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아닌 환상이 더 큰 힘을 발휘하던 초반부부터 점차 현실로 빼곡하게 채워진 후반부까지... 시간과 공간을 살아내는 자들- 더 정확히는 바보같은 신과 악랄한 남자들의 역사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여자들의 이야기. 여자들이 살아남은 과정은 끔찍하지만 또한 끈질기고 선택마다 힘이 있다. 살아남아 태고를 떠나는 모든 여자들을 응원한다.
게노베파의 몸 안에서 암세포나 곰팡이처럼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영상이 자라났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움직일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다는 뜻이다. 삶이란 결국 움직임이니까. 죽임을 당한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은 몸이다. 그리고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들의 시작과 끝은 몸 안에 있다. p.212
스스로가 과정의 일부인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있지도 않은 불변의 대상을 고안해내고는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완벽하다고 떠들어댔다. 그리하여 신의 불변성은기정사실화되었고, 사람들은 신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그렇게 상실하고 말았다. p.150-151
여자는 인류가 은밀히 고여 있는 그릇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린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아이들은 여자들에게서 새 생명을 얻었다. 그런 다음 깨진 알은 스스로 붙어 다시 고유의 형태를 회복해야만 했다. 여자가 강할수록 더 많은 아이를 낳았고, 그로 인해 여자는조금씩 약해졌다. 마흔다섯 살이 되던 해에 플로렌틴카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출산의 굴레에서 마침내 해방되었고, 결국 불임의 열반에 이르게 되었다. p.66
"아마도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딸이 필요한 것 같네요. 다들 딸만 낳기 시작한다면, 세상이 한결 평화로워질 텐데 말이죠."두 여인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