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 사이언스 - 사이러스
이정모 지음 / 휘슬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아리스토텔레스가 신화에 관해서 말하길 그것은 학문이 아니다 라고 하였다. 여기서 학문은 증명을 바탕으로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당시에는 철학과 과학이 뚜렷한 구분이 없다고 할 수 있기에 과학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신에 관한 이야기를 한 사람들은 전통적 가르침을 후세에 전해주었을 뿐, 그 증명은 전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신화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형이상학, 3 4). 그렇기에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참된 확신을 기대할 수 있는 증명을 바탕으로 해서 말하는 사람들을 대립시키며 이런 사람으로는 철학자들이 꼽힌다(서양철학사,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20p). 회의하고 증명하고 근거 짓는 방법적인 요인에 의해 철학과 신화를 구별하며 철학이란 신화에 비하자면 정말로 새로운 어떤 것이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여기서의 철학은 과학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고의 무비판적인 시대에 생겨난 신화의 문제제기들과 그 개념적인 직관들이, 아직도 철학적인 개념들 속에 계속해서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를 들어 B.C. 6세기 들어 일종의 새로운 조직적인 신화가 트라키아 산으로부터 그리스로 내려오는데 이 핵심은 디오니소스 신이다. 니체 역시 디오니소스를 삶의 상징으로서 삶을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긍정하는 것의 상징으로 삼았다. 이처럼 신화적 전통이 언제까지나 올림푸스 산 위에서 인간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철학이나 삶에도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철학은 그러므로 신화도 그 나름대로 철학한다고 말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근대에 들어서 계몽주의적으로 과학을 신앙하고 있는 자들만은 신화에서 벗어나려고 한다고 힐쉬베르거는 과학을 신화로부터 구분 짓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은 신화가 증명 불가능한 것이기에 배격하고 인간 삶에의 철학의 과제로 남겨두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많은 철학자들 역시 과학과 신화의 관계를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화를 낳은 사고, 즉 신화적 사고는 자신의 주위 세계에 대해서 항상 세밀한 관찰을 한다. 동물이나 식물의 생태나 분류에 대해 축적된 방대한 지식이 그 배후에는 숨어 있다. 생활에 유용한 영역의 자연에 대해서 신화는 현대의 과학자들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의 과학적 정신을 발휘한다(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21p).

 

신화의 역사는 3만 년이나 되었으며 어느 사회에서나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요소이다. 기껏해야 250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철학이나 그보다도 짧은 과학이 신화와 별개의 문제, 혹은 어느 한 쪽에 그 해석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레비 스트로스의 신화 논리나 미나카타 구마구스의 제비연석 연구에서 엿볼 수 있듯이 신화란 인류의 공통적인 자산이며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역사 연구와 같은 삶의 방식의 탄생에까지 관여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 철학적 연구에 있어서 과학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연석의 공통적 요소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지질학적으로 전에는 한 대륙에 있었다든가, 빙하기 때 맘모스의 이동을 따라 인간도 쫓아 갔기에 지금은 대륙이 다른 곳에서도 같은 신화적 요소가 발견된다든가 하는 과학적 뒷받침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된다. 또한 DNA연구를 통해 위의 다른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전에는 한 갈래에서 파생되었음을 증명하게 되었다.

 결국, 신화를 통해서 인류의 사고가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가, 그리고 그에 따른 삶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는 비단 철학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과학이 함께 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오늘날 현대적인 시각에서 신화를 재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 사이언스 는 심지어 신화의 내용 하나하나까지도 과학적으로 접근과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사실, 신화에 등장하는 이야기와 인물들을 세세히 파헤치다 보면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존재로 치부하거나 아니면 그 상징적 의미만을 살펴보는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레비 스트로스에 이르러 신화를 인류의 문제로 이끌어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룬 신화의 내용은 극히 일부분에 한정되며 다루고 있는 대상 역시 과학적인 implication이 존재하는 소재만 선택적으로 선정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과학은 신화를 논리적으로 설명해낼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과학으로 설명한다기보다 과학의 사실들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발견하였다라고 말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될 만큼 한 에피소드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극히 일부분을 들어 과학적 사실들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과 해석 자체들이 논리를 갖고 과학적으로 접근하였다는 것 자체에 그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다. 가이아에서 우라노스, 크로노스 그리고 제우스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카오스와 코스모스, 유성생식, 공간과 시간의 탄생 등의 과학적 암시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철학의 뒷받침으로서가 아닌 과학만이 신화에 접근하는 방식을 극명하게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소재는 암브로시아와 넥타르이다. 인문학에서 이 황홀한 신들의 음식에 대해 해석하기를 먹고 마시는 음식이 갖는 사회적 기능과 그 상징성에 대해 이야기한다면(넥타르와 암브로시아, 클라우스 E.뮐러) 과학에서는 시트르산 회로라고 불리는 TCA회로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에너지 샘으로서의 기능을 이야기한다. 신들의 영생에 있어서도 한쪽 문화에서는 인간은 필멸의 존재이므로 우리의 유한한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과학은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언젠가는 영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던져준다.

 신화는 시나 문학에서만 인용되는 대상도 아니며 철학의 고찰의 대상만도 아니라 과학의 대상도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위에서 살펴보았으며 신화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두 문화간의 협력이 필요하고 또한 그 성과를 내오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지극히 과학적으로 신화에 접근하여 해석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그리스 로마 신화 사이언스를 통해 살펴보았다. 이 두 가지 방식의 차이는 그 자체로는 다를지 모르지만 널리 봐서 신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두 번째에서 살펴보았듯이 서로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으므로 결국 장려되어야 할 것이고 그 시도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레비 스트로스의 연구에 대해 현대 신화학에는 완전히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고 한다. 바로 과학성과 예술성의 결합이 가장 멋지게 실현되어 있음이 그의 업적 중 하나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두 문화간의 차이점이 엄연히 존재하는 바, 이러한 통섭의 시도 자체를 폄하하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연구에 있어서 그 분야에서의 특수성보다 다른 학문과의 결합에 힘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A라는 학문과 B라는 학문이 그 자체적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면 누군가 그 둘을 결합시켜서 C라는 연구를 진행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A B만 존재하던 시절에 비하여 C가 더 생겼으니 그만큼 효용이 더 커진 것 아닌가? 여태껏 A B가 어느 한 쪽 문화에 속한 이들끼리의 결합으로 C를 낳았다면 지금은 한 쪽 문화의 A와 다른 한 쪽 문화의 B가 새로운 C를 낳을 수 있는 시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