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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아리랑 ㅣ 한울림 작은별 그림책
정란희 지음, 양상용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3년 8월
평점 :
숫자로 환원될 수 없는 강제징용 노동자의 비극. 역사 속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알지만 특별한 관심이 없는 이상 교과서에 단 몇 줄로 서술된 문장과 뉴스 화면만으로 얼마나 많은 개개인의 이야기가 압축되어 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당장 나의 생활과 관련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백, 몇 천 숫자가 아닌 구체적인 이름을 가진 누군가의 이야기로 전달될 때 그것은 곧 가까운 친구, 이웃처럼 실제 존재한 ‘사람’의 형상으로 다가온다.
사할린이 어디인지 지도를 찾아보았다. 동해의 북쪽, 홋카이도 바로 위쪽에 위치한 러시아 극동의 섬. 1905년 러일 전쟁 이후 러시아와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했고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해방 후에도 귀국하지 못해 그곳에 남게 되었다. 위치조차 잘 알지 못했던 낯선 땅. 아마 그림책 『사할린 아리랑』의 주인공 ‘흥만’ 역시도 그랬을 것이다. 흥만은 말이 ‘모집’이지 일본 순사들에 의해 강제징용 당해 먼 사할린으로 끌려갔다. 가족과의 생이별이었다.
하루 12시간, 때로 15시간이 넘도록 어두운 탄광에서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며 일을 했고 열악한 작업 환경, 추위와 굶주림, 감시와 매질 등으로 수많은 조선인이 죽어갔다. 흥만이 죽는 것보다 괴로운 삶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고향의 노래인 아리랑을 부르며 언젠가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해방이 된 뒤 일본은 조선인들을 학살했고 흥만을 비롯한 4만 3천 명의 강제징용 노동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얼어 죽고, 굶어 죽고, 고향에 가고 싶어 미쳐 죽었지.”
『사할린 아리랑』은 머리가 하얗게 센 흥만의 사연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남의 땅에서 평생을 살아야했던 혹독한 시간을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올해로 광복 80주년. 그림책을 보면서 우리말, 우리글을 쓰며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역사를 두고두고 잊지 않아야한다는 걸,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극우의 역사 왜곡에 맞서 ‘기억 전쟁’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는 걸 다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