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안의 낯선 자들 버티고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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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따금 어떤 애정은 사람을 죽게 하고, 미치게 만든다. 혹은 어딘가에서는, 역으로 죽음과 광기가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일도 일어난다. 이 같은 복잡한 일들은 손쉽게 인간의 윤리 의식에 도전을 선포한다. 혼재(混在)와 혼돈(混沌)에 함께 들어간 섞일 혼 자는 의식과 의식이 간접하지 못하는 것 사이의 전쟁을 상징하는 것 같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에서 내가 들여다보고 싶은 부분은 감정과 감정 간의 연결이다. 늘 내가 그래왔던 것처럼.

 반갑게도 하이스미스는 아주 치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나에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주었다. 그 어떤 사건보다도, 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언제나 인물이 느끼는 감정과 그가 하는 생각이었으며 따라서 변덕과 혼란은 더 이상 헤아릴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자 한 사람처럼 보이는(지킬 앤 하이드를 연상할 수도 있다) 주인공들, 가이와 브루노는 그들이 번복했던 말처럼 “사람들, 감정들, 모든 것이 이중적이라는 거죠. 개개인의 마음속에 두 사람이 있는 거죠. 보이지 않는 당신의 일부처럼 당신과 정반대인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있고, 숨어서 기다리고 있”(323p)는 이들이었다. 이 소설의 사건인 ‘교차살인’은 이들을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소재다.

 양극단이라는 단어는 아주 재미있는 단어로, 앞의 인용문을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양극단은 단어 그 자체로 하나를 말한다. 조금 다른 A와 B가 아니고, 1에 2를 더한 3도 아니며, 끝과 끝에 있는 것이다. ‘끝’이 다른 방향으로 두 번 되풀이되면 그것은 양극단이라는 한 단어로 묶인다. 어느 쪽도 ‘시작’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에게 붙여주기에는 더없이 알맞은 표현이다.

 가이와 브루노는 양극단의 인물들로, 끝과 끝에서 무한히 잡아끌고 당겨지기를 번갈아 해야 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팽팽한 끈이 끊어지면 남은 쪽이 힘없이 튕겨져나가는 것과 같이, 브루노의 (예정된) 죽음이라는 사건은, 양극단으로 존재할 때 온전한 균형을 무너뜨린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은 그 균형이 무너지기까지의 쉴 새 없는 긴장감을 이야기 내내 데려가는 작품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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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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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오랜 시간 애써 모른 척해왔던 것을 인정하게 되는, 인정해야만 하는 그런 순간. 보지 않으려 할수록, 이해의 기회를 놓쳐버릴수록, 기억은 짙어지고 잃어버린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삶의 시야를 확보할 수 없으니까.

  앤드루 포터 단편 <코네티컷>은 그 갑작스러운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 열세 살 소년 ‘스티븐’은 코네티컷 동부 외곽에서 그의 엄마,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코네티컷 연안의 한 섬에서 홀로 요양 중이며, 세 가족은 가끔 그를 만나기 위해 페리를 타고 섬으로 향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스티븐은 자신의 삶에 아버지가 부재하는 것에 익숙해가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에 생겨난 병은 왠지 계속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어쩌면 아버지에게 헌신적인 어머니가 가장 먼저 그에 대한 희망을 버렸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벤틀리 씨 부부는 아버지가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과 막역한 사이였는데, 그 후 이웃에 사는 다른 가족들처럼 우리를 모른 체하지는 않았어도, 지난해에는 우리 집에 발길을 뚝 끊다시피 했다. 특히 벤틀리 부인은 서서히 어머니의 삶에서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부인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부인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태도에서 우정 이상의 내밀한 친밀감이 느껴졌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 둘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다년 생 식물들이 자라는 정원을 행복하게 거닐었고, (...) ―두 명의 젊은 연인처럼― 우리 집 뒤쪽 테라스 언저리에서 서로를 껴안았다. _ p.259-260

 

  그렇게 삶의 구멍을 제 나름대로 메워가던 스티븐은 어느 날 자신이 모르던 엄마를 훔쳐보게 된다. 소년이었던 아버지가 소녀였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어느 무도회에서 커플들이 서로를 안고 있던 것처럼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어깨와 허리에 서슴없이 손을 올리는 자신의 엄마와 이웃 벤틀리 부인. 스티븐은 ‘소름끼치고 타락한’, ‘눈살이 찌푸려지는’ 두 사람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동안 자신이 보았던 벤틀리 부인이, 그리고 자신의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계속 생각해본다. 스티븐의 머릿속은 많은 추측과 억측으로 뒤덮인다.

 

나는 집 뒤쪽 테라스에서 어머니와 벤틀리 부인이 나눈 포옹―여러 차례에 걸친 열정적인 포옹―이 위로의 마음에서 비롯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상실을 경함한 사람을 위로하는 따뜻한 포옹이 아니었다. (...) 그것은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포옹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포옹이었다. _ p.262-263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스티븐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로 압축된다.

  어머니와 벤틀리 부인은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고.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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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삶 -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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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열여섯살의 주인공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동물적이고 잔혹한 서사를 다루고 있다. 모두 저자의 악몽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에는 십대가 등장하지만 십대를 위한 책은 아니다. 약육강식의 세계관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반영된 아이들 사이의 폭력과 불신이 간결하게 때로는 숨가쁘게 상황을 진행한다. 그리고 리뷰의 주제인 퀴어코딩은 굉장히 적다. 직접적인 언급도 없었으며 당사자성도 없다. 그래서 퀴어문학을 읽는다기보단, 기존에 있는 소설을 퀴어하게 읽는다는 느낌으로 읽는 것이 맞는 것 같다.

 

76페이지

 

 그럼에도 이 책은 퀴어문학이다. 수는 적지만 적나라하다면 적나라한 문장들이 책 속에 박혀있었다. 이 책이 퀴어문학리스트에 오른 것도 나의 제보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학교에 위장 전입한 열여섯 살 강이가 이방인의 삶을 벗어나 아람과 소영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가출을 감행하여 함께 사는 장면 중 소영과 강이 사이의 어떤 강렬한 '암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옷을 벗고 나체가 되어 서로를 끌어안고, 젖꼭지를 핥고 다리를 벌린다는 표현이 그대로 책에 들어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모호한 이미지였다. 또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이 둘이 그렇다고 각별한 사이도 아니었거니와 가출이 끝난 직후 둘의 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퀴어 서사라고 읽을 수 있는지는 아직 물음표라고 답하고 싶다.

 

병신이 되지 않으려다 상병신이 되었다. 나는 최악의 병신을 상상했다. 그것을 바라기 시작했다 -124p

 

 작품에 유난히 병신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였다. 소설 속 주인공인 강이는 병신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아이였고, 그럴수록 더 비참해져갔다. 병신이라는 워딩이 불편해지기 전에 첫만남이 이루어진 소설이라 거부감은 없었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폭력을 다루고 있다. 아이들의 거친 폭력 속에서 투어鬪漁처럼 살아가고 성장한, 혹은 성장에 실패한 강이의 이야기이다. 우린 여기서 소수자성을 찾아볼 수 있을까?

 

하찮고 연약한 것들을 온몸으로 보듬는 아람, 친구조차 마음대로 취하고 버릴 수 있었던 소영

 

 강이의 비행을 함께한 두 친구는 서로 많이 달랐다. 그 사이에서 강이는 마치 강아지처럼 둘을 따랐다. 그러나 그들이 분열되는 양상도 둘의 성격만큼이나 달랐다. 남자에게 맞아도 묵묵히 화장으로 상처를 가리고 길고양이를 주워오는 아람은 강이보다 하찮은 것들을 찾아와 보듬기 시작했고, 학교로 돌아온 소영은 그런 아람과 사이가 나빠지다가 무자비한 폭군이 되어 강이를 점점 '병신'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납득될만한 정보는 독자와 강이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학교라는 거대한 정글 속에서 외로운 싸움을 감행할 뿐이었다.

 

소영과 강이의 관계

 

 다시 퀴어로 돌아와서 둘의 동성애적 관계를 살폈다. 가출생활이 끝난 뒤 소영과 아람의 사이가 나빠지자, 아이들은 소영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강이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살펴보자면, 강이가 소영에게라기보단 소영이 강이에게 마음이 있었을 것 같다는 감상이 전체적으로 생겼다.

 

'소녀'라는 이미지

 

 이 책의 주요 인물들은 열여섯살 소녀들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불행을 안고 있고, 저마다의 잔인함과 비열함을 드러내며 살고 있다. 세상에서 소녀라는 단어가 가진 이미지는 어떤가. 단정한 교복을 입고, 시시하지만 예쁜것들에 대해 대화를 하는 소녀들은 이 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의 소녀들은 표지에 그려진 여자의 손처럼 주먹을 꾹 쥐고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퀴어문학으로 추천하지는 않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읽을만한 책이라고 꾸준히 소개해왔다. 다소 자극적인 책이지만 그만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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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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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맞닿았다. 테레즈는 상자를 열다가 고개를 들었고, 때마침 여인도 고개를 돌리는 순간 두 시선이 부딪쳤다. 여인은 늘씬한 몸매에 금발이었으며 넉넉한 모피 코트를 걸친 모습이 우아했다. 한 손을 허리에 대고 있어서 모피 코트 앞섶이 벌어졌다. 눈동자는 회색으로 무채색이나 불꽃이 일 듯 강렬했다. -캐롤, 55p

 

 범죄 소설의 대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자전적 로맨스 소설 캐롤. 동명의 영화가 제작이 되어 원작소설로 국내에 알려진 책이기도 하다. 무대 디자이너를 꿈꾸는 백화점 판매원 테레즈와 딸의 장난감을 사러 온 캐롤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을 다룬 이 책은 필자에게 최근 화재가 되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를 떠오르게 했다.

 

 아가씨에 나오는 히데코와 숙희, 캐롤 속 테레즈와 캐롤. 이 두 쌍의 공통점이 바로 ‘정체성의 혼란’을 완전히 배재시킨 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동성이라는 사회에서 보편적이지 않은 대상을 사랑하며 많은 동성애자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녀들은 겪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건너뛴 채 이가 사랑이라고 여지 없이 결정짓기까지 했다. 특히 처음 만나자마자 이가 운명임을 느낀 테레즈와 캐롤의 모습은 그들의 외면과 상관없이_19살 소녀와 딸을 둔 이혼녀_동성간의 사랑 역시 평범한 사랑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비춰주는 것 같아 인상 깊었다.

 

 그런데 내가 언급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어. 그건 남남, 여여 동성 커플의 관계가 절대적이며 완벽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 -캐롤, 405p

 

 그렇기에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배경은 1950년대로 동성연애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좋지 않을 때이다. 더군다나 아직 남편과의 이혼소송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던 캐롤에게는 테레즈와의 사랑이 더욱 큰 타격이 될 수 있었고, 결국 그녀는 소중한 딸에 대한 양육권을 빼앗긴다. 둘은 서부로 도망같은 여행을 떠나고, 캐롤의 남편이 그들을 미행하기 위해 보낸 탐정과 다툼을 벌이면서까지 그들의 ‘사랑’을 선포하듯 보여준다. 그 와중에도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지만_그녀들을 이해할 수 없던 사회와 그들의 싸움이라 보아도 무방했다_ 결국 캐롤과 테레즈는 자신들이 바란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된다. 당시 퀴어소설로서는 흔치 않은 행복한 엔딩이었다.

 

 그럼에도 캐롤은 그 누구도 아닌 여전히 캐롤이며, 앞으로도 캐롤일 것이다. 두 사람은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집, 천 개의 외국 땅에서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천국이든 지옥이든 같이 갈 것이다. (중략) 순간 캐롤이 손을 번쩍 들더니 힘차게 흔들었다. 테레즈는 캐롤의 저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테레즈는 캐롤을 향해 걸어갔다. -캐롤, 466p

 

  가장 의미있었던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이다. 소중한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신의 사랑(테레즈)를 숨기다시피했던 캐롤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테레즈에게 손을 흔든다. 이는 캐롤이 사회, 혹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진정한 사랑을 찾은 것과도 같다.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당하게 손을 흔들 수 있을까. 꼭 캐롤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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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버지니아 울프 전집 9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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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로 시작하자면

 

 성경의 신은 최초의 인간으로 남성 아담을 창조하고 그의 갈비뼈를 가지고 여성 이브를 창조했다고 한다. 아담과 이브는 남성과 여성이었는데,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신뿐이었다고 한다. 사악한 뱀의 유혹으로 먼저 선악과를 먹은 이브는 연인인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권했고, 선악과를 먹고 아담과 이브가 눈이 밝아져 그들이 벗고 있는 것을 알고 나뭇잎에 몸을 숨기자, 신은 그들이 약속을 어겼다며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고 노동하여 살도록, 출산의 고통을 갖도록 에덴 동산에서 추방했다고 한다.

 

 는 이야기가 있지만, 성별은 신이 창조해서 정해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섹스는 젠더만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올랜도의 이야기만큼이나 픽션이다. 즉 사람의 아이는 남성과 여성 중 하나로 태어나, 태어났을 때 그대로의 성별로 평생을 살아간다거나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사실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거짓말이다.

 

 

올랜도의 일생, 왜 혹은 어떻게는 존재하지 않는

 

 여왕의 사촌동생이라는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난 한 아이는 남성임을 확인받고 올랜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이야기는 올랜도라는 인물의 전기로서, 올랜도의 서술자는 스스로 '우리' '전기작가'라고 말한다. 복수의 서술자가 대화함으로써 중심을 벗어나는 듯한 서술, 버지니아 울프 특유의 단정적이지 않고 불분명한 진술[1]은 일반적인 전기작가에게서 발견된다면 결함에 가까울 특징이겠지만, 우리의 주인공 올랜도의 전기를 쓰는 작가에게는 필연적이어야 할는지 모른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세태, 그에 따른 몇몇 가치의 변화를 이 서술자는 인지하고 있고, 또한 올랜도와 그가 사랑하게 된 여인 사샤에 대해서도 아직은 성별이 분명한 남성과 여성의 성별이 겉으로 모호해 보임을 가장 진실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다. 왜, 혹은 어떻게 올랜도의 일생이 앞으로와 같이 진행되었는지는 말하지 않는 이 전기작가들은 단지 어느 순간에 튀어나와 독자를 대신해 놀라움을 표하거나 올랜도가 맞이한 사회의 단면을 비판한다.

 

 

 올랜도는 매력적인 남성으로,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그의 결혼이 얼마 남지 않은 때에 러시아 대사의 가족으로 왕궁을 방문한 여인 사샤를 만난 때이다. 올랜도는 사샤와 함께 야반도주할 계획을 세우지만 약속한 시각에 사샤는 나타나지 않고 그녀는 러시아 대공의 애인이었다고 암시된다. 자괴감에 빠진 올랜도는 때마침 발생한 물난리에 휩쓸리고 만다.

 

 실연한 이후 홍수에 휩쓸리고 7일만에 깨어난 올랜도는 이전과 같지 않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빠져, 닉 그린이라는 시인을 초대하여 여러 문인의 이야기를 듣는 데까지 이른다. 그러나 닉은 올랜도의 시를 폄하하는가 하면, 그의 호의를 풍자하는 시를 쓰고, 이 출판물이 성공하여 올랜도의 귀에까지 들어가 올랜도는 이제 문학에 대한 열정도 접는다. 그리고 조상들이 집을 돌보았듯 그 자신은 가구를 들여 집을 꾸미고 주위 귀족들을 초대하여 연일 파티를 연다. 이렇게 가세가 기울고 주위의 평판은 좋아졌을 무렵, 올랜도 앞에 한 대공부인이 나타난다. 올랜도는 그녀를 통해 잊고 있던 사랑, 아니 사실은 탐욕에 가까운 것에 붙들리지만 스스로 이를 벗어나기 위해 왕에게 콘스탄티노플 특사를 자청한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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