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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방 - 법의인류학자가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리옌첸 지음, 정세경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교보문고에서 책을 구경하다가 눈에 띈 책이다. 보랏빛의 표지, 그리고 『뼈의 방』이란 제목에 호기심이 생겼다. ‘뼈의 방’이란 기증받은 유골을 모아둔 법의인류학자의 특별한 공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법의인류학자? 이 직업도 낯설었다.
법의인류학자는 형질인류학, 고고학, 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지식을 응용해서 뼈를 분석하는 일을 하는 전문직이다. 뼈를 분석해서 유골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 임무라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법의학자와는 다르다. 법의학자가 주로 시체에서 사망 원인을 찾는다면, 법의인류학자는 뼈에서 사망의 종류와 사망 원인을 관찰(p20)한다. 또한 법의인류학자는 법의학자들의 ‘비장의 카드’로 여겨지기도 한다(p22). 해부하고도 사망 원인을 밝히지 못했을 때 법의인류학자가 최소한의 단서라도 찾아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법의인류학자는 ‘뼈 전문가’다. 시신 해부는 범죄 소설 및 드라마에서 익히 봐서 알고 있었지만, 뼈를 분석한다는 것은 생경했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할 분야임을 이미 알고 있어서인지, 저자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친절하고 소상하게 설명한다. 뼈 안에는 개개인의 정보가 숨겨져 있다. 법의인류학자는 뼈의 화학 성분이나 형태를 분석해 생전의 생활 환경과 활동을 알아낸다. 뼈의 DNA를 추출하여 신원을 감식해낼 수 있다.
뼈와 치아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담겨져 있다. 법의인류학에서는 신원 파악을 할 시, 동위원소 분석을 활용하는데 이 분석은 ‘당신이 먹고 마신 것이 바로 당신이다’라는 믿음에 기초한다(p45). 모든 음식물의 화학 성분은 우리 몸 안의 조직과 체액에 반영된다. 따라서 뼈의 광물을 분석하면 그 사람의 생활 습관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음, 각종 인스턴트 음식을 섭취한 내 몸은 엄청난 화학성분이 검출되겠군……. 서구식 식습관을 가진 현대인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저자는 법의인류학에 대한 전문 지식을 전달하는 한편, 이 직업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서 차분한 어조로 독자에게 알린다. 저자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며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고 밝힌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법의학으로 살인범을 잡는 것보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과거는 죽은 자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밝히는 것이며 미래는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는 것을 뜻한다. 역사적 배경, 정치, 종교는 달라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죽음은 한결같은 답을 준다. 바로 뼈 너머의 인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p37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다가 죽음에 익숙해진 한 법의인류학자. 이 책은 ‘뼈의 방’에서 뼈의 주인들의 내밀한 이야기, 그리고 인생의 갖가지 경험을 들으며,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도 들려주고자 노력한 저자의 이야기다. 모든 유골에는 후세 사람들을 위한 저마다의 비밀이 담겨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비밀은 ‘너도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임(p183)을 말하는 저자. 이 책을 읽으며, 법의인류학에 대한 소개뿐만 아니라 저자의 죽음에 대한 사고와 가치관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