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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친화력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2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평점 :
" 여보, 의식이라는 건 믿을 만한 무기가 못 돼요."
괴테는 말했다.
"나는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줄의 문장도 체험한 것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사랑했노라, 괴로워했노라, 배웠노라."라는 말을 남겼다.
1809년에 출간된 #소설《선택적 친화력》은 괴테의 관심사였던 식물학과 화학에 대한 그의 지식과 58세의 나이에 사랑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18세 민나 헤르츨리프에 대한 실제 체험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친화력은 원래 스웨덴 화학자 토르베르 베리만(Torbern Bergman)이 발견한 화학용어로, 두 물질을 섞어 놓았을 때, 그 물질을 구성하는 특정 원소들끼리 달라붙는 현상을 말한다. 괴테는 인간 사회에서도 일어나는 대립과 친화의 힘을 이러한 화학작용에 빗대어 비유한다.
친화성이라는 강렬한 끌림과 결합 속에 선택이란 의미가 더해진 친화력은 어떤 관계가 다른 관계보다 더 선호 된다는 의미다. 화학자들이 사용한 친화력에는 의지도 포함된 것이었지만, 괴테는 자연에서의 친화성은 의지보다는 필연성에 의거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소설 속 인물인 샤를로테를 통해 자연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친화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선택적 친화력이란 표현으로 자연을 인간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는 화학자들의 시선을 꼬집는다.
인간의 의식은 무의식의 본능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되도록 불안전한 조건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이성적인 샤를로테와 달리 감성적인 에두아르트는 그녀의 우려보다 친구의 안위를 더 걱정하며, 그녀의 조언을 쉽게 치부해 버린다.
결국 지나간 사랑의 그림자를 진짜 사랑이라 여겼던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샤를로테의 우려대로 남편이 집에 들인 새로운 인물, 즉 그의 친구인 오토 대위와 자신 또한 체념하듯 받아들인 조카 오틸리에에 의해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여성인 샤를로테는 집 주변의 측량과 조경일을 맡아 계획하고 처리하며 보이는 오토 대위의 결단력과 책임감, 체계성에 매력을 느끼며 흔들리게 되고, 어느 날 둘은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이성적인 둘은 서로의 감정을 애써 모른 척 회피하며 자신의 명예와 도덕적 가치를 지켜나간다.
그들과 달리 감정적인 남편 에두아르트와 부인인 샤를로테의 선량하고 헌신적이며, 젊고 아름다운 조카인 오틸리에는 서로의 이끌림을 부인하지 못한 체 사랑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게 된다.
엇갈린 네 남녀의 상황은 쉽게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결혼 제도의 문제점을 설파하는 백작, 결혼의 신성한 의무와 체면을 중시하는 이웃 미틀러씨는 그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4명이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서 번민에 휩싸이고 있을 때,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는 샤를로테와 작은 우연조차 운명적인 사랑의 징조로 받아들이는 에두아르트 사이에서 결혼이라는 결속은 이미 힘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샤를로테는 자연의 친화력이 인간에게도 필연적인 것이지만, 한편으로 인간은 노력하기에 따라서 친화력의 필연성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와 이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편의 친구인 오토 대위와의 친화력에 의해 자신 또한 남편인 에두아르트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결국 인간이 믿는 의지와 이성이 사실은 매우 빈약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은 필연적인 운명을 만들어 내고, 필연적 운명은 도덕이나 덕망, 신성한 의무인 인간의 금기를 지속적으로 넘으려 하기에, 결합력이 약해진 부부를 제도권 하에 단단히 묶어두기는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된 것이다.
괴테는 남편 에두아르트와 부인의 조카 오틸리에 사이의 친화력 위에 남편 친구 오토 대위와 부인 샤를로테의 친화력을 중첩시킴으로써 인간이 지닌 이성의 불완전함과 사회적 제약에 묶여 발버둥 치는 본능, 그 사이에서 잉태되는 인간의 죄책감을 소설 속에서 보여주었다.
결국 #괴테 역시 자신의 사랑을 체념했듯, 궤도를 벗어난 마성의 사랑은 친화력의 당사자들을 숭고한 존재로 만들어 줄지는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국 괴테는 사랑의 본연적인 힘을 믿었던 것일까.. 그의 마지막 종결은 꽤 의미심장하다. 이는 직접 책을 읽어보시며 느끼시길 바란다.
을유문화사의 서평단 선정을 통해 괴테의 작품을 읽어 볼 수 있었던 것은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괴테는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차별화 시켜주는 것이 이성이라 믿기 시작하는 시대에 사실은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기력 한지를 통찰 하였으며, 그럼에도 인간만이 가진 인간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작품을 통해 전해준다.
괴테는 선택적 친화력을 통해 인간이 이성 하나 만으로, 혹은 순수한 감정 하나 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다층적이고, 복수적인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그것도 근대가 막 시작되는 여명의 시대에 근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보여주면서…
을유문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기회를 준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상상하는 것인지 모르며, 또 언제나 무언가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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