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현장의 이야기
엄기호 지음 / 따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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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

그러면서 갑자기 교육과 학교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12년 동안이나 학교를 다녔는데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게 말이 되냐고 버럭 화를 냈다. 아무런 책임감 없이 그저 가방 들고 학교만 꼬박꼬박 다니게 하다가 졸업하니 낭떠러지란다. 부모도 막막하고 학생도 막막하다. 이렇게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면서 왜 12년 동안 그렇게 고압적으로 사람을 윽박질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분개했다.

 

P20

어머니는 단호하게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단호함에 놀라서 “배워서 어디 써먹을 것이냐?”고 물어보자 “배우는 것은 써먹기 위함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또 배운 것은 “언제 써먹어도 다 써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배워야 남에게 당하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 무식하면 남에게 휘둘리기 쉽고, 남이 시키는 게 다 맞는 말인 줄 알고 하라는 대로 하는 노예밖에 될 수 없다는 말씀이었다. 인간은 알아야 제 주관을 가지고 제 생각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에게 배움이란 곧 무지로부터의 자유,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던 것 같다. 배우지 않은 자는 일단 무지에, 미신에, 편견에 휘둘리게 된다. 또한 더 많이 아는 사람,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굴종당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어머니에게 배움이란 자유이자 해방이었다. 그리고 학교는 바로 이런 배움과 지식의 산실이었다. 학교를 다니는 것은 곧 자유에 대한 갈망이고 해방을 향한 의지였다.

 

P23

서울의 한 중산층 학부모가 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사교육이 없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사교육에 들어가는 돈은 천문학적이고 자신들에게도 부담이 되지만, 이 사교육이 없어지면 자기 자식이 시골에서 엉덩이 무겁게 공부만 하는 아이와 경쟁해야 하는데 그게 더 끔찍하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사교육이란, 공부는 잘하지만 재력이 안 되는 자기 자식의 경쟁자를 미리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교육과 학교는 서민이나 하층계급이 자기 자식을 통한 신분 상승을 꿈꿀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중산층 이상이 자신의 계급을 재생산하는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라 할 수 있다.

 

P26

우리가 사람이 성장한다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 아니던가. 하나는 ‘자기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 말이다. 가장 획일적이라고 알려진 군대를 통해 ‘다양성/차이/공존’을 이야기하는 것이 놀라웠다.

 

P27

이들이 군대에서 배웠다는 것이 바로 타자성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람의 성장이, 자기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함께 나와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한다면, 다름/타자성은 인간의 성장에 필수적이다. 이어지는 장에서 설명하겠지만, 인간은 다름을 만나고 마주쳤을 때에만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인간은 다름/타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을 돌아볼 재간이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타자와 만나지 않는 성장이란 불가능하다. 타자와 만나지조차 안는데, 타자와 공존을 꿈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우리는 좀처럼 나와 다른 것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것이 나타나면 가급적 회피하려고 한다.

‘다름’과 같이 있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P28

내가 만난 교사들은 수업이 잘 안 되는 것을 넘어서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학생들과의 관계를 ‘새로’맺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 입시에 뜻이 없거나 배제된 학생들은 교사들이 불필요하게 자신들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될 수 있는 한 교사와의 관계는 무관할수록 좋다고 여긴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라고 해도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과목에서는 교사와 그 어떤 관계도 형성할 필요가 없어진다. 교사 스스로도 수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자신의 과목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의 수업 태도에 관여하지 않고 있었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적당히 봐주고 공모하는 것이 구조회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사가 이 관례적인 무관심을 넘어 학생들의 삶에 개입할 때,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종종 폭력화된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무관한 관계, 공모 관계와 적대적 관계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교사들은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 학생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언어화해야 할지 몰라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P30

우리가 둥글게 모여 앉아야 하는 이유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모여 앉을 필요가 있다.

 

P32

이들은 학교에서의 교육이 점점 어려워질수록 동료 교사들과 만나 상처와 고통을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주변의 동료 교사들는 나눌 이야기가 없다며 학교 안에서 고립되어가고 있었다.

 

P33

이들의 이야기는 학교가 성장과 배움의 공동체라는 기대가 어떻게 무너져가고 있는지를 내부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 교사와 동료 교사 사이에 ‘성장을 위해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만남’이라는 의미에서의 ‘교육적 만남’은 점차 불가능한 것이 된다. 교육적 만남이 교육현장에서 회피되고, 대신 그 자리를 자기 단속의 문화가 차지하고 있다. 교사가 학생과, 학생이 교사와, 교사가 동료 교사와 가급적이면 부딪치지 않고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며 형식적인 관계만 유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요컨대 이들이 추구하는 ‘성장을 위해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만남’, 즉 ‘교육적 만남’이 더욱더 불가능해지는 역설적 상황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P34

사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너 하고 싶은 걸 해. 나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폭력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득도하기 전까지는, 자신보다 남이 자기에 대해 더 잘아는 법이다. 물론 이 말이 “너는 아직 너를 몰라. 내가 너를 더 잘 알아”하면서 강요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 나이에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스스로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거울, 타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가르치는 사람, 스승이라고 할 수 잇을 것이다.

 

P44

특히 교사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다. 인문계 공립학교는 지난 정권을 거치면서 학교 정책의 다변화에 따라 그 위상이 대폭 추락했다. 중학교에서 성적이 좋았던 학생들이 특목고나 자사고에 진학하면서 인문계 고등하교의 슬럼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 중에서 구도심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양상이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P52

교사들은 학생들이 교과서나 학교에서 통용되는 용어, 개념, 공식적인 언어를 모른다고 하지만, 뒤집어서 보면 교사들이 학생들의 일상생활과 그 안에서의 말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교사의 역할이 ‘모르는 사람을 가르치는’것이라면, 교사가 해야 하는 일은 그들이 모르는 개념을 그들의 언어로 풀어주거나 그들의 삶에서 사례를 찾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사용하는 일상용어를 모르고 또 그 말을 비속어나 저질이라고 단정 지으면 그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또한 그들의 생활을 경험하거나 깊이 있게 들여다본 적이 없으니 구체적이면서도 그 개념에 딱 들어맞는 적합한 사례를 찾을 수도 없다. 그러니 교과서의 말과 학생들의 삶이 서로 겉돌고 헛돌 수 밖에 없다.

 

P55

이 글에 등장하는 이들처럼 이런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면서 수업을 이끄는 교사들이 있다. 이 교사들은 무엇보다 학생들과의 무관한 관계를 경험을 나누는 관계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육과정 운영이 비교적 자유로운 국어나 역사 과목에서는 수행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흥미를 끌어 내기 위해 노력한다. 자서전 쓰기나 주변 인물 탐방 같은 것도 한다. 저자와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안 나서면 교사가 저자와 접촉해서 “밥상을 다 차려주기도”한다. 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기본이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고 부르는 눈을 마주치는 것이라고 한다.

 

P63

아이들도 엄마들도 학교에서 배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올해 알았는데요. 국가 수준 성취도평가를 하잖아요. 그걸 초등학교 엄마들은 아무도 신경 안 쓴대요. 등수가 나오는 게 아니니까. 레벨이 올라가는 학원 시험이 더 중요하대요. 아무 상관없는 시험이라고 생각한대요. 일제고사 성적 올리기는 선생들만 급급하죠. 성과급 같은 게 달려 있으니까. 엄마들은 자기 애 등수에 관심 있지, 학교가 어떤 등급이 나오는지는 신경 쓰지 않아요.

학교에서 치는 기말고사가 있어요. 그게 오히려 엄마들의 관심사래요. 학교 시험을 치고 나면 그다음 날 등수가 나와서 아파트에 좍 돌거든요. 누가 전교 일등이라더라. 정작 학교에서는 등수를 안 내는데, 등수가 좍 돌아요. 기말고사에 신경 쓴다는 것도 학원에 아이를 보냈으니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나,그걸 시험해보는 장이기 때문이죠. 학교에서 배운다는 생각은 오래전에 떠난 것 같아요.누가 사교육을 잘 시켰나 시험해주는 것이 학교인 거죠.

 

P66

강교사는 수업 붕괴는 학생들이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학습하는 순간 이미 발생한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아, 이 수업은 안 들어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와 학생 사이는 무의미한 관계, 무관한 관계가 된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둘 사이를 매개하는 것은 없다. 수업을 통해 지식이 전수되는 것도 아니고 경험이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시간 자체를 때우기 위해 기계적으로 한 공간에 있는 것에 불과하다. 요즘은 아예 공간을 둘로 분할하여 수업을 하기도 한다.

 

P70

개별적인 고군분투는 교육현장의 관료주의와 안전에 대한 강박 그리고 동료 교사들의 냉소와 업적 중심으로 교사를 평가하는 제도에 의해 가로막히게 된다. 교장을 비롯한 관리자들은 교사들의 자발적 노력이 불온한 것은 아닌지 늘 감시하고 있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동아리를 사조직으로 몰아붙이며, 사조직을 만들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금지시키기도 한다. 또한 이런 활동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안전 문제에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아무것도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자발적 노력을 하는 교사들이 가장 참기 힘들어하는 것은 동료 교사들의 냉소적 시선이다. 어떤 교사들은 이들의 노력이 자신의 교육 방식을 비판하는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내기도 한다.

 

P80

풀러는 노바디와 섬바디를 나누는 중요한 요소는 인맥이라고 말한다. 섬바디들은 "아주 풍부한 인맥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노바디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 인맥은 양에만 국한된느 것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의미에서 질적이다. 양으로만 따지면 노바디야말로 훨씬 많지만 이들의 인맥은 쓸모가 없다. 풀러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이 노바디로 분류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기 때문에 스스로 노바디임을 감추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뭉치기보다는 등을 돌린다. "신분 때문에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기회가 있으면 스스로 남을 학대"하는 경향이 있다.

 

P82

교사로서 무력감을 가장 심하게 느끼는 순간이 이렇게 약자를 괴롭히는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교사들은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는 모습을 봤을 때 학생들에 대해 실망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절망한다. 교육의 목적이자 교사의 존재가치는 학생들이 타자란 이해하고 관계가 넓고 깊어지게 하는 것이다. 류 교사에 따르면 타자란 원래 공유한 부분이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불편하고, 그들을 이해하 위해서는 인내해야 한다. 남을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시간을 버텨주고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나 배려 같은 것들이 생기지 않겠는가?" 라고 반문했다. 그런데 학교는 타자를 만나고 이해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권력으로 약자를 괴롭히고 파괴하는 공간이 되었다.

 

P83

타자를 괴롭히는 것이 그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그의 얼굴에서 고통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p87

다른 상황에서라면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같은 나름의 답이 있는데, 그 상황이라면 나도 꼭 그렇게, 선배처럼 했을 것 같거든요. 많은 선생님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장악하지 못하는 사정을 이야기하시잖아요. 그럴 때마다 저는 '나 같으면 다른 방법을 써봤을 텐데, 저 방법은 좀 문제가 있네'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선배가 겪은 상황이라면 나도 대책이 없을 것 같아요. 운 좋게도 나는 그런 상황을 안 만났을 뿐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제서야 나도 그런 상황을 충분히 맞닥뜨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게 된 거죠. 교사 개개인의 인격이나 능력과 무관한 돌발적 상황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그리고 아이들을 그런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합니다. 틈이 없는 거죠. 쉴 틈이 없어요. 전혀

 

p89

학생들의 삶에 틈이 없다. 학생들은 너무 바쁘고 지쳐 있다. 거의 모든 학생이 자기가 왜 여기에 와서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학교에 와야 할 내적인 동기가 없다. 하고 싶지도 않고,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 붙들려 있으니 "그야말로 스트레스가 꽉꽉 차 있는 상황"이라고 신 교사는 말한다. 그러니 종이 치고 교사가 들어오더라도 일어나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학생은 학교에 와준 것만으로도 자기가 할 바를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만만한' 교사가 건드리니 폭발해버린 것이다.

 

p91

큰 악의가 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에요. 만만하고 편하니까 선생을 놀리는 일이었죠. 교실 바닥에 드러눕는 아이, 노트북 전원을 끊는 아이. 컴퓨터를 설치하는 도중에 전원을 꺼버린 거죠. 저도 정도가 지나친 걸 아는지, 눈치를 살짝 봐요. 애들을 혼내고 내면 내가 너무 심하게 화를 낸 것은 아닌지 자책하게 되고, 애들의 행동은 애정결핍이고 욕구불만이거든요.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도 많고 제가 문제 삼으려고 했으면 정말 큰 문제가 되었겠죠. 그런데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에요. 성폭력이고 뭐고 아무 생각이 없어요.

 

p94

류 교사는 학생들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교사를 시험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저 교사는 다 받아주는 것처럼, 지금까지 봐왔던 교사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데 '어디까지 수용이 되는지, 넌 다른 사람이랑 과연 차이가 있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이러다 그가 지쳐서 나가떨어지면 '너도 별 수 없지 않느냐' 며 냉소한다. 류 교사는 이런 학생들을 두고 "우리가 괴물을 만들고 있다"며 한 숨을 내쉬었다.

 

p101

정 교사뿐만 아니라 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교사들 대부분이 학생들을 상담하면 할수록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편으로 학생들은 상담을 싫어하고 되도록 교사와 무관해지려고 노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사와 친밀한 관계가 맺어지면 "무섭게 달라붙기" 때문이다. 특히 친밀감이 잘 혀성되는 여학생들은 교사가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한꺼번에 개방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정 교사는 첫 학교에서부터 이런 경험을 하면서 "지쳐버렸다"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듣는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소진되는 것이다. 정 교사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이런 학생에게는 '아주 이쁘다'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서 해주어야 한다. 이런 말을 한 번 이라도 중단하거나 학생에게 비판적인 말을 하면 "선생님도 마찬가지군요." 라며 더 상처받고 떠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교사는 여학생 반을 맡으면 자신은 심리적으로 "얼마나 볶일지"를 잘 알고 있다면서, 그들의 삶에 뛰어드는 것이 겁난다고 말한다. 그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보이고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지만, 자신이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다고 한다.

 

p103

교사들이 학생의 문제를 듣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상담하는 학생의 문제가 다른 학생들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사와 상담하는 학생들은 교실에서 문제상황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다른 학생을 괴롭힌다거나 돈을 빼앗는다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 등이다. 교사는 상담 과정에서 비로소 그 학생이 왜 그런 행동을 할수 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지만, 그것은 학생의 입장에서는 감추고 싶은 일인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의 경험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그 학생이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생을 '방어'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그 학생이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이 공론화되거나 다른 학생에게 알려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학생과 교사 모두 심각한 상처를 받게 된다.

 

p106

최근의 상담은 푸코가 말하는 사목권력적 성격을 보여준다. 이때 교사들은 학생들의 정서를 파악하고 감시하는 관리자가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심리검사와 상담은 전체 학생들에게서 고위험군의 분포가 어떻게 되는지를 전체적으로 관리하면서 동시에 개별적인 학생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관리하는 통치 전략이다.

 

p109

이처럼 노바디는 투명인간과 같은 존재이다. 이들은 학교에서 인정받지 못한 존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정받을 기회조차 상실한 존재다. 인정이 남들에게 기여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면, 이들은 학교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 학교 또한 이들이 학교에 기여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학교는 이들이 탁월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학교에서 사고나 치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저 숨만 쉬면서 가만히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노바디들은 학교에서 버림받은 존재이고 학교의 관심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학교 폭력이 이슈가 된 이후에 이 노바디들이 학교의 적극적인 관리대상이 되었다. 최 교사가 말한 것처럼 이들이야말로 "두려운 존재들"이 되었다.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p110

최근 학교 폭력 담론 이후 제기되고 있는 안전에 대한 강박은 노바디들에 대해서 학교를 그저 '육체적 생명'을 돌보는 공간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학생들의 생명을 정치적 생명에서 육체적 생명으로 완전히 축소하여 그들을 사회적, 정치적으로 벌거벗은 생명으로 만들고 있다. 학교는 그저 학생들의 육체적 생명을 돌보기만 하는 '수용소'가 된 것이다. 노바디인 학생들을 아무 목적없이 가둬놓고 그저 죽지만 않으면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이 바로 학교다.

 

p117

고학력 중산층과 저학력 노동자층의 자녀 양육 방식의 비교를 통해 왜 고학력 중산층 학부모의 자녀들이 성적이 더 좋은지 분석한 연구를 보면, 고학력 중산층 학부모들은 자녀를 학업에 몰입시키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학력 중산층 학부모는 자신의 생애 경험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학벌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온몸으로 체득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녀를 학업에 몰입시키기 위해 일상적으로 '의식화'를 수행한다. 공부 이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경계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그 관심을 공부 쪽으로 독리기 위해서 노력한다. 초등학교 때는 음악이나 체육 등에도 관심을 두루 가지게 하지만 중학교 진학 이후에는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들은 "공부를 통해서 출세하는 길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며, 그 외의 길은 고생스러운 삶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따라서 교사가 자기 자식에게 공부 이외의 길에 마음을 두게 하거나 자기 자녀의 역량을 부정하는 것을 가장 못 견뎌한다.

 

p124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교사가 자기 자식을 대하는 태도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교사가 자기 자식에게 문제가 있다고 선언하는 순간 학부모는 불안해질 수 밖에 없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학부모 특히 엄마는 자녀에 대한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생의 교육은 근본적으로 가정이 책임져야 하고 그 책임이 엄마의 몫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은 한국사회에서, 학생에게 문제가 있다는 선언은 곧 엄마에게 문제가 있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엄마 자신 뿐 아니라 교사들도 실제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자 교사 역시 나와 인터뷰를 하는 내내 이 학생의 문제는 곧 엄마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두번째 이유는 교사가 자기 자식에게 문제가 있다고 선언했을 때 그것이 자녀에게 미칠 여파에 대한 불안이다. 학부모들은 학교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근본적으로 약자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볼모로 학교에 보냈기 때문에 학교와 교사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생활기록부 등 교사가 학생을 판단해서 기록하는 내용은 평생 그 학생의 뒤를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에 교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학부모의 위치다. 또한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교사가 한 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학생들의 시선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그 학생에 대한 평판에 어떤 반향을 일으키는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자식에 대한 교사의 평가에 학부모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p128

피해학생의 부모와도 갈등이 생겼다. 황 교사는 이 사건을 통해 피해학생이 평소 가지고 있던 문제에 대해 학부모와 상담하며 같이 해결해가기를 원했다. 폭력 사건 자체에서는 피해자였지만 평소 생활태도에 있어서는 늘 다른 학생들과 문제를 일으키던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부모는 자기 자녀의 심리적 문제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고 그것으로 교사와 상담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대신 이 사건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해달라는 요구만 했다. 또한 폭력 사건만 문제 삼으며 자녀의 성향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일체 거론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황교사는 "자기 아이에 대한 방어벽은 너무나 높고, 문제점을 알고 있어도 드러내려 하지 않고, 자기 아이 문제도 겉으로는 없다고 말한다" 면서, 이 학부모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면 '공격적으로'나오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p151

유 교사의 하루를 보면 한국의 교사는 '가르치는 직업' 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돌보는 직업'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사실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더 많이 바라는 역할이 바로 '돌봄'이다. 자기 자식이 사고 치지 않게, 말썽부리지 않게 잘 감시하고, 사고를 당하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잘 돌봐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초등학교든 고등학교든 교사의 주된 임무 중의 하나는 '돌보는 일'이며 보모에 가깝다. 서울의 중산층 부모들은 아예 대놓고 공부는 자기가 시키겠으니 교사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잘 돌봐주기만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보모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교사에게는 저녁도 없고 일요일도 없다. 학생과 관련해서 호출이 들어오면 언제든지 출동해야 한다. 이것이 교사의 바쁨의 한 실체다.

 

p158

교무실의 한쪽에는 "5시에 칼퇴근하고, 주말에는 푹 쉬고, 방학을 한껏 누리는 교사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는 새벽에 나와 오밤중까지 학생들을 찾고 만나러 뛰어다니는 교사들이 있다. 교무실은 밥 먹을 틈도 없이 무한정 바쁜 교사들과 한가하기 짝이 없는 교사들로 나뉘어 있다. 한쪽에는 무한책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무책임이 있다.

 

p161

바로 이런 점에서 교사의 바쁜은 공동의 바쁨, 공통의 바쁨이 아니라 누군가의 바쁨이다. 이것이 교사의 바쁨을 교사 집단 전체의 바쁨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오히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교사들의 바쁨이 교사의 노동이 전혀공유되지 않고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랑이 찢어지게 바쁜 교사들은 무한정 바쁘고, 그렇지 않은 교사들은 하루 종일 "심심해서" 풀이나 뽑으며 시간을 보낸다. 게다가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책임마저도 공유되지 않는다. 무한책임을 지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교사들이 사건사고가 벌어지면 책임마저 '독박'을 쓰는 사태가 벌어진다. 누가 그런 일까지 하라고 했냐는 비난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점차 교무실은 바쁜 사람만 바쁘게 하고, 그 바쁜 사람마저 점점 더 전체의 일에 나서지 않고 소극적으로 되게 만든다.

 

p180

자신의 타자 됨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고 공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하여 사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자기 검열이자 감시로서의 자기 단속이다. 자기 검열이란 아무도 명시적으로 위해를 가하지 않지만 스스로 위협을 피하거나 타인의 감정을 상하지 하지 않을 목적을 자기 자신의 표현을 스스로 검열하는 행위"를 말한다. "튀면 죽는다"라는 생각 때문에 공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자기 검열인 것이다.

 

p182

슬로더다이크에 따르면, 우리는 몰라서 안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알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모든 것이 문제 있는 것으로 변하면, 어떤 점에서는 모근 것이 상관없어진다."는 그의 주장처럼 "우리는 계몽되었고 무감각해져버렸다."

 

p183

교사들이 시험이나 진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학생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이유는 단지 학생들이 중요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교사 자신을 위해서 교사들이 함께 학생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교사들은 학생들로부터 자신이 상상하지 못한 내용의 이야기를 듣고 당황할 때가 많다. 집안 문제에서부터 성 문제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학생으로부터 들었을 때, 교사들은 정서적으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 때문에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p184

교사들의 무력감은 학생들이 겪고 있는 일이 교사 자신의 경험 세계와 동떨어진 것일수록 심해진다. 완전히 낯선 존재에게서 느끼는 무력감이다. 자신이 전혀 경험하거나 상상해본 적이 없는 일이어서, 이야기를 듣는다 하더라도 그 어떤 조언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기가 생각해보지 못한 비참함 때문에 교사가 충격을 받아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고, 이것이 무기력을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그 교사를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은 동료 교사들 뿐이다. 이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함께 겪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겪는 이런 2차 정신적 트라우마를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현실이기 때문에 그냥 외면해서는 안 되고 정당하게 직면해야 하는 고통"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 당장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외면함으로써 나중에 치러야 할심리적 대가보다는 훨씬 작은" 고통임을 이해하고, 이것이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집단적으로 이런 트라우마를 받은 거니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치유의 출발점이라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이 학생들과의 관계와 상담에서 받은 현실에 대한 고통과 상처를 서로에게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라는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p198

학교가 "교육하는 조직보다는 행정을 처리하는 조직으로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위에서 시키는 일을 중심으로 과업을 수행"한다는 것이 관료주의적 행태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러나 최 교사가 겪은 일을 보면 교레에서 관료주의적 해결이란 최 교사의 의견처럼 공문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초빙으로 이 학교에 온 부장에게는 관료 처리 이전에 관리자의 눈치를 보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교사의 편의와 책임 회피를 위해 도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생의 편의가 아니라 교사의 편의가 중심이 된다.

 

p203

수행평가나 다양한 수업 방식을 활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가 관리자라면 싸움이라도 하겠는데, 동료나 선배들이 반대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다. 수업이나 기타 잡무로 바쁜 동료 교사들의 일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 뜻을 접고 그대로 따라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p209

듀이에게 삶이란 곧 성장이고 성장이란 경험의 갱신과 확장이었다. 이전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다음 경험을 해석하고, 그 새로운 경험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재해석하는 것이 경험의 갱신이고 성장이다.

 

p214

아이들이 지나치게 나를 따르면 겁이 났어요. 괜찮은 사람이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던 거죠. 그 아이의 인생 전부가 나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이 무겁고, 그 무거움이 싫어요. 여러 본보기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은 좋지만, 그렇지 않고 나 혼자만 답이 되는 것, 이건 무섭죠.

 

p216

서 교사 역시 중학교에 근무할 때 학생들이 자신의 말을 너무 신뢰하는 것에서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자신이 완벽하지 않은 것을 잘 아는데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신뢰할 때 느끼는 부담감과 공포다. 그래서 그는 학교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을 때, 그 시스템과 매뉴얼대로 하면 교사의 부담은 덜어지는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서 교사는 학교에서 중요한 것은 책임의 공유라고 강조했다. 학교라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동료 교사가 이 부담을 나누어 맡는다면 한 학생의 성장과 미래가 공동의 책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공동 책임을 지기보다는 누군가의 책무의 문제로 환원된다. 책임은 공유된느 것이다. 한 조직에 속한 모든 이는 책임을 나누어 가진다. 이에 반해 책무는 공유될 수 없다. 이는 '극단적 책임'이라고 불리 정도로 한 개인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 학교에서 강조된느 것이 바로 책무성이다. 문제는 책무성이 강조될수록 책무의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책임의 공유는 사라지고 책임을 회피하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이다.

 

p242

정규직 교사와 기간제 교사, 보통의 교사와 초빙교사, 평교사와 관리자 같은 교직의 위계화는 교사들이 서로 결속하는 것을 방해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특히 이런 위계화에 따라 교사들이 정치적으로 단결하는 것은 점차 불가능해지고 있다. 그리스에서 정치란 "자유로운 인간들이 서로에 대한 강요나 강제력 혹은 지배 없이, 서로 평등한 관계 속에서" "모든 공무를 대화하고 서로를 설득하면서, 서로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정규직 교사는 교사이되 정규직 중심의 교직사회에서 '평등한 파트너'가 아니다.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고, 정규직 교사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임시로 있다가는 사람들이므로 정규직과는 사명감이나 책임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에게는 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평등하게 말할 권리'가 없다.따라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혀식으로는 같은 교사이지만 그 둘 사이에는 정치적 결속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p249

한병철은 우리 사회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성과사회의 주체는 명령이나 억압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를 경영하는 기업가가 되는 서과 주체이다. 무엇보다 이 성과 주체는 타자에 의해 착취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착취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이 주체는 "규율에 단련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복종적 주체보다 더 빠르게 더 생산적"이다. 성과 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 자유로운 주체가 순응에 대한 개인적인 보상을 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순응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성과에 따른 경제적 보상이다. 우선 봥과 후 학쇼나 방학 보충수업 같은 것이 있다. 생활을 구려나가야 하는 교사들에게는 보충수업이 제공하는 금전적 혜택은 작지 않다.

 

p262

질문을 안 던지죠. 의심하지 않아요. 자기가 배웠던 선행지식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p263

특히 공부를 못하거나 태도가 불량한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들이 그렇게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선배 교사들이 잘 지대해주는 것이 필요한데 오히려 질책만 하고 있으니 젊은 교사들이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p270

경쟁사회라는 게 자기가 타고난 것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거나 인정하지 않잖아요. 계속 말도 안 되는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서 갈리죠. 실패감을 계속 갖게 만들어요. 그러면 공적인 일에 어떤 생각이 있더라도, 자기 검열에 의해서 가치 없다고 늘 판정날 거거든요. 그럼 얘기를 안 꺼내놓죠.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당당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가치있다고 믿지 못하면 안 꺼내놓잖아요.

 

p271

임 교사가 보기에 신규 교사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잘했고 잘해야만 했던 모범생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공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인정 때문이다. '잘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을 때만 그것을 남에게 드러냈지. 모자라고 상처받은 것을 공적으로 드러내 본적이 없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업무에서 자신감을 보이는 모범생들이야말로 오히려 자존감을 가지고 있지 못한 존재들이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면서 기준에 '대해'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기준에 '의해'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에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쉽지 않다.

 

p285

바우만은 소비자사회로의 전환에서 "가장 결정적인 변환은 그들의 사회적 정체성이 요구되는 바에 따라 훈련되는 형식" 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근무 시간이 끝난 다음에 "페르소나를 바꾸고 전혀 불편하지 않게 다른 모드"로 전환하는 것은 소비자사회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때부터 보다 본격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실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 시간이 교사로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의미있다. 소비자사회는 "만족을 지연시키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사회이며 "윤리적 기준이 아니라 미적 관심의 안내를 받아야"하는 사회이다. 교육과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와 뮤지컬에 대한 이야기가 부딪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 사이에는 단지 세대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체 근대와 액체 근대, 전기 근대와 후기 근대라는 시대적 단절이 있다.

 

P292

바우만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세 가지 수준에서 신뢰가 다 붕괴하였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 두 번째는 타자에 대한 신뢰, 세 번째는 제도에 대한 신뢰다.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자기 자신조차 믿지 않으며, 자신이 속한 제도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는 사람들만 자기 주변에 배치하려고 하며 모르는 세상과의 접촉을 될 수 있는 한 끊으려고 한다. 제도와 타자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불신할 때, 안전을 위해서 자기가 자신을 감시하고 검열하는 자기 단속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개인들은 침묵함으로써 스스로를 세계와 단절하여 고립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취향만 남게 된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감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공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강도가 강해질수록 사람들은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집착한다. 취향이 같거나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는 것이다. 이른바 '사교'만 남게 되었다. 이 시대가 가진 취향과 사교에 대한 강박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다.

 

P295

이런 관점에서 왜 교사들이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그 상처와 고통이 만들어지는 공간에서 함께 겪고 있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전문상담소나 방송 같은 곳에 나가서 이야기하는지 비로소 알 수 있다. 권 교사가 교사로서의 고통을 나눌 사람을 학교에서는 도저히 찾지 못해 결국 점집을 찾아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제 상처와 고통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병리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그에 따라 상담소나 정신과 같은 전문적인 곳에서 다루어지게 되면서 학교라는 장소는 현장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교사로서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나누는 공간이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이 되었고, 교사들 사이에서조차 교육적 만남의 공간으로서 학교는 점차 공동화 되고 있다.

 

P297

나는 그의 말을 듣고 학교가 왜 성적이 좋은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배움의 공간으로서 실패할 수 밖에 없는지를 깨달았다. 한국의 교실에서는 자신이 하는 질문이 질문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아는 학생만 질문할 수 있다.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멸할 수 있는 학생만 질문할 수 있다. 그래서 교사로부터 "아주 좋은 질문이다" 라는 말과 함께 대답이 돌아올 수 있는 그런 질문만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소크라테스들만  질문할 수 있는 것이 우리 교실이다. 우리 교실에서 질문이란 자신이 아는 것을 드러내는 장치이지. 모르는 것을 드러내는 기회가 아니다. 자신을 무지한 자로, 알지 못하는 자로 드러내는 질문은 교사만이 아니라 동료 학생들에게 조롱의 대상으로 스스로를 던질 뿐이다. 그래서 교실에서 모르는 자, 즉 타자로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P306

윤 교사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다른 교사였다면 이 학생의 '그냥요'를 말로 듣지 않았을 것인데 그는 말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학생들이 '그냥요'라고 말하면 그건 말이 아니라 말하기 싫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와 말하기 싫다는 티를 그 말로 낸 것이고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화를 낸다.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준비가 돼 있는데 왜 너는 나에게 말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윤 교사는 이 학생의 '그냥요'를 말로 들었다. 처음에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자기를 돌아보니 이 '그냥요'가 정말 '그냥요'일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P311

사람들은 열린 장소에서 이질적이고 낯선 존재들과 함께 만나고 섞이는 것을 거부하고 인위적으로 동질적인 존재들하고만 어울리게 된다. 교사들이 자신과 성향이나 취향이 다른 교사들과 소통하는 것을 꺼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과 다른 존재에게 말 거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대신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말할 것도 별로 없고 말하기 쉬운" 관계로 움츠러드는 것이다. 이런 관계에서는 적그걱으로 조정하거나 소통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상대의 말을 알아 듣기 위해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RDp7D95uZ4Ip9

여러 밤을 관앞에서 새운 유족들은 왼쪽가슴에 검은 리본을 꽂고, 몸속에 모래나 헝겊을 채운 허재비들처럼 느릿느릿 관을 따라 나갔다.


연한 하늘색 체육복 바지 아래로 느껴지는 시멘트 계단이 차가웠다.


p12

몸이 죽으면 혼은 어디로 갈까, 문득 너는 생각한다. 얼마나 오래 자기 몸 곁에 머물러 있을까.


p13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지 않을까


p15

총검으로 목이 배여 붉은 목젖이 밖으로 드러난 젊은 남자의 얼굴을 교복 입은 누나가 물수건으로 닦아냈다. 부릅뜬 두 눈을 손바닥으로 힘주어 감겨주고는, 수건을 양동이 물에 헹군 뒤 꽉 비틀어 짰다. 핏물이 후드득 떨어지며 양동이 밖으로 튀었다. 


p17

신원이 확인되면 멀찍이 물러서서 오열의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너무 험하지 않게만 대강 수습해놓은 시신을, 유족들은 목화솜으로 코와 귀를 막아주고 깨끗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혔다. 그렇게 간단한 염과 입관을 마친 사람들이 상무관으로 옮겨지는 걸 장부에 기록하는 것까지가 너의 일이었다.


p18

덜 자란 은행나무 아래를 지나며, 이마 언저리까지 내려온 낮은 가지를 너는 뜻 없이 쥐었다 놓았다.


p19

집회에서 걷힌 성금이 아직 많이 남은데다, 도청에서 왔다고 하면 헐하게 주거나 그냥 가져가라는 사람이 많아 큰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p21

유난히 죽은 사람들이 많았던 밤에는 간격을 만들 겨를도, 공간도 없어서 얼기설기 관들의 모서리를 맞대 모조리 붙여놓았다. 그 밤 빽빽이 강당을 메운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문득 둘러보며, 마치 이곳에 집결하기로 약속한 군중 같다고 너는 생각했다. 소리치지도 움직이지도 손을 맞잡지도 않는, 지독한 시취만을 뿜어내는 군중 속을, 너는 장부를 겨드랑이에 끼운 채 빠르게 걸어다녔다.


p23

산소마스크를 쓴 채 눈을 감고 있던 외할머니의 얼굴에서 새 같은 무언가가 문득 빠져 나갔다. 순식간에 주검이 된 주름진 얼굴을 보며, 그 어린 새 같은 것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몰라 너는 멍하게 서 있었다.


투둑, 빗방울이 네 상고머리로 떨어진다. 얼굴을 들자 뺨으로도, 이마로도 마구 떨어진다. 삽시간에 빗발이 되어 쏟아진다.


p24

교련복 칼라 속으로 들어온 선득한 빗물이 러닝셔츠를 적시고 허리까지 흘러내린다. 혼의 눈물은 차갑구나. 팔뚝에, 등에 소름이 돋는다.


p24

그 다른 세상이 계속됐다면 지난주에 너는 중간고사를 봤을 거다. 시험 끝의 일요일이니 오늘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마당에서 정대와 배드민턴을 쳤을 거다. 지난 일주일이 실감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그 다른 세상의 시간이 더이상 실감되지 않는다.


p25

덜덜 턱을 떨며 천변 언덕을 기어올라 거리로, 더 낯선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거리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p28

빈 손바닥을 들여다보다가, 피곤한 듯 눈덩이와 뺨, 이마와 귓바퀴까지 세차게 마른세수를 한다.


p30

누가 누군지 구별하려고 가늘게 뜬 네 눈꺼풀이 빗 속에서 파르르 떨린다. 눈꺼풀의 경련이 뺨까지 번진다.


p39

생글거리던 눈, 고단한 미소, 부드러운 천으로 겹겹이 손끝을 감싼 것 같은 노크 소리. 그것들이 가슴을 저며 너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 그녀가 걸어나오는 기척, 펌프로 물을 길어 세수를 하는 소리가 들리면 너는 이불을 둘둘 말고 문 쪽으로 기어가, 잠에 취한 눈을 감은 채 귀를 기울인다.


p42

물에 빠진 사람처럼 무섭게 손을 끌어당기는 엄마를 떨쳐내려고 너는 손목을 뒤튼다. 남은 손으로 엄마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떼어낸다.


p45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그게 무슨 날개같이 파닥이기도 할까. 촛불의 가장자릴 흔들리게 할까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p48

아마 그 혼도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았어. 서로에게 말을 거는 법을 알지 못하면서, 다만 온 힘을 기울여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어. 마침내 체념한 듯 그것이 떨어져나가자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


p50

눈물 대신 피와 진물이 새어나오는 통증이 느껴졌어. 눈이 없는데 어디서 피가 흐르는 걸까, 어디서 통증이 느껴지는 걸까.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 내 창백한 얼굴을 나는 들여다봤어. 더러운 내 손들은 움직이지 않았어. 핏물이 산화돼 진한 벽돌색이 된 손톱들 위로 소리 없이 불개미들이 기어다니고 있었어


p51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p52

그들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어.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p53

그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는 환자복을 입은 젊은 남자였는데, 가마니를 가슴에 덮고 누운 그는 누구보다도 청결했어. 그의 몸을 누군가가 씻어주었어. 환부를 꿰매고 약을 발라주었어. 그의 머리에 친친 둘러진 붕대가 어둠속에 하얗게 빛났어. 똑같은 죽은 몸인데, 누군가의 손길이 남아 있는 그 몸이 한없이 고귀해 보여서 나는 나는 이상한 슬픔과 질투를 느꼈어. 몸들의 높은 탑 아래 짐승처럼 끼여 있는 내 몸이 부끄럽고 증오스러웠어.


p57

썻어가는 내 옆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에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p59

여전히 눈도 손도 혀도 없이 우리는 서로를 맞아주었어. 서로가 누군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서로가 얼마나 오래 함께였는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어. 처음부터 함께였던 그림자와 새로 온 그림자가 나란히 내 그림자에 겹쳐질 때,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들의 기척을 구별할 수 있었어. 어떤 그림자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고통들을 오래 견딘 것 같았어. 손톱 아래마다 진한 보랏빛 상처가 있던, 옷이 젖어 있던 몸들의 혼이었을까


그들의 그림자가 내 그림자 끝에 닿을 때마다 끔찍한 고통의 기척이 저릿하게 전해져왔어.


p62

나는 그 어린 군인들을 향해 어른어른 내려갔어. 그들의 어깨와 목덜미 언저리로 번지며 앳된 얼굴들을 들여다봤어. 겁에 질린 검은 눈동자들 속에서 불타고 있는 우리들의 몸을 봤어.


간헐적으로 쉭쉭 뿜어져나오는 검은 연기는 우리들의 썩은 몸이 내쉬는 숨 같았어. 그 거친 숨이 잦아든 자리에 희끗한 뼈들이 드러났어. 뼈가 드러난 몸들의 혼은 어느샌가 멀어져, 더이상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느껴지지 않았어. 그러니까 마침내 자유였어. 이제 우린 어디든 갈 수 있었어.


p64

한번에 수천개의 불꽃을 쏘아올리는 것 같은 폭약 소리, 먼 비명 소리, 한꺼번에 숨들이 끊어지는 소리, 놀란 혼들이 한꺼번에 몸들에서 뛰쳐나오는 기척


p69

114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도청 민원실 부탁합니다. 안내받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다시 기다렸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p70

그가 손을 쳐들었을 때, 설마 때리는 건가, 생각하며 앉아 있었던 그녀 자신을.

목뼈가 어긋난 것 같았던 첫 충격을


p72

그녀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어가는 순간을 견디지 못했다. 살점 위ㅇ에 피와 육즙이 고이면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있는 생선을 구울 때는 눈을 감았다. 프라이팬이 달쿼지며 얼었던 눈동자에 물기가 맺히고, 벌어진 입에서 희끗한 진물이 흘러나오는 순간, 그 죽은 물고기가 뭔가를 말하려 하는 것 같은 순간을 외면했다.


p77

뜨거운 면도날로 가슴에 새겨놓은 것 같은 그 문장을 생각하며 그녀는 회벽에 붙은 대통령 사진을 올려다본다. 얼굴은 어떻게 내면을 숨기는가, 그녀는 생각한다. 어떻게 무감각을, 잔인성을, 살인을 숨기는가. 창 아래 등받이 없는 의자에 걸터앉아 그녀는 손톱들의 거스러미를 뜯어낸다.


p80

그녀는 숨을 몰아쉰다.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p85

모두가 그녀에게 귀엽게 생겼다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눈 코 입이 조금씩 튀어나온 게 밉지 않고 귀엽구나. 머리는 꼭 흑인 댄서 같구나. 미용실에서 파마 안해도 되겠다야. 그러나 열아홉살의 여름이 지나자 누구도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스물네살이고 사람들은 그녀가 사랑스럽기를 기대했다. 사과처럼 볼이 붉기를, 반짝이는 삶의 기쁨이 예쁘장한 볼우물에 고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빨리 늙기를 원했다. 빌어먹을 생명이 너무 길게 이어지지 않기를 원했다.


그녀는 물걸레로 구석구석 방을 훔쳤다.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지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p87

가능한 한 끝까지 그 속에서 벼텼을 것이다. 혼자 살아남을 것을 가장 두려워했을 것이다.


p89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다. 입을 벌리고 몸에 구멍이 뚫린 채, 반투명한 창자를 쏟아내며 숨이 끊어지고 싶지 않았다.


p92

마침내 도청 쪽에서 총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잠들어 있지 않았다. 귀를 틀어막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 고개를 젓지도, 신음하지도 않았다. 다만 너를 기억했다. 너를 데리고 가려 하자 너는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났다. 겁에 질린 얼굴로, 마치 달아나는 것만이 살길인 것처럼. 같이 가자, 동호야. 지금 같이 나가야돼. 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서서 너는 떨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네 눈꺼풀은 떨렸다.


p94

겁먹은 듯 선량한 그의 눈을, 나이에 비해 일찍 깊은 주름이 생긴 목을 그녀는 모았다. 이렇게 소심하고 나약한 사람이 당국의 주시를 받는 필자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당국의 주시를 받는 책들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문득 생각했다.


p95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사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p97

다음 날 저녁 그녀가 다락에서 내려왔을 때, 어머니는 시청 청소차들이 주검들을 싣고 공동묘지로 갔다고 말했다. 분수대 앞에 던져진 주검들뿐 아니라, 상무관에 있던 관들과 미확인 시신들까지 모두 싣고 갔다고 했다.

관공서와 학교가 문을 열었다. 셔터를 내렸던 상점들도 영업을 시작했다. 계엄은 계속되었으므로, 저녁 일곱시 이후에는 통행이 금지되었다. 통금 전이라 해도 수시로 군인들이 검문검색이 이뤄져, 신분증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연행되었다.

수업.결손을 메우기 위해 대부분의 학교가 팔월 초순까지 수업을 했다. 방학하는 날까지 그녀는 날마다 정류장 옆 공중전화 부스에서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물을 잠가주세요. 손바닥에서  배어나온 땀으로 수화기가 끈적끈적했다. 예에, 의논해보겠습니다. 민원실 직원들은 인내심 있게 그녀를 응대했다. 꼭 한번 나이든 여사무원이 말했다. 그만 전화해요. 학생. 학생 같은데 맞지요.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


P105

처음 방으로 밀어넣어졌을 때는 우리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안ㅅ았습니다. 어린 고등학생들도 여기가 어디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은 채 모두 침묵했습니다. 그 새벽에 겪은 일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한시간여의 그 절망적인 침묵이, 그곳에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킬 수 있었던 마지막 품위였습니다.


P106

모두가 정좌를 하고 정면의 철창을 똑바로 바라봐야 했습니다. 눈동자만 움직여도 담뱃불로 지져버리겠다고 한 하사가 말했고, 본보기 삼아 실제로 한 중년 남자의 눈꺼풀을 담뱃불로 문질렀습니다. 무심코 손을 움직여 얼굴을 만진 고등학생을,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질 때까지 때리고 밟았습니다.


목덜미를 스멀스멀 기어내려가는 것이 땀인지 벌레인지 구별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었습니다. 


P107

한달 전 그의 부고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그 눈이였습니다. 멀건 콩나물국에서 콩나물을 골라 먹다 말고 멈칫 나를 보던 눈. 그가 콩나물을 다 먹어버릴까봐 긴장하고 있던 나를, 우물거리는 그의 입술을 혐오하며 쏘아보고 있던 나를 묵묵히 마주 바라보던, 나와 똑같은 짐승이었던 그의 차갑고 공허한 두 눈.


P108

나도 잠을 못 잡니다. 하루도 깊이 못 잡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 그럴 겁니다.


김진수가 처음이 아니라고 선생은 전화로 말했지요. 우리들 중 더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말했지요.


P109

성기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게 하고, 나무 자로 내려치겠다며 위협했다고 했습니다. 하체를 발가벗기고 영창 앞 잔디밭으로 데려가, 팔틀 뒤로 묶고 엎드려 있게 했다고 했습니다. 굵은 개미들이 세시간 동안 김진수의 사타구니를 물었다고 했습니다. 석방딘 뒤 거의 매일 밤 벌레와 관련된 악몽을 꾸었다고 들었습니다.


P112

우리 조의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였습니다. 장전을 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정말 총알이 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아, 도청 앞마당에 나가 밤하늘을 향해 한발 쏘아보고 돌아온 야학생도 있었습니다. 스무살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집으로 보낸다는 지도부의 지침을 거부한 건 바로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그들의 의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만 17세까지만이라도 억지로 돌려보내는 일에 긴 언쟁과 설득이 필요했습니다.


P114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상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P116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그날 도청에 남은 어린 친구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총을 메고 창 아래 웅크려앉아 배가 고프다고 말하던 아이들, 소회의실에 남은 카스텔라와 환타를 얼른 가져와 먹어도 되느냐고 묻던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


p117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있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학생 대표의 말대로 우리가 총기를 도청 로비에 쌓아놓고 깨끗이 철수했다면, 그들은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눴을지도 모릅니다. 그 새벽 캄캄한 도청 계단을 따라 글자 그대로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던 피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합니다.


p118

그건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들을 대신한 거였다고, 수천곱절의 죽음, 수천곱절의 피였다고


김진수와 나는 여전히 식판 하나를 받아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습니다. 몇 시간 전에 조사실에서 겪은 것들을 뒤로하고,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묵묵히 숟가락질을 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식판을 내려놓고 소리쳤습니다. 참을 만큼 참았어. 그렇게 네가 다 쳐먹으면 난 어쩌란 말이야. 으르렁거리는 그들 사이로 몸을 밀어넣으며 한 남자애가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그, 그러지 마요.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 늘 주눅 든 듯 조용한 아이였기에 나는 놀랐습니다.

우, 우리는...... 죽,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

김진수의 공허한 눈이 내 눈과 마주친 것은 그때였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p120

지금도 나는 여름을 견디지 못합니다. 벌레 같은 땀이 스멀스멀 가슴팍과 등으로 흘러내리면, 내가 살덩어리였던 순간들의 기억이 고스란히 돌아와 있는 걸 느끼며 깊은 숨을 쉽니다. 이를 악물고 더 깊은 숨을 쉽니다.


각진 각목이 어깻죽지와 등허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곧은 물성대로 활짝 펴지며 내 몸을 비틀 때,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헐떡이는 일초와 일초 사이, 손톱과 발톱 속으로 그들이 송곳을 꽂아 넣을 때, 숨, 들이쉬고, 뱉고,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신음, 일초와 일초 사이, 다시 비명, 몸이 사라져주기를, 지금 제발, 지금 내 몸이 지워지기를 


p122

정말 닥쳐올 총살을 기다리듯 숨을 죽였습니다. 죽음은 새 수의같이 서늘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지나간 여름이 삶이었다면, 피고름과 땀으로 얼룩진 몸뚱이가 삶이었다면, 아무리 신음해도 흐르지 않던 일초들이, 치욕적인 허기 속에서 쉰  콩나물을 씹던 순간들이 삶이었다면, 죽음은 그 모든 걸 한번에 지우는 깨끗한 붓질 같은 것이라고.


p124

주섬주섬 그간의 안부를 묻는 동안, 우리의 눈길은 투명한 촉수처럼 조용히 서로에게 뻗어나가 얼굴 안쪽의 그늘을, 대화와 헛웃음으로 덮이지 않는 고통의 흔적을 어루만져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고, 가족의 신세를 지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김진수는 매형의 전파사 일을 돕고 있었고, 나는 큰댁에서 하는 한식당 일을 돕다가 얼마전에 그만둔 상태였습니다. 연말까지 쉬다가 해가 바뀌면 택시 회사에 들어갈 생각이라고, 돈을 모아 언젠가 개인택시를 하겠다고 내가 말하자 그는 덤덤하게 대꾸했습니다.


p125

잠은 잘 자나요. 난 잠이 안 와서 혼자 소주 두병 마시고 지금 해장하고 있었어요. 집에서 술 먹으면 누나가 싫어하니까. 누나는 뭐, 나한테 화내거나 하진 않아요. 그냥 울죠. 그게 보기 싫어서 더 술 생각이 나죠.

한잔 더 할까요, 물으며 그는 내 얼굴을 무심히 건너다보았습니다.

우리 한잔 더 하죠.

모직코트 깃을 올려세운 직장인들이 창밖으로 바삐 걸어 출근할 무렵까지 우리는 함께 마셨습니다. 아무것도 잊게 해주지 않는 투명하고 독한 술을, 차가운 유리잔에 붓고 다시 부었습니다.


p126

우리들으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정색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애원하고 구걸하는 낯익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p128

재판?

김영재 기억해? 우리하고 같은 방에 있었던.

나는 김진수를 마주 보고 앉았습니다. 그를 흉내 내듯 잠시 정좌 했다가, 차가운 벽으로 물러나 느슨히 등을 기댔습니다. 항렬로 나하고 조카뻘이었던 애 말이야.

그래, 하고 나는 대답했습니다. 어쩐지 다음 말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됐어.


p129

국선변호사가 그러는데, 지난 십년 동안 여섯차례 손목을 그었대. 매일 밤 수면제를 술에 타서 먹고 잤대.

나는 김진수의 잔에 술을 채웠습니다. 한잔만 같이 마신 뒤 이불을 깔고 누워 잠을 청할 생각이었습니다. 김진수에게는 혼자서 마실 만큼 마시고 비가 그치는 대로 나가라고 말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동안 김진수가 그 아이를 얼마나 자주 만났고 그 아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한다 해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p130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p133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하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한발을 여전히 김진수의 등에 올린 채 그는 M16을 들어 조준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 않냐.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P134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베트남전에 파견됐던 어느 한국군 소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시골 마을회관에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을 모아 놓고 모두 불태워 죽였다지요. 그런 일들을 전시에 행한 뒤 포상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가 그 기억을 지니고 우리들을 죽이러 온 겁니다.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P135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P136

달은 밤의 눈동자라고 했다.


P144

평범한 강당 같은 건물에서 보낸 사흘 동안 비슷한 일이 반복됐습니다. 낮에 시내에서 시위 진압을 한 그들은 저녁마다 술에 취한 채 우리에게 왔고, 얼차려 중에 눈에 띈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맞다가 실신한 사람의 몸을 공처럼 구석까지 차고 가, 머리칼을 움켜쥐고 벽에 뒤통수를 찧었습니다. 숨이 끊어지면 얼굴에 물을 끼얹고 사진을 찍은 뒤 들것에 실어갔습니다.


P146

도려낼 수도 없는 내 눈꺼풀 안쪽에 박혀서.


P160

쨍쨍 울리는 여자에들의 노랫소리가 이 밤으로부터 아득히 먼 버스에서 울려오는 것을 듣는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원한단다 먼저 가신 임들을 위해 다 같이 묵념합시다. 먼저 가신 임들을 따라 끝까지 싸웁시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귀하니까.


P166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에서 수십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 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P175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안다.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초등학교 때 피구 시합에서, 날쌔게 피하기만 하다 결국 혼자 남으면 맞서서 공을 받아안아야 하는 순간이 왔던 것처럼. 버스에서 터져나오는 여자애들의 쨍쨍한 노래에 이끌려 광장으로, 총을 든 군대가 지키는 광장으로 걸었던 것처럼. 끝까지 남겠다고 가만히 손을 들었던 마지막 밤처럼. 희생자가 되어선 안돼, 라고 성희 언니는 말했다. 우리들을 희생자라고 부르도록 놔둬선 안돼. 눈을 뜬 달이 침묵하며 옥상의 여자애들을 내려다보던 봄밤이었다. 그때 입속에 복숭이 조각을 넣어준 사람이 누구였던가? 당신은 기억할 수 없다.


P177

아니,

언니를 만나 할 말은 하나뿐이야.

허락된다면.

부디 허락된다면.


장례식장과 응급실로, 병동과 병원 정문으로 갈라지는 도로를 밝히던 외등들이 일제히 꺼진다. 도로 가운데 그어진 흰색의 직선을 따라 당신은 얼굴을 들고 걷는다. 선득한 빗방울이 당신의 정수리에, 당신의 운동화가 내딛는 아스팔트에 떨어져 번진다.


죽지마.


죽지 말아요.


P183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 ...... 형이 뭘 안다고......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오.


P187

목숨이 쇠심줄 같어서 너를 잃고도 밥이 먹어졌제.


P188

안 그래도 잠을 깊이 못 들고 뒤철이는 날들뿐이었지마는, 그날부터 새로 잠을 못 잤다이. 네 아부지도 잠을 못 자드라마는, 평생 병치레만 하는 순한 양반이라 억지로 떼어놓고 혼자 유족회에 갔다이. 처음 보는 엄마들허고 인사를 허고, 쌀집을 하는 최장네에서 밤늦도록 현수막하고 피켓을 만들고, 모자란 것은 각자 집에 가서 더 만들어기로 하고 헤어졌다이. 헤어질 적에 손을 잡는디, 그 차갑든 살...... 암것도 속에 없는 허재비 같은 손을 맞잡고, 허재비 같은 등을 서로 문지름스로 얼굴을 들여다봤다이. 얼굴 속에도 암 것도 없고, 눈 속에서 암것도 없는 우리들이 내일 보자는 인사를 했다이.


P189

날개가 달린 것같이 형사들 책상 위를 겅중겅중 건너갔다이. 벽에 걸린 살인자 사진을 끌어내렸다이. 밟아 부순게 발에 유리가 박혔다이. 눈물이 흐르는지도 피가 튀는지도 몰랐다이.


P190

그저 겨울이 지나간게 봄이 오드마는. 봄이 오먼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먼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P198

희영이 고모가 그 수학 선생님과 결혼했다면, 하고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성립되지 않는 나의 어린 상상 속에서 스물여섯살의 고모는 동그란 배를 안고 대문 앞에 서있었다. 총알이 고모의 하얀 이마에 박혔다. 양희은 노래를 성악풍으로 따라 부르는 걸 좋아하는 희영이 고모의 뱃속에서 아기가, 눈을 뜬 아기가 물고기같이 일을 벌리며 꿈틀거렸다.


P201

다음 날인 어제는 일찍부터 움직였다. 전남대의 5.18연구소와 상무지구의 5.18문화재단에 갔다. 칠십년대부터 중앙정보부가 상주하며 고문이 이뤄졌던 505보안부대는 출입문이 폐쇄되어 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P202

속눈썹에 눈송이가 맺히는 것을 털어내며 택시를 잡았다.


P206

한참 걷다가 오른손이 여태 가슴 왼편에 얹혀 있었던 걸 깨달았다. 심장 언저리에 금이 벌어진 것처럼. 그렇게 해야 무사하게 운반할 수 있는 무엇이 된 것처럼


P207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 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류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밣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P211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P212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짓이긴다,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P214

날을 받아 유족들이 다 같이 이장을 했는데, 관들을 열어보니 처참했던 모습 그대로인 겁니다. 유골에 비닐이 친친 둘러져 있고, 피묻은 태극기가 덮이고 ..... 동호는 그래도 처음이 가족이 수습했기 때문에 유골이 얌전했습니다. 우린 무명천을 한마 끊어가서, 누구에게도 맡기기 싫어 뼈 한마디 한마디를 직접 닦았어요. 어머니가 머리 부분을 맡으면 충격이 크실까봐, 내가 얼른 집어서 이빨 하나하나까지 정성껏 닦아줬습니다. 그랬어도 그 일을 이기기가 힘드셨던가봅니다. 그때 내가 우겨서 집에 계시게 했어야 했는데


P215

젖은 양말 속 살갗으로 눈은 천천히 스며들어왔다. 반투명한 날개처럼 파닥이는 불꽃의 가장자리를 나는 묵묵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1장. 어린새 - 동호를 주체자로 해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준다.

2장. 검은숨 - 정대의 시각

3장. 일곱개의 뺨 - 은숙의 시선 (출판사에서 일을 한다.), 교수의 추천으로 입사

4장. 쇠와 피 - 김진수와 같이 있었던 사람.

5장. 밤의 눈동자 - 정대의 누나인 정미,그리고 성희누나와 노조 소모임을 만들었다.

6장. 꽃 핀 속으로 - 동호의 엄마

그리고 에필로그



너(동호, 16살)

정대 (16살, 동호랑 같은 집에 사는 친구)

정미 누나 (정대의 누나)

은숙누나(수피아여고 3학년)

선주 누나 (충장로 양장점 미싱사)

김진수

.. (김진수와 같이 있던 누구) 이름은 업

동호 엄마

동호 큰 형, 작은 형

편집장(출판사 사장)

서선생

성희 언니(노조 소모임을 만듬)

윤(심리부검에 관한 논문을 준비중)





세상을 살아갈수록 궁금한 게 많이 생긴다. 무엇인가 조금 알게 되면 반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해 준 무엇이 궁금하고, 내가 속해 있는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어서 돌아가는지, 내가 먹고, 자고, 입고하는 것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서 내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또 빠져나가는지 궁금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왜 이렇게 잔인한지, 운명은 존재하는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신은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아마 삶이란 풀지 못하는 궁금함을 자기 나름대로 풀어나가면서 하루를 살아가는게 아닐까 생각된다.

과연 나는 어떤 사회 속에서 살고 있을까?

운명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태어난다. 누군가는 복지국가에서 따뜻한 부모 속에서 자라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태어나자 마자 먹을 것이 없는 빈곤한 국가에서 태어나서 가녀린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지도 모른다. 이런 불합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악행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살아가고, 양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세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갈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내 뜻대로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올바른 삶일까, 아니면 자신은 위험하고 힘들더라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삶이 올바른 삶일까.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 풀리지 않고 답이 없는 질문을 다시 해 본다.

얼마 전에 읽은 <제주4.3을 묻는 너에게>를 읽은 다음에 느낀 감정과 유사하다. 일부러 이런 작품을 찾아 읽은 것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내 손에 잡히게 되었다. 이런 책들이 나를 선택해왔다. 기억하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닌지 뒤돌아보라고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소년이 온다>는 작가 한강이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에 있던 분들과 유가족들을 인터뷰하고 1년 반 동안의 시간을 들여 내놓은 작품이다. 작품을 쓰는 내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 슬픔은 책에 고스란히 닮겨 있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고스란히 가슴을 건드린다. 어떻게 이렇게 타자의 아픔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작가는 따뜻한 사람인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는 인터뷰를 하면서 한 유가족에게 글로 써도 되냐고 물어 봤다. 유가족은 말한다.

 

p211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내가 태어나기 2년 전에 벌어졌던 일이기에 나는 잘 모르는 사건이다. 반대로 불과 50년도 안 된 기간에 내가 사는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내가 알아야 하는 사건이다.

읽는 내내 많이 아팠다. 정말 '잘 써주셨다' 라고 말해드리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온전히 글로 풀어낼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슬픔, 분노, 아쉬움, 아픔, 안도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때로는 복합적으로 다가와서 눈이 아프기도 했고 숨을 잠시 멎어가며 한 문장을 읽어내려갔다.

 

p51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작중 정대가 죽고 난 후 영혼이 되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 누가 자기를 죽인 것인지. 16살의 중학생이 남한의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빨갱이라고 신군부는 국민을 시민을 살상합니다. 무장 군인들이 들어오고 탱크가 들어오고, 헬기까지 동원된다. 자신들의 권력쟁취를 위해서 어린 학생들까지 무참히 살해한다. 당시 광주시민이 40만명이었는데 군인들에게 지급된 총알이 80만발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들은 과연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었는지 무서울 뿐이다.

 

잔인한 1980년 5월이 지나가지만 그 잔인함은 쉽게 지나가지 않는다. 










# 이제는 뭐가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직업의 선택은 삶을 살면서 결정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하루의 절 반 이상을 일터에서 보낸다.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도 직업에 따라서 변화되어 가기도 한다. 한 번 선택한 직업은 쉽게 바꾸지도 못한다. 감당해야 할 위험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선택인 직업을 과연 나는 어떻게 해서 이 자리에 앉게 되었는가? 잠시 뒤돌아 본다.

5살 아들에게 가끔 물어본다. "나중에 크면 뭐가 되고 싶어?" 대답은 다양하게 나온다. '공룡, 선생님, 또봇, 풍선 ...'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고등학교 1학년인 나에게 물어본다. "수호야, 너는 뭐가 되고 싶니?"  대답이 없다. 되고 싶은 게 뭔지를 모른다.
고등학교 1학년 말에 문과, 이과를 선택해야 한다. 당연히 이과에 가야된다고 생각했다. 수능시험을 보았다. 이제 대학에 가야 한다. 내가 어떤 것을 하고 싶을까 하면서 관련된 과를 찾아보았을까? 특별히 하고 싶은게 없으니 가고 싶은 과도 정해진 게 없었다. 고3 담임선생님과의 상담도 학과 위주가 아닌 그 점수로 갈 수 있는 더 나은 학교를 찾는 것이었고, 그렇게 이과를 나온 나는 당연히 공대에 들어갔다.

대학교에 오니 고등학교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수업은 의미가 없었다. 그저 친구들이랑 만나서 술먹고 노는게 전부였다. 마치 고등학교에서 저녁내내 공부했던 거에 대한 보상인 듯이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건설적인 대학생활 같은 건 없었다. 동아리방에서 친구들이랑 이야기하고 술먹고 운동하는게 전부였다. 지금은 이런 생활도 그립지만...

군대에 갔다오고, 3학년 2학기, 4학년이 되니 이제는 걱정이다. 취업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 남들처럼 취업준비를 했다. 취뽀에 가입하고 이력서를 쓰고 채용 공고가 뜬 이른바 대기업에 원서를 쓰고 기다렸다. 회사에 취직해서 어떤 일을 해야 겠다는 목표는 없다. 그저 일단 대기업 취업이 목표였다.
그리고 입사를 하고 6년째를 보내고 있다.

아마 위의 글을 읽은 누군가는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 이거 내 얘기 아니야."
뒤돌아보면 나는 분명히 열심히한거 같은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건 그저 주위에 휩쓸려서 갈 뿐이지 나의 주체적인 선택은 배제된 것이다.
지금은 이런게 너무 아쉬워 이제부터라도 무엇인가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게 없을까 하고 찾아보려고 조금의 노력은 기울인다. 다시는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가 않다.

다시 한 번 물어본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아직까지도 막연하다. 하지만 지금 대답할 수 있는 정도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싶다." 라는 정도의 대답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누군가와 무엇인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게 나름 장하다.

 

# 엄기호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학교와 교사들의 생활을 엿보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만난 책이 있다. 엄기호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이다. 가르치는 직업의 대표격인 교사는 모두들 학생의 입장에서 경험했고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때로 뒤돌아보니 지금의 시선과 그때의 시선으로 본 학교, 교사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는 알게 되었다. 책 속에서 등장하는 선생님들의 입장에 내가 직접 서보니 당황스럽고 화가 나기도 하고 가르치는 입장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생겼다.


엄기호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를 읽고 난 후의 생각을 표현하자면 '답답하다' 이다. 내가 몰랐던 문제들에 대해 가득 풀어버리고 떠나버린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단지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생, 교사, 학부모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상황과 그 속에서 발생되는 교육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시련이 드러난다.

[학생과 교사]
고등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와의 관계는 철저하게 입시위주로 재편되어간다. 입시를 포기한 학생들은 교사와 관계를 유지하려 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도 입시에 필요한 과목에 대한 교사와 관계를 유지할 뿐 기타 과목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를 바란다. 학생과 교사는 암묵적으로 No Touch 를 원한다. 입시만이 아닌 학생들의 교육을 위하는 교사들은 이런 환경에 대해 극복하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교사와 학생들과의 관계 설정의 범위 또한 교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는 경우도 많이 있다. 특히 가정폭력, 성폭력 등과 같이 교사 역시 경험하지 못한 사항에 대해서 상담하는 경우에는 교사 역시 참담함을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는 교사가 어느 정도 개입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가를 통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된다, 아직까지는 교사에게 어느 정도 책임을 돌리는 듯 하다.


[교사와 교사]
학생과 교사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날 경우 교사 개인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그런 정신적 스트레스는 동료교사들과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교무실에는 그런 소통이 단절되어 있다. 매 년 학년이 바뀔 때가 되면 일부 교사들은 담임을 맡지 않으려고 한다. 담임을 맡는다는 것은 학생들과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인데 관계를 맺게 되면 일로 이어진다는 생각때문이다. 퇴근시간이 되면 일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의 교육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교사들은 때로는 자기가 기획한 수업방식을 도입하거나 현장학습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동료교사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받는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해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전적으로 그 교사가 책임을 지어야 한다. 결국 몇 년이 지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교사들이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교사들은 과도한 업무와 책임이 누적되어 버리고, 정신적 스트레스 또한 학교 내 동료교사가 아닌 정신과병원이라던가 전문상담기관에 방문해서 풀어야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교사와 학부모]
교사들이 하는 일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에 관한 것과 학생들의 생황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돌봄'으로 나뉘어진다. 둘 중 우선순위를 두기는 의미가 없겠지만 교사는 분명 가르치는 사람이기에 '교육' 이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점점 '교육'에 대한 것은 자기네가 알아서 할테니 '돌봄'에 대해서만 신경써달라는 암묵적인 요구를 해온다. '교육'은 학원, 과외 등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으로 알아서 할테니 애들 사고나 치지 않게 잘 돌보라는 뜻이다. 학부모과의 관계 형성이 이렇게 되면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더라도 자녀가 학교내 사건에 휘말릴 경우에는 교사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으려고 한다.

'돌봄'이 주된 업무가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직장에 다니다보면 퇴근을 하게 되면 직장생활과 다른 나만의 생활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교사가 '돌봄'을 주된 업무로 하게 되면 하루 종일 학생들에게 신경써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저녁 늦게라도 학교로 뛰쳐 들어가야 한다. 내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 부분은 정말 힘든 부분이라 생각한다. 교사들도 가정이 있는데 이런 생활은 교육에 대한 부담감 이상이 될 것이다.


[교사와 교육시스템]
교사의 주된 업무는 '교육'이어야 한다. 하지만 교사가 자신의 과목에 대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교과 개발이 필요한데, 그럴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그들이 교과 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방학이라고 한다. 평소에는 할당된 과목을 가르치고, 남는 시간에는 상급기관에서 내려오는 여러 업무는 처리하는데도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학생들과의 상담도 퇴근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루어질 수 있는게 현실이라고 한다.

상급기관, 학부모, 학생들은 이런 일들의 중심에 모두 교사를 두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교사를 추궁한다.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사가 현명한 판단을 한 것이 된다.. 이럴 때 필요한게 시스템이다. 교사들이 모든 것을 처리하게 하는게 아니고 일부 업무는 시스템에 의해 처리되게 해야 한다. 앞서 학생과의 관계에서 이야기 했던 가정폭력, 성폭력 같은 경우에 교사들이 아닌 전문 상담 기관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과 입시는 항상 풀지 못한 숙제이지만, 교사가 어떤 창의적인 안건을 내어서 실행하다가 실패하거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 그런 구조와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교사, 학생, 학부모가 두렵지 않은 학교를 위해서

두렵지 않은 학교를 위해서는 교사를 중심으로 한 학생, 교사, 학부모, 교육관계자들과의 관계 회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바우만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세 가지 수준에서 신뢰가 붕괴하였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신뢰, 타자에 대한 신뢰, 제도에 대한 신뢰'
이 책에서는 작가가 생각하는 남다른 해결책 같은 것은 없다. 단지 지금 현재 이런 현실이니 함께 공유하고 알고 있자라는 의도인 듯 하다. 모든 문제의 해결의 시작은 끊임없는 사실의 공유와 문제제기다. 그 끊임없음이 시작입니다. 관계의 회복은 신뢰의 회복이다. 신뢰의 회복을 위해서는 자기 자리에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거 같다. 나 역시 할 말은 딱히 없다. 지금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관심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말만 덧붙일 뿐이다.

단지 원하는 것은 지금 학생들에게 '무엇이 되고 싶으니?' 라고 물었을 때 아이들이 그것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
15년 전에 꿈도 없이 원하는 것도 없이 대학을 선택하고, 6년 전에 꿈이 아닌 남들이 하기 때문에 하는 취직을 했던 내 자신이 아쉬워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스스로 꿈을 찾을 수 있는 그런 교육의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p292
바우만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세 가지 수준에서 신뢰가 다 붕괴하였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 두 번째는 타자에 대한 신뢰, 세 번째는 제도에 대한 신뢰다.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자기 자신조차 믿지 않으며, 자신이 속한 제도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는 사람들만 자기 주변에 배치하려고 하며 모르는 세상과의 접촉을 될 수 있는 한 끊으려고 한다. 제도와 타자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불신할 때, 안전을 위해서 자기가 자신을 감시하고 검열하는 자기 단속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개인들은 침묵함으로써 스스로를 세계와 단절하여 고립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취향만 남게 된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감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공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강도가 강해질수록 사람들은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집착한다. 취향이 같거나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는 것이다. 이른바 '사교'만 남게 되었다. 이 시대가 가진 취향과 사교에 대한 강박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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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시공 -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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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시공, 책 읽는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에 관한 글이다.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면 편안하다. 이런 저런 분야의 책을 읽다가 이따금 한 번씩 이렇게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면 기분전환이 되고 내가 하는 책읽기에 대해서 차분히 생각해 볼 시간을 준다.


사실 어떤 이야기를 할 거 같은지 대략 짐작은 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떨까?' 다시 궁금해진다.


책을 읽고 나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있고, 언제 어디서 책을 읽기를 즐기고 있을까? 


잠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기분좋은 시간이었다.


◆ 어떤 분야를 읽고 있을까?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관심이 생기는 분야가 생기고 그 관심의 폭이 점점 넓어짐을 접하게 된다.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 쓰는 자기개발서 같은 책을 읽었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책 읽기를 위해서는 재미가 중요하기에 재미있다는 소설책을 찾아서 읽었다. 어느 순간 소설에 빠져들었고,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소설들, 바로 세계문학전집을 한 권씩 찾아 읽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소설이다. 특히 소설 중에서 사회를 반영하는 내가 없었던 공간과 시간에 대해 알려주는 그런 소설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는 한 때, 고고학자나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저 생각만 있었을 뿐, 별다른 관심을 갖거나 노력은 하지 않았었다.

지금도 역사는 항상 관심을 가지는 분야이다. 올해 목표가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 개괄하는 정도의 독서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구입하고 정리하려 하는데 몸이 안 따르고 다른데 자꾸 관심이 간다. 그래도 목표는 올해 조선시대 역사에 대해서 개괄해 보고자 하고, 항상 책이 나올 때마다 기다리는 이덕일 한가람역사연구소장의 책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려 한다.

그리고 내년에는 고려시대도 한 번 도전해보아야 겠다. 일단 조선시대부터라도 제대로 읽어보자.


최근에 부쩍 관심이 가지고 있는 부분은 미술이다. 얼마 전에 동대문디자이플라자에서 진행중인 간송문화전에 다녀왔는데 고려청자의 신비한 색채와 신육복의 화첩과 추사 김정희의 서화 등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번이 직접 찾아서 간 두번째 전시작품관람이다. 앞으로 이런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보는 감동은 컴퓨터로 책으로 보는 그 이상의 아우라를 담고 있다.

그래서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의 책들과 다른 여러 책들을 찾아보고 읽는 중이다. 읽을 수록 재미있다. 아마도 이쪽은 더 찾아볼 수 있을 듯 하다.

나중에는 고려청자에 대해서도 조금 더 공부해보려 한다.


서양미술에는 <달과 6펜스>라는 소설을 계기로 고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고갱과 흥미롭게 연관된 고흐를 알게되어 고갱, 고흐에 관련된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이것을 기반으로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작품도 찾아보고 관련된 이야기들을 찾아보려 한다. 나중에는 곰 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한 번 완독해야 겠다. 지금은 거의 사전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항상 기반이 되는 것은 인문/사회이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직접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다루게 되는 이 분야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 타자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삶을 위해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관심이 가는 분야가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쉽지가 않다. 철학인데 그 진입장벽이 나에게 좀 높은 듯 하다. 최근에는 입문서 정도라고 하는 피노키오의 철학을 찾아 읽고 있는데 심오한 철학의 세계가 언제쯤 나를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걷기, 건축, 클래식, 글쓰기, 교육관련, 여행, 인테리어 등이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고 한다. 

이런 관심이 불과 2~3년 만에 생긴 것이니 아마 2~3년에는 조금의 발전과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더 생기길 바란다.



◆ 책 읽는 시간


책을 읽으면서 좋은 점 한가지는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때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반갑다는 점이다.

예전에 약속한 사람이 늦게 오면 전화를 몇 번 해보고, '어느까지 왔느냐?'고 확인하고 했는데, 이제는 덕분에 관대해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방에는 적어도 2권 정도의 책과 볼펜 한자루는 항상 들어가 있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나는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는 게 불편하다. 눈의 피로도 심한거 같고 그게 오히려 나에게는 더 좋은 듯하다.


굳이 가장 선호하는 시간을 꼽으라면 역시 세상이 조용한 새벽시간이다.

예전부터 나는 밤 늦게 자거나 시험기간에 밤을 지새우거나 하지 못했다. 지금도 아이들의 영향도 있지만 빨리 잠드는 편이다. 

그래서 오히려 새벽에 일어날 수 있게 되었고, 아무도 없는 듯이 조용한 새벽에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점심시간의 20~30분 정도의 독서도 맥을 잘 이어주는 연결의 시간이 되어준다.



◆ 책 읽는 공간


어느 기사에선가 '남자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가져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는 여자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인이 선호하는 공간에서 소진되었던 힘과 기운을 천천히 채워주워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일을 살게 해 준다.

아내는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내 방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공간이기에 그동안 방책을 세워야겠다.

쇼파에 앉아서 양 벽면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을 바라보면 무언가 뿌듯하고, 여러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생각이 차분하게 정리가 된다.

커피는 집에서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라 잔잔한 노래, 시원한 물 한 잔, 땅콩, 호두같은 것 한 접시, 볼펜 한 자루, 책 한 권이면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어린 두 아들을 위해서는 쉽게 즐길 수 없는 사치아닌 사치가 되긴 했으나 가끔 누려보기도 한다. 


지하철과 버스도 훌륭한 장소다.

아침에 버스 속에서 밤 사이 달콤하고 황홀한 꿈을 잇기 위한 유혹을 벗어난다면 훌륭한 장소가 된다.

항상 짓눌려 출근하는 서울 지하철이나 출근길 만원버스에는 다소 힘들기는 하겠지만 이동 중 대중교통은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된다.

책을 읽을 때 주변 사람들의 대화나 전화통화는 방해가 되지만 지하철, 버스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엔진소리, 정차소리, 사람들의 숨소리와 발걸음은 묘한 리듬감을 만들어내어 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내가 관심있어하는 분야와 좋아하는 공간, 시간에 대해서 적어보았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는 언제 어디서든 상관이 없는 듯 하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점점 다양한 분야로의 관심 확장과 끊임없는 호기심의 유지와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게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책 속 구절을 소개한다



P67

루치우스 세네카는 “인간은 항상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듯 행동한다.” 고 지적했지만 바쁜 시간 중에도 한가한 순간이 있는 법이다. 짬을 내고 틈을 내고 멍하니 흘려보내는 시간을 잘 활용하면 책을 읽을 시간을 얻을 수 있다.


P77

책은 영원히 남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함부로 펴낼 수 엇ㅂ는 것이다. 말처럼 내뱉고 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록으로 남아 영원히 다른 사람에게 읽힐 것이라는 생각은 책을 쓰는 사람에게 책임감을 갖게 한다.


P78

청년이라면 자기 자신과 가족과 사회와 세계와 자연과 우주의 존재 이유를 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던지지만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살 것이냐에 앞서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P82

장년의 독서는 지식 축적을 위한 독서에 머무를 수 없다. 장년의 독서는 그와 더불어 자신의 인생체험에서 나온 문제의식을 깊게 심화시켜 그 문제들에 대한 자기 나름의 체계적 답변을 마련하는 독서가 되어야 한다.


P84

청춘의 독서가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한 불타는 독서라면, 중년의 독서는 내면적 성숙을 위한 고요한 독서가 될 것이다.


P87

공자나 아인슈타인 같은 지적 업적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고, 그만큼 유명하게 되는 것도 삶의 보람이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업적을 남기고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유명하게 되는 것보다, 그런 목적 이전에 오로지 앎 자체, 진리 자체에 정열을 갖고 자신의 지적 세계를 가능한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각자 자신의 능력, 분수, 처지에 따라 자신의 지적 세계를 넓혀간다면 그만큼 그의 세계는 확대되고 그만큼 그의 삶은 깊고, 그만큼 그의 삶은 풍부하게 된다. 설사 내일 눈을 감고 의식을 잃은 송장이 되더라도 그 순간까지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고 알아가는 기쁨, 그 보람을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91

독서의 근본적 목표는 인간의 변화에 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나 자신의 내적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바에야 독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책을 읽기 전이나 읽은 뒤나 아무런 변화가 없이 똑 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 것인가?


P126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도서관이나 친구들을 통해 책을 빌려 보기도 하지만 언젠가 돌려줄 생각에 부담이 되고 책에 마음대로 줄을 긋거나 표시할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래서 다른 데 쓸 돈을 아껴서 필요한 책과 읽고 싶은 책 들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호기심이 또 다른 호기심을 낳고 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자꾸 책을 사게 된다. 한계를 모르는 호기심과 지칠 줄 모르는 독서열은 계속 책을 사들이게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한권 두권 늘어나는 책은 점점 서재의 수용능력을 넘어서게 된다.


P137

안동에 가면 퇴계 이황이 글을 읽고 가르치던 도산서원이 있고 퇴계가 앉아서 글을 읽던 돗자리가 원형 그대로 깔려 있고 퇴계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광수나 이상이나 김수영의 서재는 아예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얼마 전에는 최남선이 살던 집이 완전 철거되면서 우리나라 근대 지성사와 문학사의 분위기를 짐작해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져버렸다.


P176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라는 말이 있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는 말도 있다.


P179

“신촌 기차역에서 일산으로 가는 기차는 왕복 1시간 20분이 걸렸다. 캔커피 하나, 책 두 권을 들고 매주 기차역으로 간 적이 있었다. 역 근처 서점에서 신간 한 권, 잡지 한 권 사는 기분을 늘 상쾌했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해도 내리기 싫어진다.”


P192

파리 만이 아니라 서울 거리에도 길을 걸어가면서 책 읽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걸어가면서 책을 읽어도 넘어지거나 어디에 부딪히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책의 여신이 책에 빠진 사람을 보호하는 모양이다.


P196

영국에서는 서점을 bookshop이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bookstore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서점(書店)과 더불어 서관(書館), 서림(書林)등의 한자어가 함께 쓰였다. 당시 경성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은 박문서관과 한남서림이었다. 서점, 서관, 서림 가운데 ‘책의 숲’이라는 뜻을 담은 서림이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데 ‘책 파는 상점’을 뜻하는 서점이 점점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대현 서점들이 서점 대신 ‘글의 창고’라는 뜻을 담은 문고(文庫)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가 가장 눈에 띄는 보기다. 1970년대 서울에서 가장 컸던 서점은 종로서적이었다. 그것에서 종로3가 쪽으로 조금 떨어져 양우당이라는 서점도 있었고, 신문로 쪽에는 범한서적이라는 서점도 있었다. 범한서적이나 종로서적은 서점이면서 출판사도 겸하도 있었다. 그래서 서점이라는 칭호 대신 서적이라는 간판을 달았던 모양이다.


P198

<근대의 책 읽기>의 저자인 국문학자 천정환은 이렇게 토로했다.


서점에 가는 일이 두렵다. 서점에서 수많은 책 사이에 서 있는 일은 고통 그 자체이다. 서점에 가지 않은 얼마 동안 책들이 쏟아져나와 있다.  그 책들을 들추고 있노라면 내 게으름과 무식함이 발가벗는 것 같다.


P206

오늘날에도 센 강변에는 약 80여 개의 부키니스트 중고책 서점이 오랜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부키니스들의 초록색 철제상자는 파리 시 소유로, 파리 시가 심사를 거쳐 서적상에게 영구 임대한다. 그 대신 서적상은 책 판매수익의 5퍼센트를 파리 시에 납부해야 한다. 서적상이 사망하면 자동 상속은 안 되지만 가족들이 승계를 신청할 수 있다. 서적상들은 개인 연결망을 통해 장서가들이 사망하고 난 뒤 인수하거나 고물상을 통해 사들인 책을, 먼지를 털고 바라믕ㄹ 쏘인 다음 작가별로 시대별로 분류하여 초록상자 속에 진열한다. 상자 안을 들여다보면 각 서적상들의 전공 분야를 알 수 있다. 정치가나 연예인 들의 전기물을 모아놓은 상자가 있는가 하면, 1차대전과 2차대전을 중심으로 전쟁에 관한 책을 모아놓은 상자도 있다. 그 밖에도 중고서적상의 취향에 따라 20세기 문학, 예술사, 종교사, 왕실의 역사, 파리 여행기나 관광안내, 영화 등 고객들의 관심을 끌 만한 주제의 책들이 상자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전시되어 있다. 책 전체를 셀로판지로 싸고 오른쪽 위에 매직펜으로 가겨을 써놓기도 하며 때로 강변의 둑 위에 책을 올려놓기도 한다.


P233

책 속의 문장에 눈길이 닿으면 냉동되어 있던 생각의 얼음들이 녹아 따뜻해지면서 생각의 아지랑이를 무럭무럭 피어나게 한다.


도서관에는 서로 다른 입장과 의견을 표명하는 책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책들은 들리지 않는 소리로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도서관은 서로 다른 생각들이 싸우고 있는 전쟁터이기도 하다.


P236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도서관에 소장된 책의 입장이 되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무덤이 되느냐 보물이 되느냐,

내가 말을 하느냐 침묵을 지키느냐는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것은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친구여, 욕구 없이는 부디 들어오지 마라.


도서관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원전 280년경에 북아프리카 교역의 중심지였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거대한 도서관 이야기다. 당시 지중해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주의적 이상을 지식의 세계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건립한 이 도서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재에 있던 장서를 그대로 가져와 소장하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책을 모아서 무려 70만 권의 장서를 소장한 엄청난 규모의 도서관이었다. 


아테네와 로마가 인문학의 중심이라면 알렉사드리아는 자연과학이 강했다. 아르키메데스와 유클리드가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 그들은 아마 이 도서관에서 공부했을 것이다. 그런 유명한 학자들만이 아니라 클레오파트라도 그곳에 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도서관은 여러 번에 걸친 전쟁으로 수난을 겪다가 기원전 48년 카이사르가 일으킨 전쟁의 와중에 불타 재가 되고 말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2004년 그 자리에 다시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1974년 유네스코가 인류문화의 상징으로 알렉산드리아에 세계 최대의 도서관을 건립하자는 제아능ㄹ 한 지 30년이 지나, 드디어 그 도서관이 완공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라진 도서관이 부활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건립에는 중동의 산유국들과 유럽 여러 나라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 도서관은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 사이의 대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도서관의 서가에 처음 꽂힌 두 권의 책은 코란과 성서였다.


P241

도서관 서가의 수많은 책들은 19세기 말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던 멜빌 듀이가 1876년에 창안한 십진분류법에 따라 총류, 철학사상, 사회과학, 자연과학, 어학, 문학, 예술, 역사 등으로 분류되어 진열되어 있다.


P244

“나는 시립도서관에서 동과 서, 옛것과 새것을 두루 찾아 읽었으며 그것을 향해 한발한발 내딛는 청년 시절을 보냈다. 어깨 너머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립도서관의 참고 열람실에서 이루어진 책읽기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희망 없는 내일과 궁핍이 의식을 목죄었지만 날마다 책을 읽는 것으로 그 고통을 견뎌냈다. 훗날 시인이자 평론가가 된 장석주의 회고담이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그에게는 도서관이 대학이고 대학원이었다.


P263

모든 책은 의무적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하기로 되어 있어서 정식으로 출판된 책은 어떤 책이든 다 찾아볼 수 있다.


P267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저자들에게 수액을 전달하는 장소


P285

얼굴의 형태는 태어날 때 결정되지만 얼굴의 분위기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사람들의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 따라 달라진다. 스무 살까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얼굴로 통할 수 있다. 또 그렇게 행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으면 조금씩 그 사람의 삶이 얼굴 표정 속에 반영된다. 인생을 피상적으로 함부로 막산 사람의 얼굴 표정과 진지하게 삶의 의미와 깊이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의 얼굴 표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발자크의 말대로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며 한 권의 책이다. 용모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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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된다.

                                                                  - 1904년 1월, 카프카, 저자의 말 [변신] 중에서



'어떤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의 내 모습이 같은 경우, 그 책은 읽지 않은 것만 못하다.' 라고 했다. 여기에 더불어 카프카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저자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여러번 머리를 맞은 듯하다.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독서의 방향까지도 변화하게 만들어 버렸다.

아직 나에게 독서에 있어서는 양적인 성장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내공이 쌓아지면 그 때는 박웅현 작가처럼 책 한 권 한 권을 꾹꾹 눌러서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워낙 이런 내용을 강조를 해서 나도 모르게 책을 두번 정도를 훑어보게 했고, A4용지 13장의 발췌를 해서 하나의 파일을 만들게 했다. 아마 이것이 나에게 쌓여갈 독서 발췌록의 시작점인 듯 하다.

[책은 도끼다]를 읽고 난 후, 다음 날 아침 천안으로 가는 출근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항상 창가 쪽에 앉아가지만 창가는 거의 보지 않고 반쯤 감긴 눈으로 두 손엔 책을 잡고 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창밖을 보고 싶었다. 그 순간, 우와! 홀로 감탄을 하고 말았다. 붉은 태양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듯 빛을 사방으로 토하고 있었다. 이에 상응하는 듯, 길가의 내천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아침의 물안개가 그렇게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줄 처음 알게 되었다. 아직도 내 머리 속에 이 한 장의 풍경은 아로 새겨져 있는 듯하다.

김훈을 소개하는 글을 보면서 자연과 내 주변의 하나하나 사소한 것에 대한 소중함과 자연에 대한 숭고함 등을 느끼면서 주변에 시선을 돌리고 한 번 더 관심을 가져야 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관심은 바로 다음 날 이렇게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것이었다. 저녁에는 아내와 아들과 포도를 먹었다. 포도를 먹으면서 씨를 뱉어내는데 씨앗이 옅은 색, 붉은 색, 어두운 색 이렇게 세가지 종류가 있는 것이었다. 이게 씨도 그 속에서 세월이 흐르는 구나! 라고 혼자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내는 씨앗이 사람의 치아 같다고도 한다. 자세히 보니 정말 그렇다. 그 전에는 그냥 포도를 먹고 버려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소한 관심은 이렇게 아내와의 대화거리가 되고 소소한 행복이 되는 듯 했다.

이러한 종류의 책의 장점이자 단점은 좋은 책들을 마구 풀어내어서 나에게 읽어야 할 책들을 펼쳐 보인 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손에 잡고 싶은 것은 고은 시인의 [순간의 꽃]이다. 아직 나는 시에 대한 매력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거의 시집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마도 아직은 시를 읽을 내공이 부족한 듯 하다. 그런데 이 시를 한 번 읽고 나니 아주 짧은 몇 자에 불과하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들어버렸다.

방금 도끼에 쪼개어진 장작
속살에
싸락눈 뿌린다 

서로 낯설다


짧지만 한 편의 그림이 그려지는 듯하다. 우리의 말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새삼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게 바로 시구나! 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냥 툭툭 던져놓은 듯한 것들이 하나의 그림을 만들고 그것을 상상하고 그냥 살짝 미소짓게 만든다.

이렇게 여러번 나는 머리를 맞은 듯다. 조르바에게도 쿵! 카뮈에게도 쿵! 어쩌면 이 책이 나의 독서 생활에 한 획을 긋는 큰 사건을 만들어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이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사람을 선택한다고 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한 번 고마웠고, 지금 이 순간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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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2.0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7
이권우 외 지음 / 그린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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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빌리고 나서, 집에 와보니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가 아니었다. 그 뒤에 붉은 색으로 2.0 이 붙어 있었다. 출판사는 그린비니까 무언가 잘못된 거 같지 않았다. 책을 펼쳐보니 호모부커스의 다음 편이라고 한다. 살짝 아쉽긴 하지만 이 책 역시 그린비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의 한 권이니 특별하게 다가온 인연이라 생각하고 다른 호모부커스들은 어떻게 책을 읽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야 겠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 걸까? 이 두 가지 물음표 마크에 최근에 생각이 많아졌다. 책을 읽는 방법은 각자 마다의 개성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책 읽기에도 기본이라는 것이 있고 호모부커스 처럼 책의 달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 남과 다른 비법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책을 한 권 한 권 읽어가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비법' 같은 지름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 고 있다. 어쩌면 단지 남들은 어떻게 하나 보고 싶은 나만의 책에 관한 관음증 생각하면서 그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읽어 나갔다.

 이권우 작가외 25명이 각자의 독서관에 대해서 쓴 글이기에 짧게 짧게 그들의 생각들을 풀어내는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방법도 다르지만 결국은 이것들은 모두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서로 모두 이어지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도 어느새 그 끈의 한 쪽을 잡고 있는 듯 했다. 어떤 이는 나와 책을 읽는 스타일이 많이 비슷해서 공감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이는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풀어내어 어느새 내 눈이 커지기도 했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라는 내 질문에도 조금은 이 책이 방향성과 방법은 귀띔해주기도 하였다. 책의 서문에 보면 이권우 작가가 "읽고 성찰하기, 그리고 변화하여 성장하기, 그리고 다시 글쓰는 사람이 되라." 라는 글이 있다. 누군가는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에 달라진 점이 없다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라고 까지 하였다. 그만큼 내가 읽은 책에 대하여 느끼고 무언가에 대해서 사유하고 그것이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책 속에 이런 글귀가 있다. "읽는 책이 그저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도움이 되고 실용적이면 소용이 없다. 은밀히, 그러나 거대하게 변화하는 세계를 뚫어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귀띔해 주는 책을 읽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어떻게 책을 읽고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또 다른 대답이기도 하다.

 아직은 책읽기를 통해서 인생에 대해서 성찰하려고 하는 시작점이다. 모든 시작점에는 이런 저런 경험을 통해서 몸으로 어떤 것이 나에게 맞는지 부딪혀 보는 수 밖에 없다. 지금은 그런 과정이다. 조금 더 부딪혀보고, 항상 열린 시선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2.0] 의 26인 필자 중의 한 사람인 안민용씨는 자신의 관심분야를 확인하고 조금씩 넓혀가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한국십진분류표(FDC)를 사용한다고 한다.

000 총류
100 철학
200 종교
300 사회과학
400 순수과학
500 기술과학
600 예술
700 언어
800 문학
900 역사

 이런 분류로 보니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책은 너무 일부 분야에 치우쳐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 분야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내 관심사를 확장하고 새로운 분야를 찾아서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아마 몇 년 뒤에는 모든 분야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관심과 지식으로 조금더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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