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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601호 : 2024.02.05 - #2024 로컬 담론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1월
평점 :
품절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야 서울에서 나고 자란 것이 특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편집위원의 인트로에 공감이 갔다. 나 역시 대학 입학 후 타 지역 출신의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서울에서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는 점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나의 좁은 시야를 자각할 수 있었다.
최근 지역 인구가 감소하면서 지역소멸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도시의 경쟁적인 분위기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로컬의 가치가 강조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호를 읽으면서 경향신문에서 읽었던 ‘사표 쓰고 귀농’과 ‘탈서울 라이프’ 연재 기사가 떠올랐다. ‘사표 쓰고 귀농’은 기자가 사표를 쓰고 귀농을 한다는 컨셉으로 쓰인 기사이고, ‘탈서울 라이프’는 서울에서 살다가 지역으로 이주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다.
서울에서만 살던 나로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귀농·귀촌 생활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나처럼 서울에서 살던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한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서울에서는 빠르고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는 그들의 문제의식을 나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한겨레출판사에서 <탈서울 지망생입니다>를 출간한 것으로 볼 때, 그러한 문제의식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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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로컬을 말하는 이유’에서 조희정 연구원 역시 사람들이 로컬에 주목하는 이유는 지금 나의 삶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경쟁과 발전 패러다임 하에서 획일적인 가치만을 좇았음에도 삶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류에서 벗어나 행복의 다양한 형태를 고민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두 개의 글은 ‘로컬 콘텐츠’를 주제로 제주와 양양의 사례를 소개하며 성공적인 로컬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두 필자가 공통적으로 로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브랜딩을 강조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1960~70년대에 제주는 주어진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감귤 산업과 야자수를 도입해 고유의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나아가 ‘보헤미안’이라는 키워드도 제주로 이주민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는데, 이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기반한 브랜딩이 이루어진 결과다.
한편, 로컬 콘텐츠가 한철 유행에 지나지 않도록 고민하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제주살이 열풍’이 끝나고 20대 청년층의 인구 유출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한다. 제주 청년이 겪는 어려움 1위로는 일자리 부족이 꼽혔다. ‘로컬X컬쳐 키워드’ 연재에서 박우현 에디터가 지적했듯,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지역 인구가 도시로 유출되는 이유를 짚어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청년의 지역 정착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적인 노력이나, 밀양에서 관계 인구를 창출하기 위한 시도들이 소개되어서 좋았다. 계간 창작과비평 2023 겨울호에서도 서울에 살던 전북 부안 출신 청년이 부안으로 다시 돌아와 지역 활동가로서 정착한 이야기가 실렸는데, 이렇게 청년들이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글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지역출판사의 역할을 제시한 ‘나는 대구의 출판인이다’도 인상적이었다. 대구의 학이사는 지역출판사가 단순히 책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 시민의 삶을 기록하고, 지역의 도서관이나 책방과 함께 독서 문화를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코로나19 확산 당시 지역 시민들의 삶을 기록해 책으로 엮은 것처럼 그 지역만의 차별화된 이야기를 발굴하는 능력이 지역출판사에게는 큰 강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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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보통 이하의 것들>의 기획부터 출간까지를 다룬 녹색광선 대표의 글이나 시네마틱 쇼츠, 맥락이 담긴 큐레이션 등 읽을거리가 많아 즐거웠다. 다음 호에 실릴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