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큐큐퀴어단편선 1
이종산 외 지음 / 큐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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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계절이 바뀌었다루리와 슈코가 맞이한 겨울의 냄새가 밀려와 기분이 좋은 요즘제목만으로 눈물이 핑 도는 책을 찾았다사랑을 멈추지 말아요이 시대에 더욱 필요해 부족한 사랑을 멈추지 말라고 한다기획의 말을 다 읽기도 전에 감정을 쏟고 읽어낸 여섯 가지 이야기가 말하게 만든다그러니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이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볕과 그림자그림자의 반대는 무엇일까확실한 건 그 반대편에는 해가 아닌 내리쬐는 볕이 있다해는 고개를 더 들어 올려야만 볼 수 있지만그림자의 반대는 해라고 통용되어 있다. ‘이는 그런 이유로 빛을 싫어하는지도 모른다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처럼 정해진 대로 여겨야 하는 것에 싫증을 느꼈기에그래서 이름을 나눠 갖자는 이는 에게 단짝의 의미를 넘을 수밖에 없었다어떤 것이든 스스로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기를 은 바랐을 것이다. ‘의 갈망은 과의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질 테고 섣부른 추측이니 그만두기로 한다.

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서로를 바라보며 엉엉 우는 장면은 나중에 읽어본 가든파티의 줄거리로 인해 중요한 장면이 된다그저 글자에 얽매여 있는 이름해와 그림자 같은 일반적 의미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에게 죽음이란 어렵다. ‘을 보며 말 대신 눈물을 흘리고 끝끝내 그런 말들이 흘러나온다산다는 게 말이야산다는 게……의미부여를 한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작은 단어부터 커다란 죽음-개인차는 있겠지만-까지가든파티의 로라처럼 인생을 정의할 수 없을 때가 있다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하지만 에겐 이 있다반대도 마찬가지다. ‘은 빛의 의미를 바꿀 것이다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던 빛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자신만의 빛으로.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목을 매던 것들은 가끔 너무나 쉽게 떨친다단 한순간한 번의 자각으로 걸음을 뗄 수 있다같은 것을 스스로보다 더 갈망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렇다.

수프 카페를 운영하는 청년 사장 기정에게 선미가 찾아온다경계하는 기정에게 선미는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는다아프다는 게 뭔지 아니정상이 아니라는 거야정상이 아니면 사람이 아프게 되는 거야정상이 되고 싶은 건 욕망이 아니라 균형 감각이야선미는 처음부터 제목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말투를 한다뻔하지도 않고 처음 보는 기정에게 지나치게 호의적이다이토록 정상에 집착하는 선미는 역경을 딛고 정상에 다다라 또 다른 비정상을 인도하고 싶은 구원자처럼 보인다기정은 선미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들었고혼자 있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선미에게 천천히 익숙해지고 있었다선원빌리 버드에 관한 독서 모임이 열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악마는 순수한 의도의 악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 있다그렇다면 반대말은 성립이 될까다만 선으로 둘러싸인 것들은 본래의 빛이 가려진다선은 행하는 자에게도 구원이기에 힘을 갖는다본래의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따라 악한 선이 결정되겠지만그렇기에 빌리 버드가 행한 선한 폭력의 판단 여부를 물은 기정과 기정을 나무라는 선미가 대비되는 건 당연하다.

선미가 모든 걸 완벽히 해내다가 독서 모임을 기점으로 변한 것도 결말을 암시하는 내용이다선미는 하다못해 정상에 집착하게 된 사연마저 다르게 말하고 만다자신의 동기였을 사연마저도그와 동시에 기정은 깨닫는다선미는 정상이 되길 바라고정상은 권력이라는 것을그래서 손전등이 없으면 가지 못했던 길을 씩씩하게 걸어 나간다선미를 탓할 수도 있었지만자신을 정상이라 생각하며 정상을 이용하는지도 모르는 선미는 너무나 간절하다기정은 그래서 선미를 두고 떠났다기정은 정상이 되려고 애써서 힘들었기에.

 

레이디레이디정아와 유나정아의 하굣길 속 담벼락에 낙서하는 남자아이들은 정말 신랄하게 표현된다어쩌면 정아를 좋아했을지도 모르는 요시키의 편지에도 정아는 한없이 신랄하다그런 정아가 유나에게만 놀랍도록 약하다문득 유나의 얇은 팔을 잡으면서도 넘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가난함이 정아를 괴롭힌다그러다가 유나에 관한 마음을 딱 한 번 입 밖으로 내뱉고다시는 유나를 만날 수 없게 됐다철저히 마음이 부서졌다마음이 넘쳤지만 멀어지게 된 그 이후로 정아는 유나의 물건조차 보지 못하게 됐다정아가 먼저 유나를 찾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그리고 유나에 관한 것도정아는 모른다그저 애러비처럼 싸하게 식어가는 분노뿐유나의 노래가 더 이상 연가가 아니게 되듯이 한 번도 둘의 감정의 교차는 없었다

 

세 편사랑을 멈추지 말아요강원도 형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화장실에서 자신을 돌아본 이원도목화솜에 둘러싸이는 악몽을 꿨지만 재가 되지 않은 유진도류와 행복한 열차 여행을 떠난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겉모습을 바꾸고 예전 자신을 닮은 사람에게서 우월감을 느끼던 이원도또 다른 사랑을 느꼈지만 농락이고 기만이었던 유진도이 열차 여행이 멈추지 않길 바라는 .

자신을 사랑하는 걸 멈추지 말아요이원다음에도 류를 사랑하자는 너도 멈추지 말아요그리고 미아를 사랑한 지우도사랑을 멈추지 말아요이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사랑은 제한적이지 않습니다부디 이 책을 읽고 행복해지길 바라며,



화분www.rainbowbookm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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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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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이방인의 얼굴이다.

소은과 율랴그리고 미진소설 속 세 사람은 모두 이방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소은은 과거의 자신과 분리된 채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이다과거 대학시절에는 미진과 함께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래를 부르며 맑고 순수한 사랑을 나눴지만미진이 떠나고 한국에 혼자 남게 된 그는 더 이상 노래패에서 노래를 부르던 예전의 소은이 아니었다그는 현재 자신의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아 두려워했고 아파했다마치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져 나온 꼬리칸 같다는 그의 말처럼지금의 소은에게 과거의 소은은 완전히 분리된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그렇게 과거로부터 동떨어진 채 지금을 살아가는 이방인 소은은 낯선 땅 페테르부르크에서 율랴의 손을 잡으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소은의 손을 잡은 폴란드인 율랴는 삶의 많은 시간을 넌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아버지의 말에 휩싸여 살아왔다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그 말은 율랴 스스로 본인을 부정하고 무시하며 살아가도록 부추겨왔다결국 율랴 또한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채 삶을 살아가는 이방인이었던 것이다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은 자신을 잠시 사랑해준 러시아 남자에게 마음을 주고 페테르부르크로 넘어오게 된 이방인 율랴는그와 헤어진 후 미진을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이방인에서 벗어나게 된다.

미진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 이방인이다미진은 소은이 한창 마음의 병을 앓을 때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었고율랴가 외로워할 때 함께 지내며 친구가 되어주었다소은과 율랴 모두 미진에게서 보답할 수 없는 마음을 받았지만미진이 갑작스럽게 객사하는 바람에 그 마음을 돌려줄 수 없었다소은과 율랴는 그러한 미진의 죽음에 대해 함께 얘기하며 그녀를 기억하고 둘의 관계를 만들어간다.

이렇듯 이방인의 얼굴을 한 세 사람의 단면단면들은 어느 여름의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그 중 어떤 것은 이미 끝난 이야기이며또 어떤 것은 이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사랑을 기억하는 것에 대하여

이 소설은 한창의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이미 끝난 사랑이미 끝난 관계그리고 이미 끝나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많은 사랑 노래와 문학들은 한창의 뜨거운 사랑을 이야기하다가 끝나갈 때 즈음,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깔때기로 모여든다그러나 모두가그 결말은 거짓말임을 안다결국 뜨거웠던 사랑은 식을 것이고관계는 소홀해질 것이며이야기 속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모두가 행복한 결말은 큰 이야기의 시작부분일 뿐이다.

『먼 곳에서 온 노래』는 그 관계의 끝이 이야기의 시작점이다독자는 소은과 미진의 끝난 사랑을 소설의 첫 페이지에서 목격하게 되면서소은과 함께 미진을 추억하고 기억하게 된다마치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가다가 손잡고 노래하는 미진과 소은을 구경했던 것만 같은한밤중의 대학가 로터리에서 울고 있는 미진과 그 옆의 소은을 스쳐봤던 것만 같은 기억을 어렴풋이 떠오르게 한다끝내 미진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소은과 율랴와 함께 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그래도 생전에 했던 미진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위로 받고 잠시나마 행복했다고 말하게 한다비록 그게 소설을 읽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해도 말이다.

 

그런 미진을 기억하며그리고 미진과 소은의 사랑을 기억하며한창의 사랑일 때 미진이 했던 말을 적으며 글을 줄인다.

 

네가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해도적어도 네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지만소은아.”


김북극곰, www.rainbowbookm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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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간질간질
강병융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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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책 없이 밝은 퀴어 소설을 만난 것이 얼마만인지. 파스텔 톤의 표지와 다음이 도무지 걱정 되지 않는 이야기의 흐름이 어울려 귀엽고 풋풋하고 간질간질하고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런 수식어를 적으면서도, 나는 의심 많고 불행에 찌든 인간이어서 자꾸만 불안했다. 아이는 정말로 괜찮은 걸까? 구멍 난 세계 안에서.

 

   야구 결승전을 치르는 마지막 순간, 주인인공 ‘아이’의 ‘왼손 가운뎃손가락 끝이 결정적으로, 강력하게, 견딜 수 없게, 짜증스럽고도 몹시 어이없게, 마구’(19쪽) 간지럽다. 간지러움 때문에 잘못 던진 볼은 힘없이 날아가지만, 타자가 그 볼을 쳐내지 못해 아이의 팀이 우승한다. 아이는 ‘최고의 선수’라는 칭호도 얻는다. 아이는 기쁜 마음으로 우승 이후의 즐거운 변화를 바란다. 하지만 나이 많은 남자 형제 ‘브라더’와 브라더와 결혼한 ‘시스터’의 관계는 점점 묘하고 의미심장한 기류를 타고, 너무너무 보고 싶은 ‘백이’는 아이에게 여전히 냉랭하다.

   아이가 바라던 변화는 왼손 가운뎃손가락에 눈이 생긴 뒤로 찾아온다. 눈이 생긴 날, 아이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학교에 나가지 않는다. 등산을 하며 세 번째 눈에 익숙해지고, 친구 ‘WILL’과 함께 대화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 밤, 브라더와 시스터, WILL, ‘감독님’에게 자신의 눈을 공개한다. 이후 용기를 얻게 된 아이는 구청에서 주최하는 우승 축하 행사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세상에 공개한다. 세 번째 눈은 핑거 아이Finger Eye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아이는 강인하고 귀엽고 무해한 이미지로 많은 방송에 출연한다. ‘가수 겸 배우인 소녀’와 기분 좋은 감정을 나누기도 하고, ‘최고의 엠시’와 ‘디자이너&엔터테이너’가 함께 만든 휴먼 예능 ‘세상 밖으로’의 파일럿 방송에 고정 출연자가 될 것을 제안 받는다. ‘세상 밖으로’에서 아이는 항문에 세 번째 눈이 달린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방송이 나간 이후 세 번째 눈이 달린 사람들의 ‘아이밍아웃eyeming out’이 이어지고, 세상은 점점 사랑으로 가득 찬다.

 

   『손가락이 간질간질』은 많은 설정들을 가지고 있다. 그 설정들은 비교적 직접적으로 현실 세계를 나타낸다. 아이의 성장 과정은 우리의 성장 과정에 대한 비유라 볼 수 있으며, 손가락에 눈이 달렸다는 설정은 ‘다름’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아이가 설명하듯 ‘부르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는 호칭’인 ‘브라더’와 ‘시스터’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아이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는 상황, 내지는 아이의 생물학적 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야구에 적합하지 않다고 억압받아온 상황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아이가 사랑하는 대상인 백이를 묘사할 때 이분법에 기초한 성별을 나타내지 않는 것, 아이가 백이를 불러내었을 때 백이가 ‘다름’을 걱정하는 것 등을 통해서 아이의 성적 지향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러한 수고와 노력을 통해 조립된 너무나도 밝고 경쾌한 소설. 그러나 나는 소설에 드러난 논리의 결여와 시혜적 시선 때문에 읽는 내내 불편했다.

 

   언제부턴가 나이가 많은 남자 형제를 ‘브라더’라고 불렀어요. 커서도 그게 고쳐지지 않아 그냥 브라더라고 부르고 있어요. 나는 그게 편해요. 부르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는 그런 호칭이 좋아요. (23쪽)

 

   ‘시스터’와 ‘브라더’는 그 단어를 말하는 주체의 성을 지정하지 않기에 ‘언니/오빠/누나/형’보다는 성중립에 더욱 가까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단어들은 대상의 성을 지정하고 있으므로 ‘언니/오빠/누나/형’의 완전한 대체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언어 안에 나이에 따른 위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과 아이가 ‘브라더’와 ‘시스터’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연결되면서, 아이의 심리적·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 ‘미성숙한’으로 표현되는 – 성격을 오히려 부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브라더와 시스터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아이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낮추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그들의 이름을 불렀었더라면, 하는 비참한 심정으로 아이가 자신의 가족들을 ‘시스터’와 ‘브라더’라 부르는 장면들을 읽었다.

 

   인기 절정의 순간에 커밍아웃을 하는 스타들의 심리도 알 것 같았어요. 나를 항상 온전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겠죠.

 

   인기는 용기를 만들고, 용기는 삶의 변화를 만들어요. (140쪽)

 

   용기가 없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끌어 세상과 다시 만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했어요. (177쪽.)

 

   이 좁은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간들이 산다. 손가락에 눈이 있는 인간도 살고, 물론 그렇지 않은 인간은 더 많이 살고 …(중략)… 쥐의 얼굴을 한 혹은 사람의 얼굴을 한 쥐가 대통령인 나라가 극동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 온전한 모습으로 밖으로, 집 밖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꺼린다. 대부분의 경우 숨어서 살고 있다. 아직은 용기가 넉넉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등장해도, 혹 그렇지 않더라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22-223쪽.)

 

   세상에 나오지 않는 행위는 비겁하고 용기 없는 행위일 뿐인가? 그렇게 함으로써 느끼는 괴로움은 오로지 개인만의 책임인가?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과연 용기의 근원이 될 수 있을까? 그런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인가?

 

   이밖에도 아이와 관계 맺고 있는 인물들이 다만 ‘가족’, ‘친구’, ‘연인’, ‘지나가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 등의 역할만을 수행하며 소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 등이 아쉬웠다.

 

   하지만 내가 끝까지 이 이야기를 읽어나갔던 이유는 기존 대부분의 퀴어 소설에서 나타난 암울한 결말을 피해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버려지지 않고, 자신의 꿈을 스스로 바꿔 가는 소설 속 퀴어의 존재가 희박한 문학 세계 안에서, 『손가락이 간질간질』의 세계 속 아이의 밝음이란 긍정적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신난www.rainbowbookm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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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터머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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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출간되는 문학작품 중 장편소설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생각을 했다. 기분탓이기엔 주변에서도 비슷한 말이 오갔다. 그러던 차에 새롭게 등장한 <커스터머>라는 흡인력 있는 작품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 있는지? 비교적 최근에 알게된 개념이라 그런지 소설을 읽으며 강한 연관성을 느꼈다. 환상소설이나 판타지와는 또 다른 문학 사조를 일컫는데, 대체로 환상성과 허구성을 기반으로 한 작품에서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커스터머는 단순한 가상세계를 옮겨놓기만 한 작품이 아니다. 작가의 상상력은 현실에서 자라난 것이고, 작품 속 인물들은 여전히 현실의 인간상을 드러낸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커스터머'에 나오는 '커스텀'은 유전자 기술이 발달되어 자신의 신체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세계관에 존재하는 개념이다. 선천적인 돌연변이와 달리 후천적인 자신의 의지와 정체성을 갖고 신체 변화를 선택하는 세계엔 그것을 반대하는 '커스터비아'도 존재한다. 마치 '퀴어포비아'와 같은 맥락처럼 읽히는데, 소설을 읽다보면 그 생각은 더 확실해진다. '중성', '무성' 등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정체성이 등장하는 것도 이 작품의 퀴어코드라고 말할 수도 있다.

 

 <커스터머>는 젠더, 퀴어 관련 문제 외에도 인종, 종교, 장애 등 여러 인권담론을 읽을 수 있는 성장소설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그것을 청소년 소설처럼 발랄하고 풋풋한 호흡으로 이어나간다. 소설 속 어떤 개념이 현실의 어떤 점을 말하고 있는지 일일히 짝지어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시선이 느껴진다. '웜스'라는 최하계층 지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태양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열 일곱살 주인공 '수니'의 이야기와 태도에서, 독자는 작가의 어떤 제언을 직관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안의 말을 듣고 다큐에서 봤던 중성인들을 떠올렸다. 여러 사람이 인터뷰를 했는데 그중 한 사람은 중성인이라는 말을 거부했다.

"중성인이라는 단어는 저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해요. 너무 단순하죠." - 100p

 

'사람들은 점점 더 도를 지나치고 있습니다. 멀쩡한 팔, 다리를 자르고 그 자리를 해괴한 것으로 채우는 걸 멋지다고 생각하죠. (...) 사람의 몸은 신이 주신 선물입니다. 커스텀은 인류를 불행하게....'

나는 망설이다가 서명을 하지 않고 패드를 돌려주었다. - 180p

 

 주인공 '수니'는 그리 순탄치 않은 환경에서도 포기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자신을 찾아나간다. '희망'과 '연대'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수니는 더이상 막연한 낙관론자가 아닌, 긴 여정을 통해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비춰졌다. 안이나 다른 학우들을 만나는 과정에선 자신과 다른 인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떤 방법론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주변을 돌아봤다. 하늘에는 태양이 있고, 바다는 물결치고, 해변은 모래로 덮여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나는 많은 것을 사랑한다. 이 많은 사랑은 대체 어디에서 올까? - 349p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강점을 꼽자면 이거다. <커스터머>는 재밌다.




다홍www.rainbowbookm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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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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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했다. 나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더 쉽다.

  ‘소설 <딸에 대하여>는 생의 변두리로 밀려난 여성들의 이야기다. 동성애자 딸을, 죽어가는 노인을,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 애쓰는 어머니의 성장 소설이다. 이해의 바깥에 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혹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소설은 그것을 질문한다. 그 온도가 길게 따뜻하다.’

 

  하지만 추석은 힘겹다. 가족이란 단어에서 염증 고통 권태를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겹다. 그래서 거짓말하지 않기로 한다. 추석이니까 솔직해지자. 나는 이 소설을 추천할 마음이 별로 없다. 퀴어 문학의 외양을 하고 있는 이 소설이 사실 퀴어 독자들에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합은 위험한 단어다. 그럼에도 일부러 그 말을 썼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시달렸다. 특정 서사에 부적합 판정을 내릴 권리가 우리에게도 있다.

 

  소설의 중심엔 세 명의 여성 인물이 있다. 동성 연인과 7년을 함께한 ‘그린,’ 요양원에서 쓸쓸히 죽어가고 있는 노인 ‘젠.’ 그리고 그린의 어머니이자 젠을 돌보는 복지사 ‘나’가 화자로 등장한다. ‘나’는 성소수자와 노인이라는 타자를 관찰하고 평가하면서 ‘이해’하려 애쓴다. 이것은 퀴어 독자인 나를 불편하게 한다. 먼저 ‘나’와 딸의 동성 커플 사이의 이야기를 보자.

 

  그린과 그린의 파트너 레인은 경제적 문제 때문에 급히 ‘나’의 집으로 들어온다. ‘나’는 딸의 동성 연인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 심정은 ‘이해’할만하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이 소설의 서두부터 쏟아진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데 쉽게 되지 않는다. 그 고민은 소설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내가 너희를 이해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까. 때로 기적은 끔찍한 모습으로 오기도 하니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오긴 오겠지. (중략) 그러나 그런 기적이 오기도 전에 내가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지 않니. 그건 거짓말이니까. 내 딸을 포기하는 거니까. 떳떳하고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내 딸의 삶을 내가 놓아 버리는 거니까.” (195쪽)

 

  결말 부분이다. 소설은 너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대신, 이해하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다행스러운 행보일까. 물론 이해는 어렵다. 수용은 더 어렵다. 이런 태도는 주로 받아들이는 자의 권력에서 나온다. 말하자면 그린과 레인은 ‘나’의 ‘집’에 들어온 (일종의) 침입자다. 집이라는 가장 내밀한 공간에 들어온 타자들을 내쫓지 않고 이해하려 애쓰는 ‘나’의 입장은, 성소수자를 ‘받아들이겠다’는 일부의 시혜적인 시선을 그대로 담고 있다. 딸의 “떳떳하고 평범”한 삶을 기원한다는 ‘엄마의 마음’은, 퀴어 독자인 나를 비껴간다. 그 말은 내가 아니라, 나를 낯설게 여기는 사람들과 공명한다.

 

  할 말이 많지만 줄이기로 한다. 다음으로 젠의 경우를 보자. 젠은 ‘나’가 요양원에서 돌보는 노인이다. 젊었을 때는 한국계 외국인들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지금은 외로이 죽어가고 있다. 화려한 젊은 시절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현재의 젠은 다리 사이로 배설물을 뚝뚝 흘리며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 젠은 죽음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화자인 ‘나’는 그런 젠을 연민과 공포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요양원에서까지 쫓겨난 젠을 자신의 집으로 들인다. 이때 ‘나’의 집은 약자와 소수자를 수용하는 ‘품 넓은’ 장소다. 이러한 풍경은 많은 독자들을 감동케 할 것이다. 반면 어떤 독자들은 그 집이 품고 있는 동정의 온기가 불편하다.

 

  필립 로스가 노년기일 때 노년기에 대해 쓴 흥미로운 소설이 있다. <죽어가는 짐승>에 이런 말이 나온다. "늙지 않았을 때 노인에 관해 이해하는 유일한 것은 그 사람들한테 그들의 시간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는 것뿐이야. 그러나 그것만 이해한다면 그 사람들을 그들의 시간 속에 얼어붙게 만들게 되고, 그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나 마찬가지야."(50쪽) 이처럼 노인을 시간의 낙인에 가두고 그들을 연민하는 시각 역시, 자신이 ‘그들’과 다르다는 안전한 지위로부터 온다. 당사자가 아니라면(때로 당사자들조차) 여기서 자유롭기란 힘들다. 그렇기에 그 힘든 일을 해보려는 더 많은 소설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고민했다. 이 책을 읽은 내 주변의 퀴어 독자들 사이에서도 평이 갈렸다. 누군가는 감동하며 울었고 누군가는 불편해했다. 확실히 나쁜 말은 지친다. 솔직하게 쓰고 나면 죄지은 기분이 된다. 그렇게만 배웠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말을 한다는 것은 총을 쏜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나혜석은 “우리가 비판받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역사를 채우겠는가.”라고도 했다. 이 말들을 변명처럼 늘어놓고, 오늘도 말을 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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