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맨
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 지음, 양혜진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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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2025.

영국, 글래스고. 스코틀랜드의 한 지방에서 심각한 전염병이 발생한다. 이 전염병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남성만 공격한다. 여자는 혹여 걸리더라도, 무증상 보균자, 즉 숙주 역할에 그친다.

2. 전염성이 높다. 증상이 발현된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단 이틀의 기간이 소요된다.

3. 치사율도 높다. 환자의 약 90%가 사망한다. (10%만이 면역을 갖고 있다.)

남성만 공격한다고 해서, 이른바 남성대역병이라고 불리게 된 역병. 이 역병은 빠르게 확산된다. 발생지인 영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뒤엎는다. 남성들은 빠르게 죽어나간다. 아버지, 남편, 아들, 형제가 차례대로 죽음을 당하는 이때, 살아남은 여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소설을 읽으며 상당히 놀랐다.

팬데믹, 질병관리본부, 사회적 거리두기, 백신 등. 코로나19가 아니었더라면, 소설상의 용어들은 전공자 및 관련자를 제외한 대부분에게 낯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익숙하다. 소설의 배경과, 상황과, 설정이. 그리고 더 놀란 점은 이 소설이 코로나19 이전에 쓰여졌다는 점이다. 저자 또한 후기에서 이렇게 밝혔다.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기 직전에 내가 팬데믹에 대한 책을 썼다는 사실은 신기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p465).

 

너무나 익숙해진 팬데믹의 상항이라서, 소설속의 상황이 실감났다. 물론 코로나19는 남성대역병보다 치사율이 낮다. 인구의 반 가까이가 사라지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가 코로나19 상황을 겪은 이상, 소설 속의 상황이 완전히 허구라고 말할 수 없다. 언제 우리가 코로나19가 터질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인류 역사상 등장했던 어떤 전염병보다도, 코로나19의 파급력과 영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리의 시대는 글로벌의 시대이고, 따라서 병의 확산세 또한 전세계를 망라하기 때문이다.

 

0호 환자를 진찰했던 의사 어멘더 매클린. 그녀는 몇몇 환자의 죽음을 통해, 재빠르게 이 병의 정체를 파악한다. 팬데믹의 징조임을 간파한 것이다. 눈치채자마자, 그녀는 바로 행동한다. 보건국 직원에게 메일을 보내서 전염병의 징조임을 알린다. 그리고 어멘더는 남편과 두 아들들을 집에 귀가시킨다. 이후 병의 확산이 가시화되자, 아예 병원에 출근하지 않는다. 어멘더의 행동은 대단히 현명했다. 의사로서의 의무를 좌시하지 않으면서, 가족을 우선시하는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

 

만약 그녀의 말을 들어줬다면 어땠을까. 현장에서의 신속한 진단으로, 어떻게 보면 조기에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무자는 그녀의 의견을 미쳐 날뛰는 정신병자라며 묵살한다(그리고 책 말미, 이 의견을 낸 실무자에 대해 통쾌한 반전이 있다는 사실!). 그 결과는 인류 사상 최악의 멸종 위기였다(남성 인구 90% 사망은 종의 멸종이라 정의하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한데 소설상 당국의 무능함은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 코로나19의 초기대응에서 성공적이었던 정부가 얼마나 있을까. 무엇보다도 코로나19 발원지로써 중국 정부의 초기대응은 아쉬움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소설상에 등장하는 전염병의 발발, 진행, 경과 등의 단계는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의 단계와 별 다르지 않다. 감염돼서 죽는 경우도 현재 빈번하게 있는 일이다. 소설은 더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했을 뿐, 결국 우리가 겪고 있는 이야기의 확장선상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더 모쪼록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설의 역할은 무엇인가. 소설의 경계와 영역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하고.

 

엔드 오브 맨의 특징은 다중시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시점의 화자는 대부분이 여성들이다. 의사, 기자, 공무원, 병리학자, 인류학자, 보모, 등의 시선을 통해서 사건을 진행시키고 있다. 또한 현재 시제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소설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 사람들은, 여성들은 이 팬데믹의 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피하려 애쓴다. 그렇지만 결국 남편과 아들, 아버지와 형제는 병에 걸리고, 죽는다. 그녀들이 가족을 떠나보내는 장면은 서글프면서도 애처로웠다.

 

한편 가족의 죽음에 비관하는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이 상황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도 있다. 극단의 현실 속에서,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 사라진 남성들의 자리를 대신하고, 남자들이 해왔던 역할을 수행하기에 이른 여성들. 여성들이 남성의 공백을 채우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경찰, 군인, 소방, 의사, 기술자 등, 남성들이 독점했다시피 한 영역들이 빠르게 여성의 영역으로 이관된다. 그와 함께 사회의 주도권 또한 여성에게 이양된다. 성차별과, 기술을 통해 신처럼 행세했던 남성들. 그들의 능력을 토대로 지어진 도시는 와해된다(p95).

 

코로나19를 견디며, 우리가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일상 회복. 엔드 오브 맨에서도 일상은 회복되지만 그 이전의 일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일상이다. 우리도 과연 그럴까.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의 세계는 확실하게 다를까. 그래도 소설의 끝이 말하는 일상은 일상이기에 의미가 있다. 소설에서 현실의 맥락을 짚으며, 일상의 회복을 간절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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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성대역병의 아이러니한 효과. 남성 인구와 마찬가지로 남성 테러리스트도 급감한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은 어느 시대에나 남자들이라는 사실!

 

2. 남성대역병이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정부를 전복시키고, 나라를 바꿨으니. 그중에서도 괄목할 상황은 체제에 따라 정부의 지속 여부가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살아남았고,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는 몰락했다(그렇다면 북한의 운명은? 책에 나온다!). 그 이유는 뭘까. 민주주의를 제외한 나머지 체제들은 여성의 정치 참여를 잘 허용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독재와 전제정치의 경우는? 책에서 확인하시길.

 

3. 중국이 코로나19를 초래한 것이 현실이라면, 소설에서의 중국의 상황 또한 주시해야할 부분이다. 좋든 싫든, 세계에서 중국이 차지한 비중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듯.

 

 

4. 남성대역병의 의도치 않은, 또다른 긍정적 효과. 작중에서는 이 병을 통해 한 여성이 남편의 폭력에 해방될 수 있었던 경우를 보여준다. . 코로나19로 인해 의도치 않게 긍정적 효과가 발생한 것이 뭐가 있었지? 확실히 있다. 사소한 예지만 코로나19를 핑계로 명절과 제사 참여가 줄어든 것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코로나19가 야기한 부차적인 효과일 뿐, 이 때문에 코로나19가 좋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5. 여기 나온 여성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모두 훌륭했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더 인상적이었던 여성들이 있었다. 어멘더, 그리고 프랜시스. 그녀들의 책임감, 의무감, 그리고 헌신적인 가족애 및 인류애가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6. 작가님. 대한민국을 언급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쩔 수 없다는……, 헤헤.

 


인상깊은 구절

 

 

우리는-여자든 남자든-는 모두 인간일 뿐이다. 단지 유전 법칙 혹은 운명의 장난으로 면역이 있다거나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더 나은 인간이 되는 일은 없다. p329

 

손쓸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은 것이 변해버린 지금, 우리는 어떻게든 예전의 삶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p347

 

우리는 모두 편향되었다. 우리는 모두 달라졌다. p460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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