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오랜 시간 애써 모른 척해왔던 것을 인정하게 되는, 인정해야만 하는 그런 순간. 보지 않으려 할수록, 이해의 기회를 놓쳐버릴수록, 기억은 짙어지고 잃어버린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삶의 시야를 확보할 수 없으니까.

  앤드루 포터 단편 <코네티컷>은 그 갑작스러운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 열세 살 소년 ‘스티븐’은 코네티컷 동부 외곽에서 그의 엄마,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코네티컷 연안의 한 섬에서 홀로 요양 중이며, 세 가족은 가끔 그를 만나기 위해 페리를 타고 섬으로 향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스티븐은 자신의 삶에 아버지가 부재하는 것에 익숙해가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에 생겨난 병은 왠지 계속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어쩌면 아버지에게 헌신적인 어머니가 가장 먼저 그에 대한 희망을 버렸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벤틀리 씨 부부는 아버지가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과 막역한 사이였는데, 그 후 이웃에 사는 다른 가족들처럼 우리를 모른 체하지는 않았어도, 지난해에는 우리 집에 발길을 뚝 끊다시피 했다. 특히 벤틀리 부인은 서서히 어머니의 삶에서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부인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부인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태도에서 우정 이상의 내밀한 친밀감이 느껴졌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 둘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다년 생 식물들이 자라는 정원을 행복하게 거닐었고, (...) ―두 명의 젊은 연인처럼― 우리 집 뒤쪽 테라스 언저리에서 서로를 껴안았다. _ p.259-260

 

  그렇게 삶의 구멍을 제 나름대로 메워가던 스티븐은 어느 날 자신이 모르던 엄마를 훔쳐보게 된다. 소년이었던 아버지가 소녀였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어느 무도회에서 커플들이 서로를 안고 있던 것처럼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어깨와 허리에 서슴없이 손을 올리는 자신의 엄마와 이웃 벤틀리 부인. 스티븐은 ‘소름끼치고 타락한’, ‘눈살이 찌푸려지는’ 두 사람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동안 자신이 보았던 벤틀리 부인이, 그리고 자신의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계속 생각해본다. 스티븐의 머릿속은 많은 추측과 억측으로 뒤덮인다.

 

나는 집 뒤쪽 테라스에서 어머니와 벤틀리 부인이 나눈 포옹―여러 차례에 걸친 열정적인 포옹―이 위로의 마음에서 비롯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상실을 경함한 사람을 위로하는 따뜻한 포옹이 아니었다. (...) 그것은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포옹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포옹이었다. _ p.262-263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스티븐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로 압축된다.

  어머니와 벤틀리 부인은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고.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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