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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ㅣ 버지니아 울프 전집 9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로 시작하자면
성경의 신은 최초의 인간으로 남성 아담을 창조하고 그의 갈비뼈를 가지고 여성 이브를 창조했다고 한다. 아담과 이브는 남성과 여성이었는데,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신뿐이었다고 한다. 사악한 뱀의 유혹으로 먼저 선악과를 먹은 이브는 연인인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권했고, 선악과를 먹고 아담과 이브가 눈이 밝아져 그들이 벗고 있는 것을 알고 나뭇잎에 몸을 숨기자, 신은 그들이 약속을 어겼다며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고 노동하여 살도록, 출산의 고통을 갖도록 에덴 동산에서 추방했다고 한다.
는 이야기가 있지만, 성별은 신이 창조해서 정해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섹스는 젠더만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올랜도의 이야기만큼이나 픽션이다. 즉 사람의 아이는 남성과 여성 중 하나로 태어나, 태어났을 때 그대로의 성별로 평생을 살아간다거나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사실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거짓말이다.
올랜도의 일생, 왜 혹은 어떻게는 존재하지 않는
여왕의 사촌동생이라는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난 한 아이는 남성임을 확인받고 올랜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이야기는 올랜도라는 인물의 전기로서, 올랜도의 서술자는 스스로 '우리' '전기작가'라고 말한다. 복수의 서술자가 대화함으로써 중심을 벗어나는 듯한 서술, 버지니아 울프 특유의 단정적이지 않고 불분명한 진술[1]은 일반적인 전기작가에게서 발견된다면 결함에 가까울 특징이겠지만, 우리의 주인공 올랜도의 전기를 쓰는 작가에게는 필연적이어야 할는지 모른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세태, 그에 따른 몇몇 가치의 변화를 이 서술자는 인지하고 있고, 또한 올랜도와 그가 사랑하게 된 여인 사샤에 대해서도 아직은 성별이 분명한 남성과 여성의 성별이 겉으로 모호해 보임을 가장 진실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다. 왜, 혹은 어떻게 올랜도의 일생이 앞으로와 같이 진행되었는지는 말하지 않는 이 전기작가들은 단지 어느 순간에 튀어나와 독자를 대신해 놀라움을 표하거나 올랜도가 맞이한 사회의 단면을 비판한다.
올랜도는 매력적인 남성으로,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그의 결혼이 얼마 남지 않은 때에 러시아 대사의 가족으로 왕궁을 방문한 여인 사샤를 만난 때이다. 올랜도는 사샤와 함께 야반도주할 계획을 세우지만 약속한 시각에 사샤는 나타나지 않고 그녀는 러시아 대공의 애인이었다고 암시된다. 자괴감에 빠진 올랜도는 때마침 발생한 물난리에 휩쓸리고 만다.
실연한 이후 홍수에 휩쓸리고 7일만에 깨어난 올랜도는 이전과 같지 않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빠져, 닉 그린이라는 시인을 초대하여 여러 문인의 이야기를 듣는 데까지 이른다. 그러나 닉은 올랜도의 시를 폄하하는가 하면, 그의 호의를 풍자하는 시를 쓰고, 이 출판물이 성공하여 올랜도의 귀에까지 들어가 올랜도는 이제 문학에 대한 열정도 접는다. 그리고 조상들이 집을 돌보았듯 그 자신은 가구를 들여 집을 꾸미고 주위 귀족들을 초대하여 연일 파티를 연다. 이렇게 가세가 기울고 주위의 평판은 좋아졌을 무렵, 올랜도 앞에 한 대공부인이 나타난다. 올랜도는 그녀를 통해 잊고 있던 사랑, 아니 사실은 탐욕에 가까운 것에 붙들리지만 스스로 이를 벗어나기 위해 왕에게 콘스탄티노플 특사를 자청한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