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처음 접한 것이 "백야행" 이라는 책이었다. 그의 소설을 읽고 너무너무 재미있어 한동안 거의 그의 소설들을 찾아서 보았고 추리소설이라지만, 계속 한 작가의 작품만을 보아서 그런지 계속 읽을수록 똑같은 수법과 방식에 점점 작가에 대한 매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이 작가의 책을 일 년 동안 손에서 놓게 되었다. 그렇게 다른 책을 읽다가 우연히 이 작가의 책인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책을 읽었고 오랜만에 이 작가의 책을 읽어서인지 다시 작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이 나오는 작가의 최신작을 따라잡을 수 없어 그 뒤로 다른 작품을 읽지 못했지만, 오늘 "용의자 X의 헌신"의 제4탄인 "성녀의 구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결혼하기 전 1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이혼한다는 조건을 걸고 결혼한 두 사람인 마시바 요시다카와 그의 부인 아야네. 아이가 생기지 않아 헤어지자고 통보받은 아야네는 그날 홈 파티를 준비하며 아무 일도 없는 듯 겉으로 웃으면서 파티를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다음날 친정집인 삿포로에 며칠 다녀온다고 나간 그녀는 이틀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바로 그녀의 남편이 일요일 밤에 죽었다는 것이다. 사건은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용의자는 두 명으로 정해졌다. 한 명의 그의 부인인 미타 아야네와 아야네의 조수이며 시신의 최초 발견자인 와카야마 히로미. 그러나 용의자로 찍힌 부인 아야네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고 히로미는 알리바이가 없어 그녀가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그녀는 알리바이가 없지만, 살인 동기가 없어 용의자에서 제외되면서 사건은 점점 힘들게 돌아간다. 이번의 책도 내가 읽었던 전작과 같이 범인이 누구인지 첫 장을 열고 읽으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속임수다. 범인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어 사건의 범인은 알지만, 그 범인이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오히려 읽는 내내 더 초조하고 답답했다. 책에서 손을 뗄 일이 생기면 얼른 그 일을 처리하고 싶어 안달이 났고 빨리 처리하고 나서 바로 책을 손에 잡을 정도였다. 그리고 오늘 하루 만에 다 읽고 덮으면서 같은 여자 입장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난 살인범인 그녀가 잡히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나 그녀의 속임수는 물리학자인 유가와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하나하나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이 풀렸다. 점점 그 속임수의 수수께끼가 풀리면서 전작인 "용의자 X의 헌신"에서도 그의 등장이 달갑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유가와의 등장이 나에게는 달갑지 않았다. 그 정도로 난 그녀의 입장에 동하 되어 버렸나 보다. 그래서 그의 등장이 달갑지 않으면서도 그의 등장으로 범인의 속임수를 알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나와 동화된 그녀를 배신하는 것 같아 그의 등장이 더 껄끄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덮으면서 역시 그의 작품을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끝에 가서야 제목에서 의도하는 의미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전작인 "용의자 X의 헌신"도 그렇고 이번 작인 "성녀의 구제"도 모든 속임수가 밝혀지고 나서야 제목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그와 산 1년 동안 하루하루를 힘들게 산 그녀의 노력이 가상하면서 그런 그녀를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내쳐버린 그가 너무도 미웠다. 그리고 나의 바람대로 미궁 속으로 빠질 수 있었던 속임수를 밝혀낸 그가 싫지만, 그의 두뇌만큼은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