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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징 - 우리가 미처몰랐던 치열한 기록
제프리 케인 지음, 윤영호 옮김 / 저스트북스(JUST BOOK) / 2020년 7월
평점 :
우연히 포털에서 모 신문의 기사를 보다가 이재용 관련 헤드라인이 참 흥미로워서 눈여겨보게 된 책이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어떻게 보면 국민 기업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삼성 관련 이야기가 뭐 그리 새로울까 싶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일단 앞띠지의 잘생긴(?) 저자의 옆에 있는 카피 "10년간의 추적, 400명 이상의 인터뷰"는 그냥 한 말이 아닐 것이고, 뒤표지의 헤드에서 눈에 띄는 "거침없는 폭로"는 뭔가 "추적 60분" 또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책을 열면 노회찬 전 의원에게 보내는 절절한 헌사가 등장한다.
아마도 저자의 기억 저장고에 노회찬 의원이 깊게 자리한 모양이다.
삼성과 노회찬 의원의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X파일로 한동안 시끄러웠으니...
이 책은 삼성의 85년사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1936년 당시 26세의 청년 이병철은 "인생의 목표"를 사업에 두고 미곡 거래상을 거쳐 청과물과 건어물을 파는 상점을 열었다. 그때 상호명이 삼성상회였다. 그리고 해방과 한국전쟁, 유신시대를 거쳐 21세기 오늘날에 이르는 동안 작은 하청업체에서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대기업들은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재벌"이라는 특이한 기업 형태를 배태하게 된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삼성이다.
개인적으로 삼성은 두 번에 걸쳐 도약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이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많고 좁은 국토의 4분의 3이 산지로 덮여 있는 데다 석유, 우라늄 같은 천연자원 역시 거의 없는 형편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교육 수준이 높고 근면하며 성실한 인적 자원이 풍부해 그동안 이 인적 자원을 이용한 저가품의 대량 수출 정책으로 고도성장을 해왔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장기적인 불황과 보호무역주의의 강화로 인해 수출에 의한 국력 신장도 이제는 한계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민족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과 창조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사업을 추진하고자 한다.”(p. 89)
이 선언에 기름을 부은 것은 1983년 11월에 한국을 방문한 28세의 스티브 잡스와의 만남이었다.
그때 이병철 회장은 28세의 수다쟁이 잡스를 "IBM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두 번째는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모두 바꾸라"고 강조한 이건희 회장은 이 선언을 통해 "끊임없는 위기"를 강조했다.
“이 위기에 대해 생각하면 저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는 생사의 여부가 갈리는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냉전은 종식되었지만 더 치열한 경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전쟁에서 한 국가의 화력은 기술 수준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삼성의 많은 사람들은 이 기술 전쟁이 얼마나 냉혹하고 잔인할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성에서 우리는 세 가지 신조를 지켜야 합니다. 불량제품은 우리의 적이고, 모든 악의 근원이며, 만약 우리가 불량제품을 세 번 만든다면 자진해서 퇴사해야 합니다."(p. 132~133)
그 전까지 삼성은 불량 제품으로 유명했으나,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많은 것이 변했고, 지금의 삼성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2016년 10월 갤럭시 노트 7으로 삼성은 위기 상황에 빠졌지만, 6개월 후 애플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기술 기업이 된 데는 이건희 회장의 좌우명이 크나큰 역할을 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이 책에는 마케팅과 디자인 관련 내용이 많은 분량에 걸쳐 할애되어 있다.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웠다.
분명 미국 지사가 마케팅을 잘해서 전 세계적으로 매출액이 높아졌음에도 한국 본사에서 제재를 가하거나 미국 대표를 불러들여 면박을 주는 행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다.
채찍과 격려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런데도 격려가 필요할 때 채찍을 휘두른다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지금은 빅디자인 시대이다.
예전에는 엔지니어가 제품을 개발하면 디자이너가 거기에 맞춰 디자인을 했지만,
지금은 디자이너가 디자인하면 엔지니어가 거기에 맞춰 제품을 개발한다.
그만큼 디자인이 모든 라이프스타일에 반영된다.
그리고 그 중요성을 수십 년 전에 이미 간파한 이건회 회장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고든 브루스와 데이비드 브라운을 영입해 디자인 연구소를 세우고, 역량 있는 디자이너를 배출하기 위해 투자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게 리더는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
이제 삼성은 "리더가 아닌 시스템"이 움직이는 기업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리더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은 시험대에 올랐다.
과연 그는 삼성호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
이 책은 우리가 알지 못했거나, 안다고 생각했지만 다 알지는 못했던 일화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삼성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기록으로 남겨진다면 이 책이 크나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마치 조선시대의 사관처럼 일의 공과를 여과없이 사실을 그대로 기록했다.
장장 90여 쪽에 달하는 후주는 이 책의 객관성을 말해주는 듯하다.
잘한 일은 잘한 일로 칭찬하고, 감추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은 반성하고 다시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한 기업의 역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기업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