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신춘문예 당선시집
고현정 외 지음 / 문학세계사 / 2001년 1월
평점 :
품절


시를 읽다 말고 가끔 무릎을 탁, 치거나 천장을 한없이 바라볼 때가 있다. 이 시가 그랬다. 그것은 우선 표현의 힘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빗방울의 향연, 그것을 音으로 치환하는 시인의 감각은 새들을 만나면서 하나의 音樂이 된다. 새들이 타악기로 변하는 순간, 그것은 분명히 시의 영역이다. 이 악기는 어떻게 시의 동력으로 작용하는가?

시가 굳이 音樂에서 유래한 예술장르라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시에서의 어떠한 감동이나 울림은 그것이 음악적 효과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서정주의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이라는 시에서의 '괜, 찬, 타'의 반복이 주는 효과는 그것이 눈이 내리는 모습과 어우러짐으로써 온갖 생명의 화음을 만들듯 시를, 도드라지게 해준다. 이 시는 분명히 음악적 성취를 그 전제로 하고 있다. '제 뿌리를 다해 흔들리는' 꽃말들의 떨림이 '영희, 영호, 영수...' 와 같은 구체화된 이름을 얻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소리으로서의 '音樂'을 넘어서 어떠한 메세지를 던져준다.

'영희, 영호, 영수'라는 인물은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그러니까 시적 화자는 이 꽃말들에게 저 '낮고' '작고' '볼품 없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이 시의 화자 '원정'(정원사)은 자연스레 그 꽃말들의 근원이 된다. 그 원정이 뿜어내는 음악은 잘 다듬어진 음악이라기 보다, 세간의 생활인들이 흥얼흥얼 아무렇게나 뿜어내는 음악과 닮아있다. 이 시는 그러니까, 작은 생활인의 내면에서 터져나오는 노래와 같은 것이다. 선술집에서 제 흥에 못 이겨 흘러나오는 인부들의 때절은 노래와 같은. 독자는 화자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자연스럽게 '깊은, 나무들이 울리는 푸른 풍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 푸른 풍금의 소리는 '볼품 없는 한 생'을 포근하게 덮어주는 소리이다.

다시 한번 거칠게 말하자면, 시는, 현실의 패배에서 나온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현실의 패배를 어떻게 노래하느냐. 정현종은 김수영의 시를 '그의 현실은 패배했지만, 현실의 패배를 노래하는데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 시는 '원정'이라는 아주 작고 사소한 현실을, 그 현실이 이름 붙인 '영희, 영호, 영수'라는 더 작은 현실을 노래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시를 왜 쓰는가, 라는 커다란 명제와 부닥쳤을 때, '부재를 기억하기 위하여' 라는 말이 떠오른다. 부재를 기억하는 방법에 '음악'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이 시는 일상의 세밀한 소멸을(동시에 끊임없이 생겨나는 기억을) 아주 잘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시인에게 우려되는 것은 어떤 끊임없는 깨달음의 언술이 주는 유혹이다. 가령, '무엇을 가꾼다는 것은 잘라내거나 뽑아내는 일이라는 걸'과 같은 구절은 그것이 많은 폭의 시적 함의와 감동을 줄지라도 시인이 어떤 지면에서 피력했던 '깨달음의 영역으로의 추락'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은 시인에 대한 기대이기도 한데, 나는 장만호의 시가 잘 다듬어진 고급취향의 앨범보다는 한없이 볼품 없어서 저잣거리에서 회자되는 그런 떨림의 음악이었으면 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바램이겠지만...

오랜만에 들어보는 '낮은 노래'에 한없이 귀를 열어놓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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