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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일의 눈맞춤 - 정신분석가 이승욱의 0~3세 아이를 위한 마음육아
이승욱 지음 / 휴(休)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기가 태어난지 300일이 지났다. 생후 10개월인데 다른 아기들에 비해 약간 늦게 이가 올라온 편이다. 아랫니만 두 개가 올라오는 중인데 생일이 4일 차이나는 친구네 아가는 벌써 이가 6개나 났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마음에 내가 잘 못먹여서 그런건가 하는 소심한 걱정부터 인다. 가끔은 이렇게 정말 중요한게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남들과의 경쟁안에서 뒤처지는 것에 대한 걱정부터 떠올리는 나... 읽는 내내 이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천일의 눈맞춤. 생후 3년 동안 아이와 눈맞춤이 어떻게 얼마나 중요한지 미처 알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전문적이지 못한 오직 본능적이고 조심스러운 엄마의 '감'으로만 해온 서툰 육아를 하고 있는 내게 사소한 듯 넘기면 안될 정말 중요한 것들에 대해 분명하게 짚고 정리해줄 그런 책이었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아기의 눈동자가 떠오르면서 아기가 봤을 내 눈도 함께 떠올랐다. 나의 시선이 아기에게 따뜻하고 행복하게 느껴졌을지 걱정이 되서 책 읽은 뒤엔 아침저녁에 세수를 하면서 표정연습도 하고 내 얼굴에 아기얼굴을 오버랩시키며 한참 들여다 보기도 했다. 육아에 대해서 자신감보다 늘 조바심이 앞서는 나는 아기를 키우면서 내게 결여된 부분이 아이에게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좋은 안내자가 되고 싶은 간절한 욕심이 생기는데 그것들이 욕망이 되지 않게 아이를 내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고 주체적인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아이로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인간의 태아기부터 노년후기까지의 약10단계가 있는데 천일의 눈맞춤에서는 천일. 그러니까 태아기, 영아기-구강기(출생후 돌까지), 유아기-항문기(18개월~3세)까지 정신구조의 기초를 만드는 중요한 시기에 해야할 진정한 마음육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진정한 태교는 아기도 중요하지만 '여자로서의 나'에서 '엄마로서의 내가' 되기까지의 그 전환되는 과정을 의미있게 밟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야 엄마라는 영역으로 들어갔을 때 자신을 잃어버리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입덧이 유난히 지독하게 심했던 나는 임신때 육체적 스트레스와 정신적 스트레스에 많이 시달렸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겪어본적 없는 몸무게인 37키로까지 살이 계속 빠지고 뱃속의 아기를 생각해서 체중을 늘려야 한다는 압박감까지... 그때의 우울감이 아이에게 전달됐을걸 생각하면 지금도 늘 마음이 저며온다. 태교에서 제일 중요한 원칙이 정서적 안정인 이유는 감정적 기복에 의한 체온 변화가 일어났을 때 카테콜라민이라는 호르몬이 나와서 자궁내 산소 유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나온 아쉬움들을 떠올리면 어떻게 해서든 그 만큼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다. 임신중일 때 주변에 아이를 먼저 낳은 사람들이 내게 모두 한결같이 제왕절개를 권유했었다. 나는 엄마뱃속에서 제왕절개수술로 나왔다. 우리 엄마세대 때가 제왕절개가 권장되고 주변에서도 많이 권유되던 시절이었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니 아이가 나올 때를 상상해보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기에게 미칠 영향이라는게 새삼 엄청난 차이가 있겠구나 싶었다. 누군가 내 등에 불같이 뜨거운 손을 넣어서 근육과 뼈를 아주아주 세게 비틀고 터트릴듯 쥐어 짜고 생전 겪을 일 없던 그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아이는 내 고통도 함께 느꼈을테고 자궁의 수축과 이완으로 뱃속 공간이 낯설어 또 놀라고 자궁이 열리길 기다리다 나오는 순간에는 숨을 쉬지 못하고 엄마와 함께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세상의 빛을 보고... 많은 일들이 벌어지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의 제왕절개는 난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문이 열리고 느닷없이 편안하게? 나가고 엄마는 마취상태시고 바로 떨어져 신생아실 인큐베이터로. 아기를 보고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난다. 내가 지나온 유년기를 돌아보게 되서 우리 부모님은 그 때 어떠셨을지. 그리고 내가 부모님께 받은 소중한 것들과 아이에게 나는 어떤 좋은 것 들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낡은 무의식 속에 잠재해있을 것들에 대해서도 떠올려 보게 되었다.
'천일의 눈맞춤'이란 내 아이의 눈에 비친 나를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보상하고 회복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아이와 눈을 맞추는 것은 곧 나 자신과 눈을 맞추는 것이다. 정말로 눈을 맞추는 것을 포함하여 정면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때 아이는 자신의 눈에 비친 부모를 타인이 아니라 자기의 모습으로 인식하게 된다. 아이는 아직 자기 개념은 물론 타인, 세상에 대한 개념도 없는 상태다.그래서 부모와 자신을 구분하지 못한다.즉 자신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표정으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아이가 부모의 슬픈 얼굴을 보면 자신을 슬픔으로, 부모의 기쁜 눈빛을 보면 자신을 기쁨의 상태로 인식한다. 물론 아이에게는 아직 슬픔,기쁨 같은 감정의 이름을 구별할 능력은 없다. 다만 그 상태가 될 뿐이다. 이렇듯 갓 태어난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와 엄마와 분리되었어도 부모와 한 몸의 상태이다.(p.51)
유아의 발달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세 가지 응시, 수유, 품안에 있는 것
저자는 수유시간을 정해놓고 주거나 아기가 울때마다 주거나 둘 중 한가지만 하고 두 방식을 섞지 말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일관성, '예측가능성' 때문이다.
구강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양육환경인 예측가능성은 단순한 생존의 배채움이 아니라 외부와 자신을 인지하는 유일한 수단인 젖(수유)을 통해 형성된다.
예측할 수 없는 양육환경을 경험하게되면 아이에게 불신이 생기게 된다. 이때의 불신은 엄마만 불신하는것이 아니라 자신도 불신하고 세상 모든것을 불신한다고 했다. 예측 가능하게 수유를 하려면 편안한 환경과 엄마의 안정적인 정서가 우선이 되야한다. 아이가 지나치게 구강만족을 하면 나중에 성인이 되서 사기당하거나 손해볼 위험도 있다는데 한두번정도는 세상이 항상 제 맘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할테지. 예측가능성과 일관성은 수유기가 지나고 성인이 될 때까지도 계속 세심하게 신경쓰고 싶은 부분이다.
'존재는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
부모님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사랑의 눈길이 아니라 경멸의 눈길이라면 어떨지 상상해보면 알 것 이다.한 개인의 내적 이미지는 외부의 시선에 의해서 조형된다는 말이 공감되서 읽다가 고개를 한참 끄덕였다. 눈 마주치는 것 뿐 아니라 내가 아기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좀 더 신경써야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기가 아직 어려서 모를거라고 생각하지만 말도 못하는 이 시기의 경험들은 몸으로 익혀져 저장되고 의식할 수도 없는 차원에서 언젠가 나타난다고 한다. 눈길. 어떻게 아이를 바라보고 눈맞추는가. 더 늦기전에 가족들과 이 부분에 대해서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아기의 입장에서 봤을 때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통해 나는 이런 존재구나 라고 인식한다고 하니 짜증과 무관심의 모습은 성인이 되어서 바뀌지 않는 확고한 자기상으로 남는다는 것 항상 기억해야겠다. 이것이 신뢰와 불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희망이라는 가치의 덕목으로 연결되는데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신뢰와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까지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가치 포기하지 않는 의지, 희망. 이런 정말 많은 것들이 결정되는 시기.
항문기는 18개월즈음부터 시작해 3살까지인데 자율적 배변과 자발적 이동력이 생기는 시기다. 이때 발생하는 것이 자율성, 수치심과 의심이다.
강박증 성격, 분노형 성격, 풀어진 성격, 규모와 틀이 없는 아이 그 중 어느 방향으로 형성이 되는지는 역시 부모의 몫이라는 것. 대변을 보고 나서의 반응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기변은 아기 건강의 상태를 확인시켜주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매일 매일 확인하고 아기가 잘먹을때 만큼이나 잘 누면 그렇게 기쁠수가 없는데. 엄마가 아기의 똥에 대해 나무라는 태도를 보인다면 똥을 눈 그 행위가 수치스러운게 아니라 자신이 수치스러운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똥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나에 대한 태도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아이가 수치심을 느낄 줄 아는 시기이기에 아기가 싼 똥을 아기 앞에서 소중하게 다뤄주라고 했다.
건강한 애착은 무엇인가? 아이가 내 부모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 거라는 것.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런 믿음이 있다면 아이는 마음껏 세상으로 나가 자기만의 삶을 개척하고 한 개인으로 살아나갈 수 있다. (p.199)
애착이 중요한 이유는 아이를 잘 독립시키기 위해서이다. 아기가 엄마로부터 잘 떨어져 나오는 것을 위해 아주 '건강한 애착'이 필요하다.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불안해하는 것은 엄마가 느끼는 불안감이 그대로 아이에게 전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만 엄마 몸속에 있었던 흔적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 엄마 몸속에 품고 있었던 아이와의 일체감이 아이보다 더 강렬하게 저장되있을 것이고 출산후에도 한동안 아이가 내 품에서 안전하게 있다는 안정감이 있는데 걷기 시작한 후부터는 다칠까봐 걱정, 잘못 주워먹을까 걱정 온갖 걱정을 하고 아이가 개별적 개체가 되어 이동하게 되는 그 시기에
아이보다 더 불안을 느끼는건 엄마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의 불안이 얼마나 큰가에 따라 이 불안은 아이를 떨어지지 못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엄마가 이 아이를 계속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자기에게 종속된 상태로 놔두고 싶어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고 아이의 자율성을 인정해주고 자기불안을 얼마나 잘 조절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얼마나 심리적으로 독립적이고 건강한 사람이 되는가 이 시기에 판가름 난다고 말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은 타인이라는 개념이 먼저 생기는데 타인으로부터 떨어져서 내가 생기는것. 엄마와 나를(아기자신) 동일체로 생각한다. 엄마라는 거울을 통해서 타자를 먼저 보고 거기에 비친 자기 자신으로서 떨어져 나오는데 분리에 있어서 주체는 아이가 아니라 엄마라는 것. 엄마가 아이와 분리되는 것에 불안을 계속 가진다면 세상을 탐색해가기 쉽지 않은 상황속에 놓여지게 되겠지. 수치와 의심이 쌓여갈지 자율성이 형성되어 갈지는 역시 엄마의 몫이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듯 아이들도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의 심리적 면역력을 길러주는 것밖에 없다.(p.113)

이 책에서 10장중 9장은 천일동안 어머니로서의 중요한 역할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마지막 10번째 장에서는 '대한민국 아빠를 위하여' 라는 제목으로 제일 첫번째 장인 '여자가 엄마가 되기까지' 에서 처럼 '남자가 아버지가 되기까지'를 이야기한다.
자녀 양육에 몰입하는 경험은 무엇보다 부모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아빠사람이 된 남편도 알아야 한다. 책을 읽고 있던 초보 엄마사람인 나 뿐 아니라 또 다른 부분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빠사람에게도 함께 적극적으로 노력해 아이를 더 잘키울 수 있도록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부분이 이 마지막 장이다.
항문기가 지나고 나면 5-6세에 언어적으로 발달해가기 시작하는데 이제 엄마의 역할만큼 중요해지는게 아빠의 역할이라고 한다.
예전에 들었던 저자의 대중을 위한 발달심리학에서 아이가 아버지에게 갖는 기대는 엄마의 평가에 의해 형성되므로 아버지와 아이가 직접적인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도록 엄마가 생활속에서 아이에게 내뱉는 말을 주의해야한다고 했다.
저자가 '사랑에 서툰 아빠들에게'라는 제목의 아빠를 위한 육아?서를 이미 냈지만 이 책 출간 다음으로 이 발달심리학 선상에서 연결되는 아버지의 마음육아로 이어지는 책이 또 나오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본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외향성도 갖고 있으면서 사유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관조하는 내향성도 함께 지닌 사람, 치밀하고 계획적이면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고 순발력도 있는 사람, 진취적이고 기획력도 있지만 과정을 중요시하고 주변 사람의 감정도 잘 돌보는 사람, 자녀를 이런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면, 어머니의 돌봄 중심의 육아와 아버지의 사회성 중심의 육아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p.2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