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조선의 마지막 황녀에 대한 다큐멘터리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총 2부작인 재연 프로그램처럼 다큐멘터리 형식을 띤 드라마였다. 그렇게 난 덕혜옹주를 처음 알았다. 황녀이지만 조선의 땅에서 살 수 없었으며 적국의 땅에 볼모로 잡혀 적국의 남자와 정략결혼에서 아이까지 낳았지만, 결국 그 아이를 데리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보지 못한 비운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그녀 덕혜옹주를 오늘 난 책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녀와 나의 첫 대면부터 순조롭지만은 않은 만남에 책을 덮을 때까지 난 그녀와의 만남을 오히려 후회했다. 기억 속에 사라졌던 그녀가 너무도 아프게 나의 마음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저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난 것뿐이데 그녀의 삶은 왜 이리도 아픈 것인지. 그저 대한제국을 가슴에 품었을 뿐인데 그녀의 자식까지 엄마를 싫어하게 되었는지. 그 모든 아픔과 슬픔에 목이 메 그녀가 차마 울지 못하고 참았던 눈물을 내가 대신해서 울 수밖에 없었다.

고종이 황제의 자리를 물러나고 순종이 황제에 오른 그때에 고종의 딸로 덕혜옹주가 태어났다. 나라가 어수선할 때에 태어났지만, 고종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옹주. 하지만, 아직 황족으로 호적을 올리지도 못하고 아직 이름도 없는 옹주였다. 그렇게 옹주가 일곱 여덟 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아버지 고종이 갑자기 세상을 승하했다. 어젯밤까지 자신을 업어주던 아버지였기에 그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었고 옹주는 독살이라고 굳게 믿으며 꼭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그녀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황족으로 호적을 올리면서 덕혜 라는 이름이 생겼고 그와 동시에 말만 일본 유학일 뿐 볼모가 되어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진다.

고종은 딸의 삶을 미리 알았는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시종으로 있는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을 옹주의 배필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궁에는 비밀이 없는지 그 소년을 본 다음 날 김황진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대신 들어오는 시종인 한상학을 보며 내 옆에 그놈이 있었으면 한 대라도 아니 죽지 않을 만큼 때리고 싶은 충동과 울분을 속으로 삼켜내야만 했다. 읽는 내가 그런데 당사자인 고종은 얼마나 분통이 쌓였을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미 난 덕혜옹주의 부군으로 인연을 맺을뻔한 그와 잘되지 않을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바라고 또 바랐다. 그와 그녀가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가 일본의 남자와 결혼할 때도 그 결혼이 성공하지 않기를 이미 모든 결과를 알고 있는데도 바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바라고 바래도 이미 일어났던 과거는 바뀌지 않듯이 그녀는 일본남자와 결혼했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딸이 태어났다. 그렇게 그녀의 삶이 행복할 것만 같았지만, 딸이 점점 커가면서 더욱더 아픈 현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굴곡 많은 삶을 조국의 땅이 아닌 적국의 땅에서 살았고 37년 만에 다시 조국의 땅을 밟았지만, 아무도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유모와 몇몇 상궁들뿐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마지막 삶을 간절히 돌아오고 싶어하던 조국의 땅. 그리고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일본에 볼모로 잡혀 적국의 남자와 결혼하고 15년간 정신병동에 감금되었으면 자신의 분신 같았던 딸의 자살까지 37년 동안의 비참한 삶을 유모가 있고 전하가 있으며 비전하가 있는 조국의 땅 그곳에서 마감한 것이다.

조국을 일본의 손에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우리가 살면서 잊고 있었던 조선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에 대한 책도 일본인이 먼저 책을 써서 우리나라 도서관 여러 곳에 기증했다는 작가의 말을 듣고 작가와 똑같이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조국을 가슴에 품었고 조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했던 그녀를 우리는 모두 잊고 살았는데 나라를 빼앗은 그들이 그녀를 잊지 않고 우리보다 먼저 책으로 출판하여 기증했다는 것에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어느 누가 좋아할 수 있을까. 왠지 씁쓸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지나간 일이고 지금 출판되어 나온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책을 많은 사람이 다시는 그녀와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도록 이 책을 읽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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