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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간 - 도시 건축가 김진애의 인생 여행법
김진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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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의 시간은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이란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일상의 고민, 고단함, 익숙함에서 벗어나 오로지 '여행'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시간. 일상에서 겪었던 고됨과는 다른 '여행의 고됨'은 또 다른 면의 나를 발견하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


  "홀로여행은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최고의 기회다. 나의 가능성과 한계, 나의 기질과 성향, 나의 동기와 목표, 나의 역량과 준비 태세, 나의 심리와 행위, 나의 불안과 약점 등을 홀로여행이라는 의외의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나를 발견해주는 태도', 사실 이것도 여행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 아닐까?" (42쪽)


  "여행이란 우리가 열심히 구축해온 일상의 성채를 깨는 사건이다. 익숙한 일상, 낯익은 사람들, 손에 익은 물건들에서 벗어나서 예기치 못했던 만남, 낯선 사람들과 문물을 마주치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본색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평소에 익숙했던 보호장치가 효력이 없어지고 평소에 썼던 가면을 벗어던져야 하는 상황도 맞닥뜨리게 된다.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또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103쪽)


  여행을 가고 싶다가도 선뜻 가지 못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하다보면

  나는 '여행'이 '노는 시간'이 나에게 주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돈도 시간도 체력도 일상을 살아가는데에 부족해서 여행을 가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여행은 단순히 '노는' 시간이 아니라, 배움의 시간, 깨달음의 시간, 휴식의 시간이다. 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다시 길을 찾는 법을 알게 되는 것처럼, 여행을 떠나본 사람만이 여행의 가치를 알게 된다. 나는 여행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진정한 여행을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여행을 '유희'라고만 생각한 게 아닐까.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삶에 유희에 시간을 주면 안 되는 걸까 싶다.

  삶에 정해진 답은 없는데, 나는 왜 답이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김진애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여행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여행을 떠나는 계기도, 계획하는 과정도, 이행하는 여로도 사람마다 다르다. 삶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길'은 없다. 잠시 이탈해도 좋고, 빠른 거리로 가도 좋고, 먼 거리로 우회해도 좋다. 여행지에서는 왜 '나의 취향'을, '내가 선호하는 것'을 고려하면서 삶에서는 그러지 않는 걸까.


  여행의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어쩌면

  잠시 잠깐의 일탈을 겪음으로써

  삶에 필요한 시간이 무엇인지, 태도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책을 읽으며 불쑥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든, 언제든 불쑥, 일상 외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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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환대
장희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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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집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우리'의 범주를 인물로 내세운다.

가족, 형제, 연인, 친구.

같은 경험, 같은 공간, 혹은 같은 감정을 공유했던 '우리'는

한 사건 -대부분은 주변인물의 죽음이나 이별-으로 인해

우리가 더 이상 우리가 될 수 없는 상황을,

그럼에도 '우리'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어떤 발버둥을 목도한다.

「우리의 환대」에서는 재현은 아내와 함께 아들을 만나기 위해 호주로 간다.

호주에서 만난 아들 영재는 흑인 노인과 젊은 한국인 여성과 함께 지내고 있다.

과거 아들이 동성애자임을 깨닫고 폭력을 휘둘렀던 재현은

지금의 영재를 보고, 자신이 아들을 잃었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가 자신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아들을 잃었음을,

그렇게 '가족'이고 '우리'였던 이들이 완전히 흩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재현은 이제 혈연으로 묶여 있던 영재를 "커다란 창 너머"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관계다.

창 너머로 영재의 집을, 그 안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영재의 새로운 가족을 바라보는데,

"영재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영원한 '우리'일 줄 알았던 가족은, 사실 영재에게 우리(畜舍)가 아니었을까.

그건 아마 재현이 영재에게 휘둘렀을 어떤 욕망,

혹은 기억하지도 못할 숱한 폭력이 만들어낸 상실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한 사건을 중심으로 흩어지는 관계를 깊이있게 그려낸다.

「폐차」에서는 몸이 성치않은 홀어머니를 동생에게만 맡긴 형이 등장한다.

그런 형에게 찾아온 동생은 과거 폭력적이던 어머니 밑에서 살던 형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두 사람의 연대를, 기억을 끌어올리기 위함이 아니다.

동생은 기억하느냐고 묻는다.

어머니가 어린 자신을 버리고 가려던 그날을,

그 차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던 형 본인을.

작가는 왜 끊임없이 '우리'가 우리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이야기할까.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른 것을 발견하고,

다른 것을 느끼기 때문이지 않을까.

같은 부모 밑에서, 같은 가정에서 자라더라도

완전히 다른 '나'와 '너'가 된 「폐차」의 형제처럼 말이다.

그러나 작가가 던지고자 하는 바가

우리는 '구획'일 뿐이라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그런 연대의 해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연대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섣부른 '우리'를 지양하자는 게 아닐까 싶다.

「혜주」의 주인공 '나'는 친구 혜주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는다.

혜주는 홀아버지의 병간호를 하고 있고,

연락이 닿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상태다.

나는 "그해 여름을 혜주와 함께 보"낸다.

혜주의 푸념을, 혜주의 고달픔을 듣고 돕는다.

그렇기에 '나'의 입장에서는 혜주와 내가 그 계절을 함께 보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자신이 혜주의 단 하나뿐인 존재임에 묘한 고양감을 느낀다.

혜주의 일에 조언을 하고 도움을 준다.

'나'는 저들의 일에서 타자임이 분명함에도

'나' 혼자서 '우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감정은 혜주에게도 '나'에게도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돌봄 노동에 지친 혜주는 어느 순간 "네가 뭘 알아?" "뭘 알고 있는데"라고 쏘아붙인다.

그 일을 계기로 '나'와 혜주는 멀어지게 된다.

섣부른 '우리'의 범주화는,

타인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은

진정한 공감이 아님을 알게 한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을 온전히 공감할 수 있을까?

'나도 그랬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가 정말 '우리'일까?

같은 나라에 같은 지역에 같은 공간에 살고

같은 부모를 두고

같은 추억, 기억을 갖고 있더라도

사람은 모두 다른 것을 보고 경험한다.

그렇기에 '우리'라는 단어는

'같음'을 의미하는 게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너와 나. 그것이 묶여서 우리가 되었다면

너와 나의 개별적인 존재도 인지해야 하는 게 아닐까.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아도

'내가 모르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으로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어떤 상실을 통과하며 받은 썩은 자두를 음식물 쓰레기로 여기지 않고

조금씩이나마 베어 먹는 「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의 '나'처럼,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환대하지 못했던 아이스크림 선물을

한 시절이 넘긴 후에야 먹고 그 흐릿한 단맛을 알게 된 혜주처럼.

완전한 상태가 아니더라도 그 마음을 알아보려고 한다면

상실의 시간을 통과한 후더라도 괜찮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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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양장) -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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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문학이라는 단어에 가두지 않더라도 정말 좋은 작품. 악마는 현실적이고, 유혹적이다. 그 유혹에 빠지지 않기 어려울 정도로 보인다. "악마는 시험에 들게 할 뿐"이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도 인간의 몫이라는 말은 무섭기까지 하다.

주인공 정인은 '중학생'이다. 작가는 청소년문학이라고 해서 정인은 단순히 순진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정인이 놓인 현실은 정인이 '순진'하게 살기에는 너무 각박하기 때문이다. 정인의 감정은 구체적이고, 그렇기에 정인의 감정은 독자에게 진솔하게 다가온다.

상상의 세계에 들어선 정인은 진짜와 가짜의 의미를 명확히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다 한다. 그리고 한 번만 더 살아가기로 한다.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세계에서 살아가기로 한다.

그것만으로도 삶은 달라질 수 있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

어떤 유혹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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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김민섭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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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인지, 스스로에게 지친 시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늘 불안정하고, '나'에 대해 고민하던 순간에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니,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았어요.

진부한 위로를 건네거나, 가르치려든다면 바로 읽지 않겠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예상과 전혀 다르게 너무 따듯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맞아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그렇기에 불안정하죠.
그리고 그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나아가기 위해 늘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타인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가요.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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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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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시 김영하다라는 생각이 들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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