, 또 리스본,

신비로운 세계인 유토와 우토, 고래의 배속, 프랑스 등으로

여행시켜 준 책.


예쁜 표지만큼이나 내용 또한 몽환적이고 신비롭고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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