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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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우선 책의 표지가 강렬하게 시선을 끌었다.

검은색 표지 하단에 자리한, 아주 진하고 선명한 분홍색 빛깔의 새. 환한 색이 아니라, 어두운 채도와 명암을 지닌 색이다. 그리고 아래를 응시하는 새의 눈동자는 불길한 기운을 풍긴다. 책의 분위기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새는 작중에서 구가로 불리는 새인데, 주요한 소재이자 모티브로 활용된다.

 


 

블랙하우스는 스코틀랜드에 있는 루이스 섬이란 곳이 배경이다.

거센 바람이 단 한 번도 멈추지 않는 섬. 멀리 떨어져 외부의 문화가 유입되기 힘든 탓에, 고립된 곳 특유의 문화가 있는 섬. 주인공 핀은 그 섬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나, 섬을 떠난 지 한참 되었다. 영영 섬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던 핀. 경찰관인 그는 상관의 명령 때문에 섬에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 섬에 살인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상관은 핀이 섬 출신임을 들어 수사관으로서 섬에 갈 것을 명령한다. 핀은 18년 만에 섬으로 돌아간다. 루이스 섬. 그곳에는 한때 그의 모든 것이 있었다. 부모님, 친구,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과거의 추억. 추억은 그에게 애틋한 그리움인가, 아니면 외면하고 싶은 고통인가. 살인사건의 진실이 드러날 때, 핀은 오래 묻어두었던 자신의 과거와 직면하게 된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의 시점이 교차되며 전개된다.

장소는 동일한 장소, 루이스 섬이다. 현재는 핀이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시점이고, 과거는 핀이 어렸을 때의 시점이다. 유년 시절의 이 과거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 과거는 그 자체로 거대한 복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과거는 현재 핀의 행동에 대한 당위가 되며, 결말로 향하는 서사를 응집하고 있다. 촘촘하게 쌓아올린 과거의 서사들은 결말에서 파괴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결말은 작중 배경처럼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순식간에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독자를 몰아붙인다. 생생한 묘사와 극적인 전개 탓에, 실제로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다.

 

블랙하우스는 작중 내내 낯설고 이질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것은 한국을 비롯한 외국의 독자들뿐만 아니라, 본토에 해당하는 잉글랜드의 독자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본다. 낯설고 생소한 섬의 배타적 특성은, 이 책의 스릴러로서의 장점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스산하고 기괴한, 살인사건의 무대로서(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섬에서는 20세기를 통틀어 살인사건이 단 한건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이 이질성에 기여한, 책에 등장한 루이스 섬의 독특한 문화.

크게 세 가지가 나온다. 게일어, 구가(), 블랙하우스다.

 

'게일어'1천여 년 전 유럽에서 사용했던 켈트어가 스코틀랜드에서 발전된 형태의 언어라고 한다.

루이스 섬 토박이들은 게일어를 사용한다. 그들은 게일어를 쓰지 않는, 즉 영어를 쓰는 본토 사람들을 잉글랜드인이라 부르며 자신들과 구별한다. 이들에겐 게일어 이름과 잉글랜드 이름이 따로 있다. 예를 들어보면 피온라크 맥클로지(게일어)/핀레이 매클라우드(영어)’, ‘마샬리/마저리’, 이렇게 두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제주 방언의 경우 갈수록 동화되고 있는 것을 볼 때, 루이스 섬의 고립성·폐쇄성은 교통 발전으로 육지와의 교류가 발달한 현대에서 이례적인 사례겠다.

   

표지로 쓰인 구가의 경우, 바닷새의 일종이다.

루이스 섬에서는 매년 이 구가를 사냥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책에서는 이 구가 사냥의 절차 및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묘사한다. 새를 죽이고 내장을 적출하고 소금에 절이는 일련의 작업. 너무나도 자세한 묘사 때문인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인 핀도 이 사냥에 참여한다. 섬을 거부하여 결국 섬을 떠난 핀조차, 섬의 문화이자 전통에는 순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도 섬 고유의 전통이자 문화적 관습이니 존중해야겠지?

   

마지막, 책의 제목이기도 한 블랙하우스는 스코틀랜드의 전통 가옥이다.

이 집은 굴뚝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다보니 불을 때면 지붕 사이로 연기가 새어나오며 집을 태운다. 그 태운 흔적이 검게 남은 바람에, ‘블랙하우스라 불리게 됐다는 속설이다. 한편 블랙하우스는 책의 주제 및 상징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결말을 보면 블랙하우스의 진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를 포함하여 루이스 섬의 문화가 실감나게 생생하고 표현될 수 있었던 까닭은,

작가 피터 메이가 스코틀랜드 출신인 덕분도 있을 것이다. 내가 경험한 섬을 생생하게 담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는 성공했다. 평단의 호평은 물론, 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까. 블랙하우스는 단권이 아니다. ‘루이스 섬 시리즈’ 3부작의 스타트에 해당한다. 이후 두 권이 더 있다는 얘기. 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매혹적인 루이스 섬. 섬의 또 다른 얘기를 기대하겠다.

 


 

 

1. 핀을 섬에 보낸 것은 상관이지만, 핀이 수사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은 한 시스템이었다. 주요 사건을 수사하는 데 쓰이는 영국 경찰의 정보기술시스템, 홈스HOLMES. 이 이름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2. 제법 추리·스릴러 소설을 읽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처럼 검시 장면을 리얼하게 묘사한 장면은 처음 봤다. 검시의가 대단히 존경스럽다.

 

3. 출생의 비밀이 공개됐는데도 누가 친부인지 모르겠다…….

 

인상깊은 구절

 

긱스 섬에서 벌어진 일은 섬에만 머물러야 하네. 이전에도 늘 그랬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걸세.” p222

 

뭔가를 죽이는 일은 처음이 힘들지, 일단 저지르고 나면 그 뒤는 한결 수월해지는 법이다.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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