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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8년 7월
평점 :
누구나가 ‘과거에 –했더라면….’하는 생각을 한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고 그에 발목을 내어준다. 그 순간으로 돌아가 어떤 일을 해냈더라면 지금과 같은 시간에 어떤 고통도 없이 행복할 거라 생각하며 현재의 목을 조른다.
예니 에르펜베크의 <모든 저녁이 저물 때>는 그러한 ‘과거의 분기점’에서 한 여인의 여러 선택을 보여준다. 만약 –했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주인공의 삶은 달라졌을까?
“하나의 삶에는 매번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전선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그 모든 전투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삶에는, 걸어오는 길에는, 걸어갈 길에는 수많은 ‘분기점’이 존재한다. 과거의 어떤 한 순간에 운이 좋은 쪽을 택했다 하더라도 그 선택이 여로를 보장할 수는 없다. 분기점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또 어떤 것을 고르게 될 것이다. 그 선택은 우리를 대충 쌓은 돌탑처럼 힘없이 무너지도록 할 수 있다. 부서지리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러니까 사람은, 자신을 몰락시키는 길을 스스로 미리 마련해두는 걸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올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채로.”
<모든 저녁이 저물 때>는 그러한 선택이 주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가 있을까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선택이 그를 어떤 곳으로 가도록 하는가. 그리고 그를 어떻게 되게끔 하는가. “하나의 동일한 원인이 다른 지방, 다른 장소에서 수천의 서로 다른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하니, 속한 사회를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나 다른 사람의 선택에 의해 효력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나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이 세상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 사람이 죽은 하루가 저문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저녁이 저무는 것은 아니”니까. 한 사람의 선택이 자신을 깊고 검은 구덩이로 몰아넣는다고 해서 온 세상이 함께 추락하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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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저녁이 저물 때>는 인간을 그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로 보게끔 한다. 누군가의 삶이, 그리고 나의 삶이 수많은 저녁들 중 하나이며 보잘 것 없는 것처럼, 행복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게도 한다.
그러나 이 지독하게 우울한 감성은 어떤 목표도 없이 공허한 달리기를 하고 있는 사람을 붙잡아 ‘이대로도 좋은가’하고 스스로 질문하게도 만든다. 눅눅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알아서 숨구멍을 찾게 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선택은 죽음이라는 몰락을 향한 과정이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전선에서 무기를 들고 뛰어나가 자신의 마지막 저녁에 별 하나를 띄우게끔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 별이 제 환상에 불과할 뿐이고, 단지 자신만의 저녁일 뿐이라 해도 ‘어떤 나비효과’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