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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시절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평점 :
꽃같은 시절.
누구에게나 꽃같은 시절이 한번쯤은 있지 않았을까?
우리 엄마의 꽃같은 시절은 언제적이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자주 돌아가신 엄마가 떠올랐다. 이 책은 사연 많는 시골 아낙 무수굴떠기 해징이댁 용수막떠기의 꽃같은 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꽃같은 시절이라는 것이 실상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삶의 터전을 잃은 순한 사람들이 ‘디모를 다해보고 경찰서도 가보니 말년에 꽃시절을 보냈다는 것’인데, 얼마나 꽃시절 한번을 못보고 살았으면 ‘디모’를 하고 경찰서를 간 것을 두고 꽃시절이라 하나, 눈물이 포옥 나올뻔 하기도 하다.
그들에게 꽃시절이라는 것은 처음으로 그녀들의 ‘소리’를 내어본 경험인 것이다.
날때부터 딸이라 구박받고, 자신이 낳은 딸을 또 구박하는 남편과 시엄씨 등살에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고 저세상으로 보내버린 딸을 그리며 소리없이 울고, 남편의 폭력을 견디며 평생을 소리없이 살았던 그녀들. 그녀들은 그 적막한 속에서 소리없는 것들의 온갖 소리를 듣고 있었다. 밭매다가 칡낭구 가지 새로 내려오는 거무가 닝꽁닝꽁닝꽁 우는 소리를 듣고 지렁이가 띠룽띠룽띠룽 내는 소리를 듣는다. 그녀들은 말한다 ‘소리가 없다고 해서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닌 것들의 소리다. 그래서 가슴 한쪽이 먹먹해왔다. 꼭 우리들 같아서 우리도 소리를 안내고 살뿐이지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닌데도 세상은 땅 파먹고 사는 아낙들은 소리가 아예 없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무슨 소리라도 낼라치면 무식한 아낙네가 뭣을 아느냐는 투였다 그래도 우리는 울지 않았다. 우리 울음 알아주는 데도 아닌 데서 울면 우리만 설워지니 울지 않았다. 어쩌다 울 때도 놀 때나 울지, 일 할때는 힘이 들어 울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울면 닝꽁닝꽁닝꽁, 띠룽띠룽띠루룽 하는 것들이 우리 울음에 묻힐까봐 울지 않았다’ 고.
지금의 삶의 터전을 지키고 싶다는 할머니들의 소박한 항거는 밀려오는 산업자본주의가 들이대는 공익이라는 미명하에 ‘조용히’ 무시되고 실패로 끝나지만 그들에게는 그 시절이 한바탕의 꽃놀이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할머니들은 부조리한 세상에 분노하기 보다는 데모장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면 무조건불러서 “괴기반찬은 없어도 아직 밥 안 묵었으면 좀 드씨요.” 라고 밥부터 먹이고 잘 먹으면 오히려 고마워 한다. 한번도 험하지 않은 세월이 없었지만 그 험한 세월중에 그래도 지금이 가장 꽃같은 시절이라며 함박꽃같이 웃는 할머니들을 보고 젊은 아낙인 ‘영희’는 그 안에 함께 어울려 ‘꽃’이 되고 ‘시’가 된다.
평생동안 강팍한 삶을 서로 보듬고 살았던 그녀들은 저승가는 길 또한 화해와 치유와 한바탕 축제로 이어 간다. 이승과 저승, 할매와 젊은 새댁, 사람과 집, 거미와 참새와 벌이 서로에게 말을 걸고 넘나드는 유연한 세계가 간고한 삶에 위안이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