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인생 별거 있다 - 한시에서 찾은 삶의 위로
김재욱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어보니 저자가 독자를 위해 많은 배려를 했다는 것을 느꼈다. 한시(漢詩)에 대한 거부감 혹은 편견을 걱정한 탓일까. 한시를 주제로 한 책이지만 한시 자체에 주목하지 않고 한시를 배경화하여 서술하였다. 또한 한시를 소개할 때, 의례적 관습에서 벗어나서 한자보다 한글 해석을 먼저 노출시켰다. 저자는 한문학 전공자라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겠다고 말했지만, 일반 독자인 나는 아주 마음에 든다. 사실 원문은 전혀 안 읽고 패스하거든요. 그래서 한시를 주제로 한 그 어떤 책보다 편하게 읽었다. 무엇보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한시에 대한 한글 해석을 보면, 물 흐르듯이 매끄럽게 읽힌다. 한시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데 저자의 해석은 고답적이거나 권위적인 해석을 지양했음을 알 수 있다. 친근한 어투로 이야기하듯 말을 거는 대화체의 해석이라서 읽기가 편했다. 학계의 엄격한 기준과 정도를 스스로 벗어나서, 대중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솔직하고 담백한 태도와 자세를 보니, 소탈하고 푸근한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책에서 드러나는 가치관에 동의하거나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서, 책을 다 읽은 후에 어느덧 저자가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인데도.

 

마음만 먹으면 1시간 만에 다 읽을 수도 있지만, 일부러 천천히 읽었다. 책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넉넉한 여유로움이 좋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한시들은 우리 조상들의 삶의 이야기였다. 현대의 우리들의 삶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단지 표현하는 언어가 달랐을 뿐이다. 책을 통해 한시를 짓거나 읊으며 삶의 애환을 달랬던 우리 조상들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도 인생은 별 거 있다. 별 거 아닌 듯한 제목이 별 거 있게 다가왔다. 모처럼 파한(破閑)의 기쁨을 만끽한 책이었다.





 

+ 받은 책에는 작가님께서 애정하는 한시를 제작한 엽서가 동봉되었다. 출판사 담당자의 손글씨와 함께 동봉되어 의미가 각별했다.

 

 

+ 작가님은 엽서에 넣을 한시로 <병이 낫다>라는 한시를 골랐다. 나이가 들수록 병에 걸리기 쉽고, 몸의 상태는 예전만큼 못하다. 그러나 병이 들었을 때 평상시의 즐거움을 더 확연히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에 공감했다. 코로나19를 예로 들어서인지,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일상은 부재할수록 존재감을 증명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으므로.


+ 대체로 대부분의 한시가 마음에 들었지만, 인상적인 한시를 꼽아보라면 몇 가지 있다. 기대승의 <취해서 아내에게>, 서거정의 <낙엽>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 남효온의 <할아버지가 손자를 버린 일>이라는 한시는 몹시 가슴이 아팠다. 늙은 할아버지가 골수조차 마를 지경에 와서, 불가피하게 손자를 버리게 된 처참한 사연. 네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된다는 말에 마음껏 놀았을, 그러다가 나중에 애타게 할아버지를 찾았을 어린 손자의 마음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시기는 전쟁이 닥쳤거나 흉년이 든 시기도 아니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시의 저자가 산 시대는 살기 좋은 시절이었다. 태평성대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고, 가난과 불평등의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말씀이 와닿았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이나 서평 작성 의무가 없이 자발적으로 작성한 감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