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두가 이방인의 얼굴이다.

소은과 율랴그리고 미진소설 속 세 사람은 모두 이방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소은은 과거의 자신과 분리된 채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이다과거 대학시절에는 미진과 함께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래를 부르며 맑고 순수한 사랑을 나눴지만미진이 떠나고 한국에 혼자 남게 된 그는 더 이상 노래패에서 노래를 부르던 예전의 소은이 아니었다그는 현재 자신의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아 두려워했고 아파했다마치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져 나온 꼬리칸 같다는 그의 말처럼지금의 소은에게 과거의 소은은 완전히 분리된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그렇게 과거로부터 동떨어진 채 지금을 살아가는 이방인 소은은 낯선 땅 페테르부르크에서 율랴의 손을 잡으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소은의 손을 잡은 폴란드인 율랴는 삶의 많은 시간을 넌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아버지의 말에 휩싸여 살아왔다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그 말은 율랴 스스로 본인을 부정하고 무시하며 살아가도록 부추겨왔다결국 율랴 또한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채 삶을 살아가는 이방인이었던 것이다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은 자신을 잠시 사랑해준 러시아 남자에게 마음을 주고 페테르부르크로 넘어오게 된 이방인 율랴는그와 헤어진 후 미진을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이방인에서 벗어나게 된다.

미진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 이방인이다미진은 소은이 한창 마음의 병을 앓을 때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었고율랴가 외로워할 때 함께 지내며 친구가 되어주었다소은과 율랴 모두 미진에게서 보답할 수 없는 마음을 받았지만미진이 갑작스럽게 객사하는 바람에 그 마음을 돌려줄 수 없었다소은과 율랴는 그러한 미진의 죽음에 대해 함께 얘기하며 그녀를 기억하고 둘의 관계를 만들어간다.

이렇듯 이방인의 얼굴을 한 세 사람의 단면단면들은 어느 여름의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그 중 어떤 것은 이미 끝난 이야기이며또 어떤 것은 이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사랑을 기억하는 것에 대하여

이 소설은 한창의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이미 끝난 사랑이미 끝난 관계그리고 이미 끝나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많은 사랑 노래와 문학들은 한창의 뜨거운 사랑을 이야기하다가 끝나갈 때 즈음,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깔때기로 모여든다그러나 모두가그 결말은 거짓말임을 안다결국 뜨거웠던 사랑은 식을 것이고관계는 소홀해질 것이며이야기 속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모두가 행복한 결말은 큰 이야기의 시작부분일 뿐이다.

『먼 곳에서 온 노래』는 그 관계의 끝이 이야기의 시작점이다독자는 소은과 미진의 끝난 사랑을 소설의 첫 페이지에서 목격하게 되면서소은과 함께 미진을 추억하고 기억하게 된다마치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가다가 손잡고 노래하는 미진과 소은을 구경했던 것만 같은한밤중의 대학가 로터리에서 울고 있는 미진과 그 옆의 소은을 스쳐봤던 것만 같은 기억을 어렴풋이 떠오르게 한다끝내 미진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소은과 율랴와 함께 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그래도 생전에 했던 미진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위로 받고 잠시나마 행복했다고 말하게 한다비록 그게 소설을 읽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해도 말이다.

 

그런 미진을 기억하며그리고 미진과 소은의 사랑을 기억하며한창의 사랑일 때 미진이 했던 말을 적으며 글을 줄인다.

 

네가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해도적어도 네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지만소은아.”


김북극곰, www.rainbowbookmark.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