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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전면개정판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평점 :
하라 료의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 1권,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작가의 데뷔작이다.
나는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를 2권부터 접했다.
《내가 죽인 소녀》 개정판이 최근(22. 5.) 발간됨으로 인해 이 시리즈를 알게 된 것. 《내가 죽인 소녀》가 재밌지 않았더라면 아마 시리즈를 더 읽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2권에 이어서 지금 1권 리뷰를 한다는 것은 시리즈가 괜찮았다는 얘기. 시리즈를 다 읽을 생각이다.
2권을 읽었기 때문에 사와자키 탐정, 그리고 몇몇 등장인물에 대한 사전정보가 있는 상태였다.
다만 2권에서 언급되었던 와타나베 사건이 1권에 주요 사건으로 다뤄질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와타나베의 밀수 사건은 1권에서도 과거였다(더 자세하게 사정이 나오긴 한다). 사와자키는 1권에서부터 꿋꿋이 와타나베 없는 사와자키의 ‘와타나베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가이후라 이름을 밝힌 의문의 사내가 사와자키의 사무실을 방문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르포라이터 사에키의 행방을 찾는 한편, 거액의 현금을 놔둔 채 사라진 가이후. 사와자키는 가이후가 찾는 사에키란 사람이 실종 상태임을 알게 된다. 또한 사에키의 행방을 찾는 또다른 사람들이 사와자키를 찾아온다. 이혼 직전이었던 사에키의 아내, 그리고 저명한 미술평론가로서 재벌가의 딸을 후처로 맞이한 그녀의 아버지. 그들의 의뢰에 따라 사와자키는 사에키를 찾는데 나선다.
사라진 르포라이터만 찾으면 될 줄 알았던 사건.
사와자키가 조사에 임할수록 사건은 더 복잡한 양상을 띠며 여러 사건들과 맞물린다. 실종, 유괴, 살인……그리고 르포라이터가 쫓던 숨겨진 진실. 그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음모와 공작을 밝혀내는 것이 1권의 주요 내용이다.
2권을 먼저 읽고 1권을 읽어서 그런가, 1권은 다소 산만한 구석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 사건들이 진행되며 과거의 사건들과 연계되는데, 적어도 내게는 사건들이 매끄럽게 연결되지는 않았다. 사건의 흐름과 배치, 그리고 인물들의 연결이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드보일드란 장르적 면에서도 미흡한 부분이 보였다. 하지만 2권에서는 플롯과 구성, 장르적 특성이 1권보다 더 진일보하게 발전한다. 데뷔작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주인공 사와자키의 개성은 1권에서부터 빛을 발한다.
평범한 중년의 탐정인 듯하면서도, 자신만의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는 독특한 개성의 인물. 보수에 우선하지 않고, 의뢰인의 신분이나 지위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제 할 말은 다 하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 말투는 무심한데 그의 행동을 보면 어딘가 정이 느껴진다. 천재적인 타입의 탐정은 아니지만, 차분하고 성실하게, 차근차근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사와자키의 인간성이라고 해야 하나, 그의 정도가 마음에 들었다.
여성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여자들이 먼저 원했으니 사와자키로서는 순간의 유희를 즐겨도 그만일 텐데,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그렇다고 육체적 쾌락을 쫓지도 않는 고독한 남자……. 탐정의 업에 성실하게 임하는 전문 직업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와자키 외의 다른 인물들은 크게 개성적인 면모가 없었다.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사에키, 그리고 가이후의 매력을 크게 찾아볼 수 없었다. 사건의 진상, 반전도 크게 임팩트가 없었다. 적어도 내게는 1권은 시리즈의 스타트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강했다. 하지만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적 특성의 구현, 그리고 사와자키라는 걸출한 캐릭터의 구축은, ‘사와자키 시리즈’의 출발을 알리는 성공적인 표지라고 본다.
덧.
1. 2권에서 약간 두루뭉술했던, 니시고리 형사와의 관계를 1권에서 알 것 같았다. 와타나베로 인해 맺어진 악연(?)이랄까. 와타나베에게 애증을 느끼는 묘한 공통점이 있지만, 서로를 싫어하는 둘의 콤비가 의외로 괜찮았다.
2. 사와자키는 의외로(?) 싸움 실력이 괜찮다.
3. 사에키는 실종 직전 아내 나오코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정작 남편이 실종된 후 나오코는 탐정을 고용하면서까지 남편을 애타게 찾는다. 다행히도 사에키는 돌아왔지만, 결국 그들은 이전에 협의했던 대로 이혼한다. 그들은 사와자키에게 이혼의 이유를 밝힌다. 이유는 나오코의 외도, 혼전 임신이었다. 그러나 사에키가 알고 있었던 진실은 달랐다. 다른 남자의 아이로 알고 있었던, 나오코가 결혼하기 전 지운 아이는 사에키의 아이였다. 그녀는 사에키의 프로포즈를 받았을 때,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아기를 지운다. 또한 남편의 오해를 굳이 풀어주지 않은 채, 이혼에 합의한다. 나는 도통 이 여자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굳이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의심받는 길을 선택한 여자의 마음(p397). 도대체 왜 그랬을까?
4. 한국인이 등장한다. 정윤홍. 외국인이 알기엔 흔한 한국 이름이 아니다. 고심해서 지은 이름일 것 같기도 한데 단역에 불과한 악인이라니 살짝 아쉽다.
5. 책의 뒤에는 단편 <말로라는 사나이>가 수록되었다. 역자님 말씀대로 챈들러에 대한 동경과 경의를 고스란히 담은 단편. 더불어 하드보일드에 대한 한없이 긍정적인 희망의 찬가라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