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화요일 : 사람의 심해 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이마음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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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음의『사람의 심해』는 독특한 설정을 가진 작품이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 중인 ‘소정유’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귀향한다. 정유의 가문은 여러 대에 걸쳐 ‘소가수산’을 운영 중으로 온 일가친척이 가업에 매달려 있다. 소가수산이 번성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누군가 죽으면 시신에서 수산물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시신은 매장되지 않고 지하 수조에 보관되어 소가수산의 부와 권력에 ‘이용’된다. 이러한 현실이 끔찍해 고향을 떠나지만 서울 생활도 만만치 않다. 인간을 존중하지 않고 착취하는 구조는 소가수산뿐 아니라 어디에나 있다. 이 소설은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고 오히려 시신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가문과 중소기업의 비인간적인 현실을 냉정하게 그린다.

p.90
“산 사람이자 타인의 고통을 등지고 생활하는 것보다는 가족의 죽음을 밑받침 삼아 삶을 잇는 게 나았을까? 정유는 산 사람을 이용하는 것과 죽은 사람을 이용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질이 나쁜 행위인지 알 수 없었다.”

소가수산의 거대한 지하 수조, 산업재해를 외면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묘사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 기시감이야 말로 이 소설이 던져 주는 진정한 공포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사회가 바로 지하 수조이자 중소기업의 생산 라인이기 때문에. 살인 게 떼의 출몰은 그렇기에 잔혹하고 서글프다. 가주이자 정유의 오빠 정민이 변화를 이끌어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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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월요일 : 앨리게이터 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전건우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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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로 아쉽고 장편소설이 부담된다면 중편소설의 호흡이 딱 적당하다. 황금가지에서 7편의 중편소설을 각각의 단행본으로 출간한 『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시리즈를 출간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한 권씩 골라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얇고 가벼워 휴대하기도 편하다. 월요일로 시작되는 첫 번째 소설은 전건우 작가의 『엘리게이터』.

크로커다일과 엘리게이터에 대한 비교로 시작된 이 소설은 진짜 악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은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교통마비로 전신마비환자가 된 청년으로, 의붓아버지를 ‘엘리게이터’에 비유한다. 날마다 어머니를 구타하고 자신을 조롱하는 엘리게이터를 보며 매 순간 절망과 분노를 느끼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무력해한다.

의붓아버지의 끔찍한 정체가 밝혀지고 시시각각 생존의 위협을 겪는 주인공의 처지에 목이 조여 왔다. 왼손만 겨우 움직일 수 있어 죽음을 바랐던 그가 간절히 삶을 희망하기까지. 죽지 않는 엘리게이터, 시체 썩는 냄새, 아사의 공포, 수해로 인한 침수와 산사태의 위험 등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과연 그는 신체적 제약을 딛고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빌런인 엘리게이터의 존재보다 주인공에게 닥친 여러 상황과 거기에 대한 묘사가 더 두려웠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 없이 전신마비환자 홀로 남겨진 반지하라는 공간. 더위, 냄새, 파리 등 시각, 촉각, 후각을 자극하는 온갖 불쾌한 요소들이 한꺼번에 엄습해 왔다. 실제인 듯 환각인 듯 끊임없이 ‘통나무’라 조롱하며 나타나는 죽지 않는 엘리게이터의 악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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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할 일
김동수 지음 / 창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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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오늘의 어린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까요?”

새로 나온 김동수 작가의 그림책 『오늘의 할 일』에서는 물 속 세상으로 어린이를 초대하는 물귀신이 나온다. 자칫 호러 같지만 그림책 속 물귀신은 한없이 다정하고 예의바르다. 하천 기슭에 쪼그려 앉아 나뭇가지로 온갖 것을 건져 내던 어린이는 우연히 비닐처럼 보이는 뭔가를 발견하는데. 앗, 알고 보니 물귀신 머리카락이다! 옛 이야기에서 거북이가 토끼를 용궁에 업고 간 것처럼 물귀신도 이 어린이를 하천 깊은 곳 물 속 세상에 데리고 간다.

물귀신이 하는 일은 오염된 물을 맑게 정화하는 것이다. 이미 죽은 존재인 물귀신이 하천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신선했다. 초자연적인 힘이 아닌 머리카락으로 정화하는 방식도 재미있었고. 수질 오염이 심해지자 어린이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설정도 기발했다. 어른들이 나서서 해야 할 몫을 책임의 주체가 아닌 물귀신과 어린이가 협업해 해결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동시에 내일로 미룰 수 없이 당장 ‘오늘’로 당면한 환경 문제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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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커 래빗홀 YA
이희영 지음 / 래빗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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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생각한다. 내가 만약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와 다른 선택으로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희영 작가의 신간 『셰이커』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숱하게 맞닥뜨리는 선택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평범한 직장인인 서른두 살 ‘나우’는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한민’과 ‘성진’을 만난다. 한민은 고등학교 때 죽은 ‘이내’를 언급하며 ‘하제’와 연인이 된 나우를 비난한다. 이내와 하제는 5년 넘게 사귄 첫사랑이자 연인이었고 나우는 오랫동안 하제를 좋아하면서도 마음을 숨겨왔다.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걷던 나우는 파란 눈을 가진 검은 고양이를 따라 건물 사이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이름조차 없는 붉은 색 네온 간판의 칵테일 바에 들어간다. 칵테일 바의 기묘한 분위기가 긴장감을 일으키며 앞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흥미진진하게 한다. 특히 칵테일 바에 먼저 와 있던 다른 손님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지나가는 인물처럼 가볍게 언급된 이 손님에 대한 떡밥이 결말에서 밝혀진다. 바텐더가 건네는 칵테일 ‘블루아이즈’를 마신 나우는 놀랍게도 열아홉 살의 과거로 회귀한다.



바텐더는 혼란스러워하는 나우에게 과거가 아닌 ‘그분의 세계’에 온 것이며 칵테일을 마시면 나우가 원하는 순간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내가 죽기 5일 전으로 왔다는 것을 알게 된 나우는 자신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고민한다.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 하제에게 청혼할 것인지, 이내를 살릴 것인지. 열아홉 살의 나우가 ‘그린데이’를 마시고 회귀한 곳은 열다섯 살의 과거다. 게임을 하느라 자기 대신 심부름을 보냈던 이내가 하제와 운명적인 첫 만남을 하기 전의 바로 그때였다.



자신이 먼저 하제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약속 장소에 나간 나우는 인연이 될 사람들은 결국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제는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던 나우보다 뒤늦게 알게 된 이내와 훨씬 더 잘 통했던 것. ‘옐로 튤립’을 마신 뒤 가게 된 스무 살은 이내의 부재로 방황하던 하제와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가까워진 시점이다. 나우는 하제가 자신을 보면서 평생 이내를 떠올리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한편 이내의 여자친구를 좋아한다는 죄책감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피치블랙’을 마신 나우가 다시 열아홉 살로 돌아가면서 소설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고3 때 이내는 반려동물 페어에 가려다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이내의 죽음을 막기 위한 나우의 노력은 과연 성공할까? 이내를 살리면 하제와 결혼할 수 없는데? 이내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나우에게 잊지 못할 말을 남긴다. 다섯 번의 시간 여행은 나우의 무의식이 불러낸 환상일지 모른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로 현재를 무의미하게 보내기보다 1분 1초가 모두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겠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작년에 나온 이희영 작가의 전작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가 떠올랐다. 흔히 인기 웹소설에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주인공은 과거를 바로잡고 행복을 찾기 위해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을 한다. 하지만 『셰이커』는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라고 말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다. 이내가 부르던 나우의 별명은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할 묵직한 주문이다. ‘롸잇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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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될 테야 상상 동시집 29
홍일표 지음, 배도하 그림 / 상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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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될 테야』는 홍일표 시인의 첫 동시집이다. ‘첫’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빛나는 발견과 노련함이 느껴진다. 찾아보니 30년 동안 여러 편의 시집을 낸 베테랑 시인이다. 제목만 보고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떠올랐다. 엄마에게 화를 낸 맥스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모험을 떠나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돌아온다는 내용으로 출간 당시 말썽쟁이 어린이의 반항이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다고 한다.

표제작 「괴물이 될 테야」는 “보름달 가면을 쓴 얼굴 하얀 괴물”이 되기를 바라며 “엄마 없는 무서운 밤도/ 햇볕 안 드는 지하방도 꿀꺽” 삼켜버리겠다는 어린이의 다짐을 담고 있다. “학교 가기 싫은 날/ 학교도 먹어 버릴지 몰라”라는 고백이 귀엽고 당돌하다. “아빠가 올 때까지/ 저무는 해를 안고/ 나는 혼자 어두워진다/ 나는 혼자 컴컴해진다(「저녁이 싫어요」)”거나 “나만 아는 비밀(「엄마 생각」)”을 가진 어린이도 괴물이 되면 좋겠다.

지팡이로 땅을 진찰하듯 걷는 눈이 어두운 할머니(「지팡이」), 재봉틀처럼 바다를 꿰매는 통통배(「지팡이」) 등 익숙한 대상을 다르게 보도록 안내하는 재미있는 상상력에 새삼 감탄하다가, “산초나무와 싸리나무 사이에/ 두 마음이 오가는/ 은구슬 반짝이는 출렁다리(「거미줄」)”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빗물을 받쳐 든 ‘땅바닥(「소나기 지나간 날」)’과 쓰러지지 않으려고 서로가 서로를 받쳐 주는 ‘청보리(「봄」)’는 또 어떤가.

어른들이 마음을 몰라줘서 “도깨비 뿔을 단 해”를 그리거나(「내 마음」)과 동생만 좋아하는 엄마가 야속해 뒹구는 깡통을 걷어차는 아이의 모습은 어쩌면 지금 내 아이의, 혹은 먼 옛날 나의 자화상이 아닐까. 동시집을 읽으면서 느낀 건 “한 걸음도 걷지 못하는 오리나무(「오리나무」)”에게 안부를 묻는 것 같은 시인의 다정한 목소리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진심을 다해 전달하는 49편의 동시. 『괴물이 될 테야』를 아껴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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