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지 않을까. 친구와 멀어진 경험. 시시콜콜 속 깊은 이야기를 다 털어 놓고 마치 없으면 못 살 것처럼 붙어 다니다가 어느 순간 차갑게 식어 버린 관계. 내게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그리고 대학교 때마저. 부끄럽지만 먼저 돌아선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친구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친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선을 넘으면 속으로 가만히 카운트를 셌다. 굳이 카운트를 센 것은 서서히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연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니 옹졸하고 어리석다. 서운한 점을 말하거나 크게 화라도 냈어야 했다. 어차피 두 번 다시 안 볼 거라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노력해볼 것을 그랬다. 이제와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이미 다 지난 일이다. 변명하자면 겁이 나서 그랬다. 속수무책으로 깨어지는 균열을 감당하지 못해서 우리가 쌓은 우정의 시간이 허물어져 가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건 용기였는지 모른다. 내 앞의 갈등을 솔직하게 바라볼 용기. 이번에 새로 나온 휘리 작가의 그림책은 바로 그런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친구와 서먹해지는 것이 꼭 어떤 계기가 있어서만은 아니다. 겨울방학을 보낸 뒤 갑자기 어색해진 두 친구는 말도 섞지 않고 데면데면하게 지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친구가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친구와의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지기만 한다. 고개를 숙이고 빗길을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은 외롭고 쓸쓸하기만 하다. “나는 친구와 다시 가까워지고 싶어. 손잡고 인사하고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다 말하고 싶어.” 화사한 봄볕 아래 친구의 눈을 피하는 아이가 내내 신경 쓰였다. 꼭 오래 전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아이는 고민 끝에 친구에게 편지를 보낸다. 긴 겨울 방학만큼의 시간을 건너 다시 눈부신 봄을 맞이한 두 아이의 우정이 그 전보다 훨씬 더 애틋해지리라는 예감이 든다. 나는 왜 그때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어른이 되어서도 관계는 늘 어렵다. 한 걸음 다가갈 용기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이 그림책을 추천한다. 어긋난 관계를 위한 다정한 격려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