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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헌터 - 어느 인류학자의 한국전쟁 유골 추적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평점 :
<본 헌터>는 A4-5를 비롯한 유골들의 삶과 이들을 땅 밖으로 내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전쟁 시기 아산 지역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탐구하는 책이다. 유해로 발견된 피해자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진술하는 형식으로 서술된 홀수 장과 유해 발굴을 통해 이들의 삶을 추적하는 인류학자 '선주'의 여정이 담긴 짝수 장으로 구성됐다. 저자는 유골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활용함으로써 전쟁이라는 거대담론 속에 가려진 개인의 삶에 주목하고, 독자로 하여금 국가 폭력의 비극성을 실감하게 한다. 책장을 넘길수록 홀수 장과 짝수 장의 간극이 좁혀지면서 인류학자 선주가 한국전쟁 유골을 탐구하기까지의 과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민간인 학살의 원인은 이념 대립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학살이 발생한 표면적인 이유는 1·4 후퇴 당시 부역자 처형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지주 - 소작인 간 계급 갈등이나 사적 원한 관계가 포함되기도 했다. 1948년 농지 개혁 이후 지주들의 농지가 소작인에게 분배되었고, 곧이어 일어난 전쟁에서는 인민군 점령기에 소작인이 인민위원회의 간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당시 지주들은 소작인에게 구타를 당하는 등 곤욕을 치렀는데, 인민군이 물러나자 지주들은 다시 소작인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며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했다. 민간인 학살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유해를 발굴할 때 공평하게 주목 받지 못한 뼈들이 있었다는 점도 기억에 남는다. 애초에 국가가 유해를 발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책에서 인류학자 선주는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을 국가와 국민 간 계약 관계로 설명한다. 국민이 국가에 대해 여러 의무를 수행하는 만큼, 국가는 전사한 국민의 주검이라도 찾아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인 강제 노동 희생자 유해 발굴에 참여한 승려 도노히라는 ‘역사와 목숨에 대한 상상력’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국가 폭력 피해자 유해 발굴은 폭력으로 인해 사망한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자, 고통받은 목숨들을 만든 역사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선주가 국군 전사자의 뼈와 대우중공업 노조 활동가의 뼈 두 개를 쳐다보는 장면에서는 국가 주도로 발굴되고 보호 받는 뼈와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뼈의 이미지가 대비되어 안타까웠다.
선주가 이념 문제에 좌우되지 않고 국방부나 진실화해위원회 등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유해 발굴 작업을 하는 모습은 학자로서의 탐구 정신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연구의 원동력은 이념보다는 지적 호기심이었다. 우리가 사실처럼 알고 있는 어떤 지식이 꾸며진 이야기일 수 있다는 ‘모던 미스’ 개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도 진실을 탐구하려는 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현재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을 담당하고 있는데, 발굴 참여 자격을 문화재 관련 학과 출신으로 제한하면서 인류학자 선주를 비롯해 발굴 경험을 쌓아온 이들이 작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위원장과 관련한 잡음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지켜봐야겠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