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샹보 거리
가브리엘 루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이상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초등학교 시절에 거의 여름 방학이 되면 시골 외가댁에 내려가는 것이 의례적인 일이었고 난 지금 사는 도시보다 시골에서의 여름이 도시보다 시원해서 참  좋았다. 그리고 그때에는 시골의 집이 지금 도시의 모습으로 재건축되기 전인 한옥이라서 훨씬 더 시원했다. 마루에 나가 앉아 있으면 경운기나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다시 내가 사는 도시로 돌아오면 창문 밖이나 마당에 앉아 있어도 시골에서 보았던 풍경들을 볼 수 없으며 보이는 거라고는 온통 자동차와 높다란 빌딩들뿐이었다. 이런 도시에서 낭만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다. 그렇게 어렸을 적 순수했던 마음을 읽고 삭막하게 살아가던 나에게 이 책 "데샹보거리"는 어린 시절의 마음을 다시 되돌려 준 것 같다.

단편들로 이루어진 소설 같아 보이지만, 주인공과 그 주위의 사람은 똑같아서 단편같이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인 크리스틴의 어린 시절 데샹보 거리를 배경으로 자신의 가족과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생활이 궁핍해 어쩔 수 남는 방을 세를 주게 되었고 그 집에 새로 들어온 세입자에 대해 호기심을 보였던 단편 <두 흑인>,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언니를 반대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게 되고 꼬마 크리스틴은 사랑하는 데 반대하는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인 <결혼 방해작전>, 꼬마에서 어엿한 숙녀가 되어 짤막한 연애를 한 <빌헬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원하는 교사가 되어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마지막 이야기인 <밥벌이>까지 총 18편이 수록되어 있다.

캐나다의 매니토바 주 위니펙 근교에 자리 잡은 조용한 작은 거리인 데샹보 거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생각나게 하였다. 나도 크리스틴처럼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며 친구들과 밖으로 돌아다니면 놀았고 밖에서 있었던 일을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재잘 재잘거렸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나를 보면 온종일 재잘거린다고 촉새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나의 말수는 줄어들었고 이제는 나의 옛날 별명이 무색해져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나와 비슷한 이 책의 주인공인 크리스틴에게 심한 감정이입을 느끼면 어렸을 적 내 모습으로 그녀를 상상하고 있었다.

데샹보 거리 그 너머에는 숲이 있고 이웃은 별로 없지만, 한적한 그곳에 크리스틴과 같이 재잘거리며 그 거리를 느껴보고 싶고 그곳에 정말로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고 눈만 감으면 그곳이 내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