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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구
김이환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2012년 마야 문명에 관한 멸망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세계 멸망에 대한 책과 영화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항상 세계 멸망의 시작 중심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미국의 어느 영웅으로 말미암아 그 멸망이 사라지거나 이겨내는 이야기들에 많이 싫증이 났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나온 멸망에 대한 그리고 1억 원의 고료를 받았다는 멀티 문학상의 수상작인 이 책을 봤을 때 읽고 싶다는 생각에 이 책을 읽고 싶은 목록에 채워 넣을 뿐 내 손에 잡기가 많이 망설여졌다. 그 이유는 내가 읽었던 수상작 중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이 별로 없어서였고 이번 책도 혹시 실망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에 차마 책을 내 수중에 놓지 못했다. 그러나 알고 있던 지인이 책을 읽고 재미있다는 서평과 이야기를 듣고 인제야 책을 펼쳤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검은색의 구는 모든 물체는 통과하면서 사람들을 흡수한다. 그 모습을 처음 발견한 주인공 남자는 짐을 싸서 도망치기가 바빴고 신고할 정신이 없었다. 사람을 따라다니는 구를 유인해 며칠은 안전할 거로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 몇 시간 뒤 구는 자체적으로 둘로 나누어지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 통제할 수 없어진다. 그렇게 모든 사람이 피난을 떠나고 남자는 부모님과 만나기 위해 구를 피해 고단한 여행을 시작한다.
모든 사람이 검은 구에 흡수되어 혼자 남은 남자는 고독함을 느끼며 사람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정작 검은 구가 사라지고 나타난 사람에게 그는 다시 도망자의 길을 걷게 된다. 왜 그를 도망자로 만드는지. 다시 세상에 나왔으면 더 좋게 살아갈 수는 없는지 그 모든 것이 다 안타까웠다.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적으로 돌려야만 했던 사람들. 그러나 그렇게 그 사람을 적으로 돌리고 살았더라도 그의 삶은 행복할까? 싶다. 차라리 그도 처음부터 그 구에 흡수되어 다른 사람과 같은 입장이 되었더라면 그의 삶이 더 편해졌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따라다니는 검은 구. 그리고 그 검은 구에 데이기만 하면 흡수되어 사라지는 사람들. 만약 정말로 그런 구가 세상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만 같다. 내가 최초 목격자이고 신고를 했다고 해도 그 말을 누가 믿을 것인가?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말 갈팡질팡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우리가 믿을 것이라고는 정부뿐이지만, 정작 그들은 위기 상황이 닥치면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우리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을 것 같다.
책이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 밤늦게까지 손에 놓지 못했고 잠시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 갑자기 섬뜩하고 무서웠다. 왠지 어디선가 그 검은 구가 내 앞에 다가올 것만 같았고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한 채 그 구에 잡혀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에 얼른 다시 방으로 들어와야 했다. 그 무서움에 책을 더는 읽을 수 없어 덮고 자리에 누워 불을 껐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내 귀에 들려오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난 소스라치게 놀랐고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을 청했을 정도로 난 책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요즘 이상 기혼으로 어쩌면 세계가 정말 멸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아직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다 해보지 못했는데 라는 생각과 어쩌면 우리가 너무 마구잡이로 세상을 쓴 대가를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 괜히 무서워졌다. 아마 그래서 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이 책에 나왔던 검은 구에 더 섬뜩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검은 구. 그것의 정체는 모르지만, 세상에 나타나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그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모든 사람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검은 구. 그 검은 구를 탄생시킨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